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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더슈탄트 Jan 08. 2024

[일본] 12. 길의 가운데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한 나고야역은 복잡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도쿄에는 버스를 타고 와서 지하철을 타고 떠났으니, 이제까지 일본에서 들른 역 가운데에는 가장 큰 역이었습니다.


 나고야는 도쿄와 오사카에 이어 일본 제3의 도시로 꼽힙니다. 도쿄가 수도권을, 오사카가 간사이권을 대표하는 도시라면 나고야는 주부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죠.


 나고야는 오래전부터 일본 유수의 대도시였습니다. 교토에서 에도를 잇는 길을 ‘도카이도(東海道)'라고 부르는데, 나고야는 이 도카이도의 중심지였죠.


 나고야는 동쪽의 에도와 서쪽의 교토를 잇는 ‘중경(中京, 주쿄)’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나고야 도시권을 ‘주쿄권(中京圏)‘이라 부르죠. 지금은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도카이도 철도‘가 나고야를 지나갑니다.


 그런 중요한 길목에 위치한 대도시이니, 여러 노선이 모이는 나고야역이 복잡한 것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나고야 오스칸논


 교통로에 위치한 도시의 특성상, 나고야에는 특별히 방문할 곳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나고야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또 길이 교차하는 곳인 만큼, 의외로 여러 이야깃거리가 남아있는 도시가 나고야입니다.


 특히나 일본의 전국시대에 나고야는 매우 중요한 땅이었습니다. 지금도 나고야 중심부에 서 있는 나고야성을, 열도를 호령했던 무사들이 거쳐 갔기 때문이죠.


 나고야성은 16세기 전반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마가와(今川) 가문에서 성을 쌓았지만, 이 성은 곧 다른 무장에게 함락됩니다. 성을 차지한 무장이 바로 오다 노부히데(織田信秀)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오다 노부나가는 나고야를 기점으로 해,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합니다. 그는 곧 교토를 장악했고, 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일본 통일을 목전에까지 두었죠.


나고야성


 오다 노부나가는 통일을 앞두고 부하였던 아케치 미쓰히데의 배신으로 사망합니다. 그의 장남도 전투에서 함께 죽었죠. 오다 노부나가의 정권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이어받았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른 무장들과 달리 출신이 미천했습니다. 출생지조차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죠. 하지만 그 역시 현재의 나고야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히데요시는 결국 일본 전국을 통일하는 데 성공합니다. 덴노의 권한을 대행하는 ‘관백’에 자리에 올라 일본의 지배자가 되었죠. 히데요시는 미천한 신분을 뚫고 일본의 최고 지도자가 된, 일본 역사상 전무후무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히데요시 정권은 많은 점에서 노부나가와는 달랐습니다. 노부나가는 성장부터 하극상으로 인한 사망까지, 많은 부분에서 중세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달랐습니다. 통일 이후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에 대한 토지조사를 실시해 세금 수입을 명확히 했습니다.


 히데요시 정권은 농민들의 무기를 몰수해 전국시대의 종지부를 찍었죠. 무기는 사무라이만 착용할 수 있도록 해 신분의 구별도 분명히 했습니다. 근세적인 정권의 출범이었죠.


나고야성의 정원


 물론 많이들 아시다시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권은 그 한 대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무리하게 조선을 침공한 히데요시는 전쟁을 마치지 못하고 사망했죠. 그가 사망한 뒤에야 일본은 전쟁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았습니다. 이에야스는 에도에 막부를 세웠고,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는 이에야스 세력과의 전쟁 끝에 오사카성에서 사망했죠.


 이에야스와 에도 막부의 개창으로, 전국시대의 혼란은 완전히 종결됩니다. 에도 막부는 이후 250년 동안 정권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그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나고야와는 인연이 깊습니다. 이에야스도 나고야 인근의 오카자키에서 태어났죠. 당시 이에야스가 모시던 가문이 나고야성을 처음 지은 이마가와 가문이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사망하고 한동안 나고야성은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너졌던 성을 다시 지은 것이 또 도쿠가와 이에야스였죠.


 이에야스는 1610년부터 나고야성 건설을 시작합니다. 여러 영주로부터 노동력과 자금을 징발해 성을 건설했죠. 지금도 나고야성의 기단에는 각 영주들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돌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성에는 이에야스의 9남 요시나오가 들어와 살았습니다.


나고야성의 기단. 영주의 문장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근세 초기 세 명의 천하인(天下人),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모두 나고야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남아있는 나고야성은 대부분 현대에 들어와 복원된 것입니다. 2차대전기 폭격으로 성 내의 건축물 대부분이 소실되었거든요. 천수각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재건되었고, 이것을 목조로 바꾸는 작업이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나고야성의 복원된 혼마루 안에서도, 그 사라진 흔적을 찾아보게 되는 것은 왜일까요.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성을 지키고 있는 두터운 바위들 사이를 한참 걸어 보았습니다.


나고야성


 나고야는 도카이도 길목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도시였습니다. 사실 그랬기 때문에 이곳에서 전국시대의 천하인들이 나올 수 있었겠죠. 수도이자 격전지인 교토와 적당히 멀면서, 교토로 향할 수 있는 길을 쥐고 있는 땅이니까요.


 아무것도 없을지 모르는 길 위의 도시이지만, 그 길 위의 도시이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태어나 혼란스러운 시대를 평정한 무장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나고야도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관광할 것이 없는, 무색무취의 재미 없는 도시라고 평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평탄한 길 위에서만 나올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때로 기대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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