언제까지 자격지심에 빠져있을래?

가난부심

by 양독자


가끔 로또 1등에 당첨되는 상상을 한다. 누구나 돌리는 희망회로가 무슨 문제냐 싶겠지만, 나의 망상은 심각하게 구체적이다. 당첨금 수령 요일, 은행 방문 복장, 복권 용지 보관 장소, 이용할 교통수단, 당첨 사실 공개범위 등. 매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며 계획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1등은커녕, 한 번쯤 된다는 5등도 되어본 적이 없다. 당연하다. 나는 로또를 사지 않기 때문이다. 8백만 분의 1이라는 희박한 확률은 내 소중한 돈을 가로채기에 자격미달이다. 허튼데 돈을 쓰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것이 단돈 5천 원 일지라도! 왜 나는 사지도 않는 로또가 당첨되기를 바라는 걸까.



나에게 가난을 벗어나는 건 로또 당첨과 비슷하다. 사지 않는 로또에 기대를 거는 것처럼, 나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가난을 뿌리치길 바란다. 이거야말로 정신병이다. 고약한 도둑놈 심보다. 과연 나는 가난에 대한 자격지심을 가질 자격이 있을까?




첫 글에서 밝혔듯,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하나다. 가난한 마음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다. 매주 하나의 기억을 잡아서 글을 썼다. 쓰고, 고치고, 지우고, 다시 쓰고. 지독하게 그때의 감정과 마주했다. 갑자기 들춰진 과거의 상처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도 했다.



놀랍게도 하나의 글을 보내고 나면, 다시 그 문제에 깊게 빠지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내 자격지심을 이루는 수많은 원인 중 하나가 소멸된 느낌이었다. 점점 마음의 무게가 줄어들었다. 몸무게 감량이라는 외적인 다이어트는 실패했지만, 내면이라도 성공해서 다행이었다. 입꼬리도 덩달아 가벼워졌는지 진심으로 미소 짓는 날도 늘어났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또다시 매몰될지도 모른다. 평생을 괴롭히던 기억들이 언제고 나를 끌고 내려갈 수도 있다. 그럼 나는 어쭙잖은 가난부심을 다시 꺼내겠지. 엄마에게 표독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그녀의 가슴을 헤집어놓겠지. 그래도 이제는 두렵지 않다. 이 방을 탈출할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이 게임을 해봤어요!’ 다시 천천히 나가면 된다.


출처 : 넷플릭스



연재를 하던 어느 주말, 부모님과 치킨을 먹다 갑자기 울음바다가 됐다. 나는 또 어릴 적 기억을 꺼내 엄마를 괴롭혔고, 그녀는 또 장난식으로 어설픈 사과를 했다. 매번 어물쩍 넘어가는 그녀에게 화가 났다. 확실한 사과를 받고 싶었다. 더 이상 똑같은 문제로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선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야 했다.



나는 알고 있다. 엄마가 건네는 얼렁뚱땅 사과는 그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기술이다. 진지하게 예전 일을 입에 담는 순간,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잠식당할 것이다. 예상대로 그녀는 한참을 울었다. 나는 주방에서, 엄마는 화장실에서. 식어가는 치킨을 앞에 두고 그렇게 울었다.



그땐 상황이 그래서… 너희 아빠가 그래서… 그녀의 사과에는 매번 핑계가 달려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속에 나는 없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랬다. 항상 그 점이 억울했다. 그녀의 화가 나에게 닿은 건, 그저 내가 만만하고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출처 : 키키 일러스트



“엄마가 미안해”

처음으로 그녀가 사족 없는 사과를 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랬어’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말해주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가. 그렇게 말해주는 엄마는 흔치 않다. 너무도 고마워서 눈물이 흘렀다. 기어코 엄마의 옆구리를 찔러 사죄를 받아내는 딸. 참 지독하다 생각했다.



엄마에게 약속을 했다. 다시는 같은 과거를 들먹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엄마의 사과는 마치 감기약 같았다. 먹고 나면 서서히 기침을 멈추게 하는 약처럼, 내 마음의 재채기도 잦아들지 않을까? 지겨운 가난타령을 하며 도돌이표를 맴도는 건 이제 끝이야! 나는 굳게 다짐했다.



치킨을 앞에 두고 눈물이 터진 모녀를 아빠는 아무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두 팔로 엄마와 나를 안아주었다. 아마도 무언의 사과를 하지 않았을까? 나도 미안했다고. 앞으로 행복해보자고. 그의 온기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의 등에 닿아있는 나의 손 끝도 이렇게 말했다. 저도 죄송했다고. 앞으로 재밌게 살아보자고.




여전히 우리 집은 넉넉하지 못하다. 자차가 없어 온 가족이 대중교통으로 동네를 누비고, 일하는 아빠 때문에 가족여행은 그림의 떡이며, 마음에 드는 옷을 고민 없이 집어드는 일 따위는 없다. 허나 살면서 가장 평온한 요즘이다. 동네 치킨집에서 닭강정 한 마리를 포장해 와서 도란도란 나눠먹는 단란함에 감사하다.



혹시 당신에게도 벗어나고 싶은 가난이 있나요? 그렇다면 스스로를 옭아매는 기억을 하나씩 놓아주면 좋겠습니다. 저처럼 글을 써도 좋고, 터놓고 얘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가난부심은 이제 내려놓자고요. 다른 행복한 추억이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마음을 비워보아요. 나도, 당신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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