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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더슈탄트 Jan 21. 2024

[일본] 17. 유신의 고향

 기차는 더 서쪽으로 달립니다. 혼슈의 끝, 규슈로 넘어가는 간몬 해협의 턱밑까지 닿았습니다. 이곳은 시모노세키(下関)입니다.


 시모노세키는 야마구치현 서부의 작은 도시입니다. 인구가 25만에 못 미치죠. 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조금 더 들어가니, 편의점도 찾기 어려운 조용한 마을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시모노세키가 일본의, 나아가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에서 갖는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이 지역의 옛 이름이 조슈(長州) 번입니다. 메이지 유신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지역이었죠.


시모노세키의 바다


 에도 시대 조슈 번의 지배자는 모리(毛利) 가문이었습니다. 처음 에도 막부가 세워질 때 도쿠가와의 반대편에 서 있었고, 그 때문에 농업 생산량이 적고 외진 곳에 있는 조슈 번으로 보내진 것이었죠. 하지만 조슈 번은 이곳에서 나름의 개혁과 발전을 이어갔습니다.


 1858년, 서양 세력은 일본에 개항을 요구합니다.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고 현상 유지를 원했던 막부는 서양과 무역을 하고 문호를 개방하고자 했습니다.


 막부는 서양과 무역을 하겠으니 허락해 달라는 요청을 교토의 덴노에게 보냈습니다. 물론 덴노에게 실권은 없었으니, 이것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죠.


 하지만 고메이 덴노는 관례를 깨고 막부의 요청을 거부합니다. 막부는 덴노의 의사를 무시하고 서양과의 통상조약 체결을 강행했습니다. 일본은 이제 막부를 중심으로 한 통상파와, 덴노를 중심으로 한 양이파로 완전히 나뉘었습니다.


조슈 번주였던 모리 가문의 저택


 조슈 번은 초기부터 막부에 반대하는 양이파였습니다. 조슈 번은 역사적으로도 에도 막부와 사이가 좋지는 않았으니까요.


 고메이 덴노는 1863년 막부에게 서양 세력을 쫓아낼 것을 명령합니다. 물론 여전히 덴노에게 실권은 없었고, 이 명령은 덴노가 막부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수사에 불과했습니다. 어떤 번도 이 명령에 응하지 않았죠.


 하지만 조슈만은 달랐습니다. 덴노의 명령을 받은 조슈 번은 해안에 포대를 설치하고, 해협을 지나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상선을 공격했습니다. 서양 세력은 반격했고, 조슈는 물론 패배했죠.


 조슈 번은 독자적으로 소요 사태를 벌여 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켰고, 그마저도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그 책임을 물어 조슈 번과 친했던 귀족들은 정치에서 완전히 배제됩니다.


 여기에 조슈 번은 덴노에게 직접 의견을 전달하겠다며 군대를 이끌고 교토로 향합니다. 전투 끝에 조슈 번의 군대는 격퇴당했습니다. 교토를 공격한 조슈는 덴노에게서도 외면당하고 역적으로 낙인찍힙니다. 막부는 조슈를 공격하려 군대를 일으키기도 했죠.


시모노세키 영국 영사관


 조슈는 반전을 꾀해야 했습니다. 서양 세력과 싸운 조슈는 서양 기술의 우수성을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조슈 번은 시모노세키 항구를 열고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양이’라는 명분은 사라졌습니다. 이제부터 막부와 조슈 사이의 경쟁은 일본의 방향성을 둘러싼 경쟁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막부에게는 쇼군이, 조슈에게는 덴노가 있었을 뿐이었죠. 근대화와 서구화라는 목표에는 모두가 동의한 채, 누가 그 목표를 먼저 성취하느냐를 둘러싼 경쟁이 되었습니다.


 1866년에 조슈 번은 사쓰마 번과 손을 잡았습니다. 사쓰마는 조슈와 마찬가지로 양이를 주장하다가, 영국과 전투를 벌인 뒤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입한 지역이었죠.


 사쓰마는 원래 막부와 가까이 지내며 조슈와는 대적했습니다. 하지만 막부는 사쓰마 출신 인사들을 홀대했고, 중앙 정계에서 점차 배제했습니다. 결국 사쓰마 역시 반막부파로 돌아서면서, 조슈 번과 손을 잡게 된 것이죠.


