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용은 하나도 없는 숙취 도시락
전날 '공동육아'라는 타이틀 아래 지척에 살지만 간만에 만나(2주?) 언니네 부부와 신난 나머지 소주 6병을 먹고 얼큰하게 취해 잠이 들었다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술만 마시면 왜때문에 눈은 일찍 떠지는건가 희대의 미스테리한 유리간을 지닌 나는 나답지않게 일곱시에 눈을 떠 기계처럼 취사버튼을 누르는 아름다운 아침풍경을 맞이했다. 숙취는 썰물따윈 없고 밀물처럼 밀려들어왔지만 남편 도시락을 만들겠다고 미리 장본 부지런함이 아까워 도시락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작심 2일만에 끝낼 순 없어
(이대로 끝내기엔 도시락통 값이,,)
도시락을 싸야겠다고 마음 먹은 후 좋은 점이 있다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던 남편의 입맛에 대해 생각해본단 거였다. 참고로 남편은 요즘 시대에 보기드문 수더분한 입맛을 가진 남자로 내가 만든건 무조건 기계처럼 맛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다(입맛이 마더테레사)
결혼 5년차, 처음으로 남편이 무얼 좋아하는지에 대해 매일밤 고민을 했다. 아 이거 좋아했지, 지나가는 말로 이거 먹고싶다고 했던거같아 (심쿵스멜), 이건 완전 오빠 취저메뉴네! 밤마다 드러누워 천장보며 고민하다 메뉴를 정하고 그에 맞는 식재료가 집에 없으면 온라인 장을 보고 만드는 순서를 혹시 까먹을까 싶어 메모장에 정리해놓는다.
내일은 남편이 좋아하는 스팸마요덮밥을 만들어야겠다
왜 그날따라 스팸마요덮밥이 생각난건지 모르겠지만
요상하게 그날밤은 그걸 만들어주고 싶어 마요네즈 잘 짤수있는 짤주머니까지 정성스레 구매했다 (과소비오죠따)
또 등장한 벌크업 도시락 무엇
3인분 아니고요 1인분 도시락통 맞고요.JPG
파도처럼 밀려드는 숙취로 힘든 아침이었지만 정신승리하면서 스팸을 볶고 그와중에 상추데코 지금 봐도 기가맥히고 코가맥히고. 동그랑땡은 솔직히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확인할 정신머리가 없어 내 마음처럼 까맣게 타들어갔고 남편이 샐러드에 치즈가루 뿌려먹는게 소원(?)이라 해서 치즈가루 주방 싱크대에 몸을 기댄채 겨우 뿌려주어 완성된 숙취해소용 메뉴 단 한 개도 없는 두 번째 도시락
소박했던 나의 바람은,, 이날은 그냥 남편이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취향저격 도시락 메뉴를 짜본거였는데 만들고보니 나만큼 숙취로 힘들 남편네에 숙취저격 도시락을 만들어주었네. 브런치를 빌어 사과의 말을 전해봅니다
(브런치모름주의)
이 날의 메뉴는,
스팸마요덮밥 / 동그랑땡 / 백김치 / 볶음김치
치즈가루 솔솔 뿌린 샐러드와 디저트는 방토
yame(야미말고 야메) tip
스팸마요덮밥 / 고슬고슬 밥 깔고 테두리에 상추> 계란> 스팸 순 넣어주세요. 마요네즈를 뿌렸는데 매콤한걸 좋아하고 느끼한건 참기 힘들다 하는 분들은 1:2 비율로 와사비:마요를 섞어먹음 더욱 맛있음주의 (단! 적당히 뿌려야합니다. 저처럼 칠갑팔갑하시면 속쓰림주의)
남편은 이 날 회사에서 우직하게 도시락을 싹싹 다 먹었다고한다. 국물은 없어도 양이 푸짐해 속이 든든해서 숙취가 가셨다고 말하던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라면물을 올렸다
'사랑하는 감정이 뭐 별건가' 를 느낀 도시락
숙취에도 도시락을 싸주는 나와
숙취에도 도시락을 비워준 남편
그게 사랑이지!
그 날 이후 분수에 맞게 술을 마시게 되었다는 해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