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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May 21. 2021

감시를 당하고 있는 당신!

주말 아침이다. 남편은 아침밥을 먹자마자 세차 도구를 챙겨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윤이 나도록 차를 닦는 지독한 '내 차 사랑'을 누가 말리겠는가. 비 오는 날도 세차를 한다는 어느 문우님의 남편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사람이 우리 남편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큰일 났어. 지금 주차장으로 빨리 내려와 봐." 남편이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 깜짝 놀라 허둥지둥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보니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차 뒤 범퍼가 고물처럼 찌그러져 있다. 누군가가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악셀레이터를 밟아 세게 들이박은 모양이었다.


"누가 그랬을까? 같은 아파트 사람일 텐데, 연락처도 안 남겼어? 사방팔방 블랙박스와 CCTV 가 벌겋게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내 차에는 블랙박스가 없는 것을 안 걸까?. 당신이 설치하라고 할 때 할걸."


그동안 남편은 사람을 믿어야지 누굴 믿느냐면 블랙박스 따위는 필요 없다고 큰소리쳤던 사람이다. 뒤늦게 후회하며 길게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사고를 내고 도망간 뺑소니 운전자를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우리는 우선 아파트 관리실로 가서 CCTV부터 확인해 보기로 했다. 주차장에는 여러 대의 CCTV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설상가상으로 우리 차가 서 있는 곳은 거의 사각지대로 상대 차량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 혹시 다른 차 블랙박스에 찍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심하게 찌그러졌는데." 남편은 거의 울상이 되어 말했다. 다행히 우리 차 앞뒤로 서 있는 차들을 보니 블랙박스가 장착이 되어 있었다. 이리저리 연락한 끝에 다행히 협조를 해주시는 분이 있어  블랙박스 영상을 돌려 볼 수  있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만 보던 장면이  내 눈앞에서 펼쳐졌다. 하얀 차 한 대가 우리 차에게 빠른 속도로 돌진하며 부딪히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화면이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차 안의 사람은 여성분인 듯했다.


그리고 어렵게 차량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했더니 "고쳐주면 될 거 아니에요. 누가 사고 내고 싶어서  냈어요. 제가 초보운전이라 서툴러서 그랬는걸. 제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어요? 이거 사생활 침해 아닌가." 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당당해도 너무 당당한 그녀의 모습에 우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녀는 마치 우리에게 자신이 한 행동을 들켜 억울한 듯 보였다. 블랙박스나 CCTV가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 그녀를 보니 2달 전에 내가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은 오랜만에 날씨가 화창했다. 남편과 가족 묘소에 다녀오려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내가 운전할게. 당신 감기약 먹었잖아."

가는 길에 김밥을 사서 가려고 가게 앞에 주차를 하려는데 마땅히 할 곳이 없었다. 하는 수없이 남편을 김밥 가게 앞에 내려주고 인근 아파트로 들어갔다. 그곳도 상가 근처라 주차할 곳이 없어 이리저리 찾아  헤매고 있는데  뒤에서  차들이 계속 빵빵거렸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겨우 자리를 발견하고 들어가다 그만 운전 미숙으로 옆에 있는 차를 긁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장이 방망이질을 하고 머릿속은 하해 졌다. 오직 그 순간 그 자리를 어서 피하고 싶었다. 부랴부랴 차를 빼서 남편이 기다리는 김밥 집 앞으로 갔다.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면 지금 일어난 일이 다 해결될 듯싶었다. 반쯤 넋이 나간 나를 보더니 "무슨 일 있었어?" 한다. 


사고 난  과정을 이야기했더니 깜짝 놀라며 " 사고 경위야  어떻게 됐든 당신같이 양심을 버린 사람들을 있으니까  요즘에 여기저기 블랙박스와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거야. 어떤 사람은 그 기기들이 인권 침해와 사생활을 침해한다 등 말이 많지만......" 하며 남편은 사고 난 차량 앞에 있는 연락처를 보고 전화를 해 사과를 했고, 차량을 수리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던 기억이 났다.


지금에 와 그날 일을 생각해 보니 사고를 내고도 사과 한마디 없이 오히려 당당했던 그녀나 그 상황을 회피하려고 도망쳤던 나 역시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나서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비양심적인 일이 계속 일어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생각햬 보니 끔찍했다. 그래서인지 그 감시의 눈길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진화해, 우리 생활을 위협할지 다가오는 미래가 불안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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