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다시 비행기를 탔습니다. 국내선 비행기지만, 세 시간에 달하는 긴 비행입니다. 저는 우수아이아로 향합니다.
우수아이아는 아르헨티나의 남쪽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세상의 끝(Fin del Mundo)’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죠. 실제로 인구 5만 명 이상의 도시 가운데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부터 창밖으로는 넓게 펼쳐진 설산이 보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엄청난 바람이 불어 옵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지만, 여전히 기온은 아주 낮았습니다.
우수아이아는 생각보다는 큰 도시였습니다. 인구는 5만 명 정도이지만, 시내에는 크고 깔끔한 식당과 매장이 여럿 보였습니다. 아마 관광업이 큰 도시이기 때문이겠죠. 외국인도 많이 보였습니다.
우수아이아의 북적이는 시내를 걸었습니다.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란 세상의 이 남쪽 끝에서도 마을을 이루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이곳에도 사람이 모이고, 건물이 올라가고, 공항이 만들어졌습니다.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를 탈출한 것은 6만 년 전 즈음이라고 하지요. 그렇게 아프리카를 나온 인류는 아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퍼졌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당시에는 바다가 아니었던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했습니다.
거기서 다시 남쪽으로 1만 5천km를 내려와야 우수아이아에 닿을 수 있습니다. 우수아이아에는 그렇게 정착한 인류가 1만 년 전부터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우수아이아에 처음 자리를 잡은 유럽인들은 1844년에 정착한 영국인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을 필두로 수많은 ‘탐험가’들이 남아메리카 대륙을 탐사했죠. 그들은 많은 곳을 ‘개척’해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유럽인 탐험가들이 도래하기 훨씬 전부터도 이 땅을 탐험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거대한 산과 바다를 지나 이 땅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부터 인류는 탐험가였고, 걷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끝내 모여 마을을 만드는 이들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우수아이아에서 원주민의 흔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꼭 우수아이아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아르헨티나 전체가 그렇죠. 아르헨티나는 남미 대륙에서 백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입니다. 유럽 출신 이민자가 많았던 것도 있었지만, 원주민에 대한 탄압이 강력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르헨티나는 원주민에게 이주를 강요하고, 원주민 정착촌을 만들어 이동의 자유를 통제했습니다. 반발하는 원주민에게는 학살로 맞섰죠. 그 사이 수많은 원주민들이 빈곤과 질병으로 죽거나 백인 사회에 동화됐습니다.
그렇게 비어버린 땅에 정착한 이들이라고 해서 삶이 순탄했을 리는 없습니다. 특히 극지방의 척박한 땅에서는 더욱 그랬죠.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밀리고 밀려 극지방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땅에 살던 원주민은 사라졌고, 그 위에는 또 다시 이민자의 도시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며칠 뒤, 저는 버스를 타고 우수아이아를 떠났습니다. 열 두시간의 버스 여행 끝에 도착한 도시는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였습니다.
긴 여행이었습니다. 국경을 넘어야 했고, 다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페리를 이용해야 했죠. 지도로 보면 아주 가까워 보이는 거리지만, 직선으로 뚫린 도로도 오랜 시간을 달려야 했습니다.
차창 밖으로는 넓은 초원과 구릉 지대가 펼쳐졌습니다. 국경 주변을 제외하고는 마을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이나 양 정도가 방목되어 있을 뿐이었죠. 이 대륙의 엄청난 크기를 실감하며 푼타 아레나스에 도착했습니다.
푼타 아레나스는 남극으로 향하는 베이스캠프로 알려져 있는 도시입니다. 인구 10만 정도의 도시죠. 우수아이아보다는 확실히 큰 도시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넓은 도로와 공원, 커다란 성당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극지에 위치한 도시라는 것은 변하지 않랐습니다. 추운 온도와 거친 바람도 여전했습니다. 이 도시에 살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순탄치 않은 삶을 이어가야 했겠죠.
이민자들이 많이 정착한 땅이라는 것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크로아티아인들이 억압을 피해 많이들 칠레로 넘어왔죠. 이들이 푼타 아레나스라는 도시를 사실상 지탱하고 있었던 이들이었습니다.
실제로 푼타 아레나스에는 여전히 크로아티아계 인구가 많습니다. 크로아티아의 국기도 곳곳에서 보이더군요. 이 극지의 도시에서 중부 유럽의 국기를 만나는 감각은 독특했습니다. 칠레의 현직 대통령인 가브리엘 보리치도 푼타 아레나스 출신의 크로아티아계 후손입니다.
우수아이아와 푼타 아레나스는 남쪽 끝의 도시였습니다. 세상의 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곳에도 강이 흘렀고, 사람들은 모여 마을을 이뤘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때로 서로를 미워하고, 아픈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도시를, 새로운 희망을 만들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세대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마흔도 되지 않은 극지방 출신의 대통령, 가브리엘 보리치는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세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세상의 끝에서도 사람의 삶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가끔은 상처가, 또 가끔은 희망이 만들어지면서 말이죠. 그 사람들의 닮은 모습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긴 비행과 버스 여행의 보상은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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