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산업은 왜 하필 베네치아에서 발전했을까?
올해 10월 유럽 여행을 한 달 정도 다니게 되었다. 혼자 자유여행으로 떠난 것이라 중간에 카페에서 쉬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도 많이 가졌던 것 같다. 이탈리아 여행을 할 때 베네치아에 있는 무라노섬이라는 곳에 잠시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때 쓴 글을 바탕으로 내가 당시 생각했던 것들을 공유하려 한다.
베네치아는 너무나도 아름다우면서도 다소 인공적인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인구가 30만 명도 안 되는 작은 사이즈의 도시에서, 도로에 자동차가 다니는 대신 사람들이 집 앞에 있는 요트로 물을 가로지르며 이동하는 모습은 전 세계 어디를 여행해도 이국적인 모습일 것이다. 유럽의 미술관을 거닐면 어디든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 베네치아의 모습은 중세와 근대의 유럽 사람들에게도 아름답고 신비로워서 이를 그림으로라도 간직하려는 욕구가 높았다고 한다.
베네치아 본섬에서 약 20분 정도 배를 타고 이동하면 무라노섬이라는 곳이 나온다. 무라노섬은 유리 공예가 매우 발전한 섬이고, 유리 공업('유리 산업', '유리 공예업' 등 다양한 워딩이 있을 것 같은데 편의상 '유리 공업'이라고 하겠다)은 베네치아의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였다. 섬을 거닐면서 아직도 무라노섬에는 작은 유리 공방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유리 산업은 더 이상 하이테크 산업은 아니기 때문에 유리 공업을 쥐락펴락했던 베네치아와 무라노섬의 영향력을 지금 실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13세기 당시 베네치아의 유리 공업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고 한다.
에드 콘웨이의 <물질의 세계>라는 책에서, 인류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6가지 물질 중 하나를 모래로 꼽는다. 우리가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모래이지만, 인류에게 중요한 모래는 실리카라는 물질의 순도가 70% 이상인 것이다. 이러한 모래는 콘크리트의 원료로 들어가 건설업의 기반이 되기도 하고, 요즘은 실리콘 웨이퍼의 원료가 되어 반도체 산업의 핵심 자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모래는 유리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유리를 만들 수 있는 모래는 아무 곳에서나 나는 것이 아니다. 유럽 여행 다니면서 읽게 된 <물질의 세계>에서 베네치아는 유리를 만드는 원료를 얻기에 최적의 장소였다고 말한다. 모래는 베네치아 근처 리도섬의 모래 언덕과 해안의 다른 부지에서 가져오고, 소다회(soda ash)는 이집트와 스페인에서 선박으로, 용광로에 필요한 나무는 이탈리아 알프스에서 가져오는 등 유리 공업에 필요한 원료들을 세계 각지에서 수입할 수 있는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즉, 베네치아는 유리 공예업의 원재료 확보 측면에서 선택받은 장소였던 것이다.
원래는 유리 공업은 베네치아 본섬에서 이루어지다가 화재가 발생하고 보안의 문제가 생기자, 무라노섬으로 장인들을 이주시켰다고 한다. 장인들은 무라노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였고, 항상 철저한 감시하에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요즘으로 따지면 반도체 엔지니어들이 해외에 기술을 유출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과 유사한 것 같다. 그렇게 무라노섬에는 유리 클러스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원재료가 있다고 해서 산업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산업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마켓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크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유리 공예업자들이 농사 등의 다른 부업 없이 평생 유리 공예만 해도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충분히 큰 규모의 마켓이 존재해야 하고, 두 번째는 유리를 판 대가로 얻은 화폐를 생필품과 교환할 수 있는 마켓도 존재해야 한다.
문헌을 통해서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추정으로는 13세기 베네치아는 위의 두 가지 조건을 충족했을 것 같다. 우선 유럽은 13세기 당시 점점 하나의 시장 권역으로 묶이면서 유리 장인들이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역을 타깃 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중세 유럽 내 교역이 활발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샹파뉴 정기시이다. 샹파뉴 정기시는 중세 유럽의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플랑드르, 베네치아 등 유럽 각지의 상인들이 모여 1년에 한 번 물건들을 교환하는 시장을 뜻하는데, 이는 특정 지역의 상품이 로컬에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수출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물론 유리가 샹파뉴에서 꼭 교환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유럽 곳곳에 있는 성당의 스테인드 글리스 및 상류층의 유리 공예품 수요를 베네치아 무라노섬의 유리 장인들이 커버했기에, 이를 통해 평생 유리 공예품만 만들어도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및 유럽 본토를 잇는 육로뿐만 아니라 해상 무역을 통해 이슬람권도 교역 대상이었기 때문에, 타깃 할 수 있는 마켓의 외연이 다른 도시에 비해 훨씬 넓었을 것이다.
또한, 13세기 당시 화폐 경제가 발전했던 베네치아에서는 유리 장인들이 유리 공예품을 판 대가로 취득한 화폐를 바탕으로 생필품을 구매하고 유지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베네치아의 공식 화폐는 두카트(Ducat)였는데, 당시 유럽의 교역의 중심지가 베네치아가 되자, 교역에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가 된 것이다. 오늘날로 따지면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의 지위를 가졌다고나 해야 할까? 그렇기 때문에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유리 공업에만 전념하면서 살더라도, 두카트를 받을 수 있었고, 생활에 필요한 다른 재화와 서비스를 교환할 수 있는 화폐경제가 실현되고 있었기에 전념할 수 있었다.
만약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섬에서 아무리 베네치아와 같이 실리카 순도가 높은 고운 모래가 나와도, 이를 바탕으로 유리 공업이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생산자 입장에서 모래를 이용해 유리 공예에 전념해도 충분한 수요를 가진 마켓이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권역을 커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베네치아의 지정학적 이점과 교통의 발전이 상업의 발전을 키웠고 이러한 동력들이 합쳐져 무라노섬의 유리 공업을 키우지 않았을까?
유럽 여행을 하면서 '과학혁명은 왜 유럽에서 발전하게 된 것일까? 아시아나 다른 지역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것이었나?'라는 의문이 들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질의 역사>라는 책에서 모래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갈릴레오가 천체를 관측하던 망원경, 지식인으로서의 수명을 연장해 주었던 안경, 생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현미경 모두 유리 공업의 발전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언급한다. 실제로 역사가 앨런 맥팔레인(Alan Macfarlane)과 게리 마틴(Gerry Martin)이 인류의 지식을 고양한 위대한 실험 20가지를 조사했을 때, 20개 중 16가지가 유리 프리즘, 유리 용기, 유리 장치에 의존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유리가 과학 혁명을 만들었다는 결론은 너무 논리적인 점프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과학 혁명이라는 것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훌륭한 과학자와 제도적 지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유리와 같은 과학 연구 발전에 필요한 기초 자원의 높은 수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리 공업의 발전은 유럽이라는 넓은 시장을 타깃 할 수 있는 마켓과 탄탄한 화폐경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는 역사의 운명은 지정학에 달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무라노섬을 거닐면서 반나절이면 걸어 다닐 수 있는 이 작은 섬이, 어떻게 중세 유럽의 최첨단 과학 클러스터가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창 지정학 책들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는데, 요즘 그런 책들을 다시 꺼내 읽고 있다. 지정학이라는 것이 정말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