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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dermovie Jan 09. 2024

여기에 곰은 없다. 오직 카메라만이 있다.

노 베어스(No Bears, 2022)

노 베어스(No Bears, 2022)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란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러나 ‘이란을 대표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이란 정부와 파나히 감독의 사이는 그리 좋지 못하다. 파나히는 영화 예술을 통해 이란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해 왔고, 그 결과 투옥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정부로부터 무려 20년간 영화 제작은 물론 인터뷰 및 다른 국가로의 출국까지 금지당했음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온 파나히의 <노 베어스>는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이, 혹은 영화 예술가가 가져야 하는 태도, 특히 카메라를 통해 가져야 하는 태도에 대한 영화다. 


<노 베어스>는 인상적인 롱 테이크로 시작된다. 여러 인물을 훑고 지나간 끝에 카메라는 한 남성을 잡는다. 그의 이름은 박티아르(박티야르 판제이). 그리고 이내 그의 연인인 자라(미나 카나비)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국경을 넘는 것과 관련해 논쟁을 벌인 후 들어가 버리는 자야를 보여주자 프레임 밖에서는 “컷” 사인이 떨어진다. 이 장면은 <노 베어스> 속 또 다른 영화인 것이다.


이란 외곽에 위치한 시골 마을에서 원격으로 이 영화를 감독하는 자파르 파나히(본인 역)는 박티아르와 자라의 그 장면을 맘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카메라가 감독이 원하는 인물을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이 영화는 다시 한 번의 실패를 보여준다. 이번에는  준비된 박티아르의 여권이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진짜 여권인 양 연기를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실이 아닌 거짓을 찍었기 때문에 실패한다.

박티아르-자라 영화가 보여주는 두 번의 실패를 통해 이 영화는 카메라가 가져야 할 두 개의 책임감에 대해 말한다. 하나는 감독이 찍고 싶은 것을 찍을 것.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을 거짓 없이 진실되게 찍을 것. <노 베어스>는 영화 내내 이 두 가지 조건을 성립하지 못하며 실패하고 마는 영화를 보여준다.


간바르의 영화

파나히는 마을 전통 결혼식에 가는 간바르(바히드 모바세리)에게 자신의 카메라를 빌려준다. 그러고는 그에게 사용법을 알려주며 영상을 찍어오라고 한다. 결혼식을 다녀온 간바르. 하지만 카메라 조작에 서툴렀던 그는 자신이 찍고 싶지 않았던 타이밍에 카메라를 작동시키고 그 안에는 마을에 머무는 파나히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마을 주민들이 파나히를 비난하는 것이 담긴다. 이에 부끄러움을 느낀 간바르가 빠르게 자리를 떠나면서 이 영화는 실패한다. 이 영화에는 진실에 담겨있다. 하지만 실패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간바르가 찍고 싶어 했던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파나히의 맹세를 담은 영화

영화의 중반부. 마을 주민으로부터 파나히는 한 커플의 사진을 찍었다는 의혹을 사게 된다. 영화에 정확하게 정보가 제공되지는 않지만, 추측건대 파나히는 커플 사진을 실제로 찍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맹세를 하러 가기 전 만난 한 남성과의 대화를 통해 유추가 가능하다. 그 남성은 파나히에게 “선생님이 찍었든 찍지 않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찍지 않았다고 말하면 모두가 평화로울 것입니다”라고 조언한다. 이 말을 들은 파나히는 결심한 듯 코란 대신 놓인 카메라 앞에서 맹세한다. 추측건대 거짓의 맹세. 결국 그 거짓 맹세로 이뤄진 영화는 촬영 도중 발끈한 야곱(자바드 시야히)에 의해 실패로 끝난다. 이 영화는 간바르의 영화와 다르게 감독이 찍고 싶었던 순간을 포착한다. 하지만 실패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파나히의 진실이 들어간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 베어스> 속 이 실패한 두 영화는 이란 정부의 탄압 속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본인에 대한 반성인 동시에, 예술가가 가져야 하는 태도를 역설하며 모든 예술가들을 각성 시킨다. 


다시 앞서 언급한 파나히가 맹세하러 가는 길목에서 만난 한 남성과 나눈 대화로 돌아간다. 그 남성은 파나히를 붙잡으면서 그가 가려던 길에는 곰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찻집으로 파나히를 데리고 가 대화의 자리를 만들고, 거기에서 “선생님이 찍었든 찍지 않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찍지 않았다고 말하면 모두가 평화로울 것입니다”라는 말로 진실을 외면할 것을 요청한다. 아니 요구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인 듯 보이는 파나히에게 종국에 가서 진실을 말해준다. “사실 이 길에 곰은 없습니다.”


이는 파나히가 맞서는 사회 시스템의 태도와 맞닿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대사는 영화의 마지막에 반복된다. 결국 마을 떠나게 된 파나히는 마을 빠져나가는 도중 국경을 넘다가 피살당한 솔두즈(아미르 다바리)의 시신을 본다. 이에 간바르는 “이 길을 따라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라는 말로 파나히에게 외면을 요구한다.


“여기에 곰은 없습니다. 이 길을 따라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라는 말은 곧 “여기에 부조리는 없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만드세요. 모두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로 이어진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순간 자동차를 멈춰 세우는 파나히의 모습과 함께 끝난다. 이제 파나히, 그리고 예술가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 자동차를 박차고 나서 카메라를 들고 진실을 찍을 것인지, 아니면 외면할 것인지.


그리고 <노 베어스>는 말한다. 


“여기에 곰은 없다. 오직 카메라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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