 사쓰마와 조슈가 손을 잡으며 일본 정치의 무게추는 반막부파로 분명히 기울었습니다. 1867년 말, 막부는 정권을 덴노에게 반납했습니다.


 이듬해 사쓰마와 조슈의 무사들이 궁궐을 장악한 채로 왕정 복고의 대호령을 내리며, 메이지 정부가 수립됩니다. 막부의 잔존 세력이 전투를 벌였지만 전쟁은 1년여 만에 신정부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메이지 시대라는, 일본의 새로운 세기가 열리게 됩니다.


아카마 신사


 조슈 번은 초기부터 막부에 반발했던 지역으로,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었습니다. 그러니 일본 근대사에는 중요한 땅일 수밖에 없죠.


 메이지 정부 초기의 지도자였던 기도 다카요시도, 그 뒤를 이은 이토 히로부미도 조슈 출신의 인사들입니다. 조슈 출신은 일본 육군의 핵심 세력을 이뤘고, 총리도 다수 배출했습니다. 당장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지역구가 시모노세키였습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과 청의 강화 조약이 맺어진 곳도 시모노세키였습니다. 청의 실권자였던 이홍장이 직접 일본으로 건너와 협상에 참여했고, 그러자면 중국과 가까운 시모노세키가 편리했던 것이죠.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일본은 조선에서 청의 영향력을 배제했고, 타이완 섬과 요동반도를 할양받았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이 시작되던 순간이었죠. 그런 점에서도 시모노세키는 중요했습니다.


청일 강화회담 기념관


 시모노세키는 한국과 가까운 땅입니다. 1905년부터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연결하는 ‘부관 연락선‘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운항하고 있으니까요. 부관 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에 도착한 뒤, 산요 철도를 통해 일본 각지로 향하는 것이 과거에는 일반적인 경로였습니다.


 부관 연락선이 운영되기 전에도 시모노세키는 한국과 가까웠습니다. 혼슈의 끝에 위치한 항구 도시인 만큼, 한국이나 중국에서 일본에 오기 위해선 시모노세키를 거치는 경우가 많았죠.


 이홍장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조선통신사도 대마도를 거쳐 시모노세키에 상륙한 뒤 에도로 향했습니다. 그러니 그 시절부터 시모노세키와 조선의 교류는 활발할 수밖에 없었죠.


조선통신사 상륙기념비


 시모노세키의 작은 마을에서, 한국과 일본의 닮음과 다름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였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차이를 설명하는 여러 수사가 있지만, 저는 ‘보편의 한국’과 ‘특수의 일본’이라는 표현을 즐겨 씁니다. 한국의 역사는 대체로 보편성에 가까이 가려는 투쟁이었고, 일본의 역사는 특수성을 획득하려는 투쟁이었다는 것이죠.


 물론 그런 경향이 역전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빠르게 새로운 세계 질서에 적응하는 데 성공했고, 조선은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러한 역전조차 시모노세키였기 때문에 가능한 반전이었을 수 있습니다. 시모노세키는 조선이나 중국을 비롯한 과거의 ‘보편 세계’와 가까이 있던 땅이었으니까요.


 실제로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조선과 중국에서 수입된 유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게 평가됩니다. 유교 경전을 공부한 ‘독서하는 사무라이’들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계급 사회였던 에도 막부를 타파하고 능력과 학식을 중시하는 국가를 수립하려 했다는 이론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죠.


시모노세키의 바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보편과 특수가 교차하던 시모노세키야말로, 진정한 유신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겠죠. 메이지 유신은 보편과 특수가 교차한 바로 이 땅에서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동아시아의 근대는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붕괴하고, 서구 중심의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는 과정이었습니다. 과거의 보편에 머물렀던 조선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기했습니다.


 반면 과거의 보편에서 자유로웠던 일본은 새로운 세계의 조류에 쉽게 올라탈 수 있었죠. 손쉽게 양이를 포기하고 문호를 개방한 조슈는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보편과 특수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이 우월하다는 가치판단은 내릴 수 없습니다. 다만 서로의 세계관을 분명히 알고, 각자의 단점을 보완할 필요는 있겠죠.


 다시 보편과 특수가 교차하는 시모노세키에 서서, 이제는 한국과 일본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과거사의 많은 격랑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오늘에서도, 저는 서로가 서로에게 발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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