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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잉위잉 Jun 25. 2016

정신적 왼손잡이#29. 사회인 실격(1)

20160622. 사회인 실격(1)

1. 그들과 다른 세계


난 명랑하고 발랄한 사람들이 무섭다. 부럽고 경이롭다. 때로는 싫다가, 가끔은 신기하다.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은 마치 생경한 걸 보는 듯 물그러미 쳐다보게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은 일, 이성을 만난 일-소소하고 평범한 일들로 이루어진 톡톡 튀는 대화는 먼 이국의 언어 같다. 무엇이 저렇게 즐거울까. 어떻게 하면 즐거울까?

뭐가 그렇게 즐거울까.

그 사람들이 장난 삼아하는 말들이나 놀림을 난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다. 완곡하게 "에이, 그만하세요"라고 하긴 하지만, 그럴수록 난 그들 사이에서 어울리기 힘든 유형의 사람이 된다. 그래서 약으로 일상생활을 버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직무 수행도 해야 하므로-회사의 생활을 먼저 밀어내기로 했다. 식사는 늘 혼자 하거나 나와 성격이나 식습관이 비슷한 부사수님과 먹었다. 식사를 일찍 마치면 낮잠을 잤다. 왁자지껄한 퇴근길을 피하고 싶어서 30-40분 정도 과근했다. 가끔은 몹시 무시당하는 기분이 문득문득 들었지만 참기로 했다.

내가 몹시 싫어하는 단어지만, 나 같은 사람을 흔히 '진지충'이라고들 하는 모양이다(오타쿠라는 놀림은 더 이상 반박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지쳐서 할 말이 없다). 사회 어젠다를 두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슈 파이팅의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의 충격적인 모습을 보며 "극혐이다, 미친 거 아냐?"라는 말부터 나오기보단, '저 일이 일어난 배경에는 이러이러한 과정이 있었다. 그래서 저런 수단까지 쓰게 된 것이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고 파고드는 게 나다. 그리고 이런 나의 설명은 자주 무시당한다(안물 안궁).


이쯤 되면 난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억지로 나의 언어로, 이세계와 통신하려 애쓰는 멍청한 외계인은 아닐까. 다시 떠오르는, 작년 이맘때의 요괴 이야기.  



2. 셀프 소외 


 회사 단체 워크숍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니, 못한 게 맞다. 다시 다니기 시작한 의과의 검진 일정이 겹쳐서였다. 10개월 가까이 함께 일한 사람들과 회포를 푸는 자리인데 같이 가자고 사수(사실 '사수', '부사수'라는 말은 군대 용어지만, 회사의 상사를 무난하게 지칭할 마땅한 호칭이 참 없다)님이 몇 번이고 설득하셨지만 진료시간을 옮기는 일은 어려웠다. 재직 중인 인턴 중에선 내가 제일 여러 사람들과 일했으니, 나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었던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이 진료를 놓치면, 2주를 주간 약물 없이 버텨야 한다. 


나의 팀 동료들은 더욱 내게서 멀어져 있다. 난 꾸준히 '슬픔이'다. 사람들의 사진 속에 남겨지기도 싫었고 말을 나눌 힘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잊히고 싶었다. 


어느 날 오후, 부사수님께 고백했다. 일도 겨우겨우 하고 있을 만큼 힘들다고. 사람끼리, 흔히 말하는 "케미"가 안 맞는 일이야 어딜 가나 있지만, 난 뇌 어딘가가 고장이 나서 그런 일을 대수롭게 넘기는 방법을 잊어버렸다고. 그게 너무 심해서, 내가 여기서 뭘 더 해낼 기력도 없을 만큼 사람에 지쳐있다고. 누가 널 힘들게 하느냐는 질문엔 답하지 않았다. 내 기분과 성격은 나조차도 예상할 수 없는데 타인이 맞춰주기란 불가능하거니와, 어린애도 아니고 그런 고자질 같은 이야기는 하기 싫었다. 


계약기간은 2주 남았다.



3. 독특한 취향


포털 사이트에 공개해놓은 이력서를 보고 별 어중이떠중이들이 연락을 해왔다. 저녁 10시 30분에 전화를 해 오지를 않나, '스타트업이지만 곧 외국에서 투자받을 거다'라며 연봉도 공개하지 않고서 일단 오라고 들이미는 곳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정중히 연락해 온 곳의 면접을 가기로 했다. 전화는 받지 못할 경우가 많으니 전자메일로 연락을 달라고 부탁하자, 곧바로 정중한 인사글과 함께 60페이지에 달하는 회사 포트폴리오를 전송해줬다. 


흰 셔츠를 락스에 담가 깨끗이 세탁했다. 쉭쉭 김을 내는 다리미를 커프스에 천천히 문지르며 넥타이를 하나 살까 생각했다. 친구들이 '그건 너무 남자 같지 않나?'라고 만류했다. 단정하면 장땡 아닌가? 셔츠를 꽤 좋아하기 때문에, 언젠가 볼로 타이라도 마련하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언제부턴가 특이한 아이템을 몸에 걸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어 커프(금속 알레르기가 있어서 피어싱은 할 수 없다)나 팔찌, 사선으로 컷팅된 셔츠, 특이한 디자인의 스냅백, 볼로 타이 등... 무튼, 이 면접으로 말미암아 5년 만에 여름용 정장 재킷을 새로 샀다. 슬리브에 절개가 들어간 캐주얼 재킷. 서서히 취향도 바뀌나 보다. 



4. 비위 맞추기?


사실 면접 경험이 많지 않다. 그 마저도 굉장히 편안한 형태의 면접을 봤다. 카페에서 이뤄지거나, 정장을 갖춰 입지 않아도 되는 면접, 좋아하는 소설 작가가 누구인지 묻는 면접 등등. 이번의 면접은 취업 사이트에서 자주 보던 유형과 비슷했다. 애석하게도 난 거기에 맞춰 답할 줄을 모른다. 즉, 질문에 내 생각을 개진하는 건 아주 잘할지라도, '면접관의 취향에 맞는 답변'을 할 줄은 모른다는 거다. 


현재 재직 중인 곳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우리가 야근이 잦은 건 아니지만, 만약 야근이 생기면 어떻게 할 건가요?"라고. 난 이렇게 답했던 걸로 기억한다.

"왜 오늘 야근이 필요한지 설명해서 절 이해시켜주시면 야근합니다. 오늘 끝내야 할 일이 있는데, 이런 사정으로 지금 시간이 모자라다. 그러니 조금만 더 일을 해줬으면 한다. 이렇게 이해를 시켜주셔야지, 다짜고짜 '그냥 넌 내 부하니까 내 말 들어'라고 강제하시면, 별로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 전 인턴이라 야근 수당도 없고, 저뿐만 아니라 모두의 시간과 에너지는 소중해요. 그리고 우린 '일을 마친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고요. 서로의 시간과 에너지를 빌리는 데엔 당연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겠죠."




면접 결과를 알려주기로 한 날짜로부터 삼일이 지났고, 아무 소식이 없다. 면접자들 중에서 회사 생활을 해본 사람도, 대학 기졸업자도 나뿐이었다. 다만, 정규직 연봉과 사내 복지, 업무 분할 정도에 대해 물어본 사람도 나뿐이어서였을까? '전 이 회사로 이직을 하는 입장이니, 당연히 이전의 직장보다 여기가 더 좋은지 꼼꼼히 따져봐야 하거든요.'라는 말이 결정타였던 모양이다.


사회 초년생 정규직 초봉의 평균은 2300만 원이라고 한다. 세금을 제하면 월 실수령액은 약 150만 원 정도 된다. 부모님께 지원받고 있는 월세의 반액(20만 원. 실제 월세는 50만 원이지만 내가 거짓말을 했다)을 이제 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금보다 크게 다를 바 없는 액수다. 숨만 쉬고 모아도 내 자취방의 보증금도 못 모을 돈이다. 하루 종일 내 허리와 몸을 졸라맸던 슬랙스 바지와 허리띠, 셔츠를 벗어던져놓고 침대에 누웠다. 격한 피로가 몰려왔다.


다들 이 정도 수준의 연봉이면 좀 더 신중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즉, 조금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회사를 가거나 하다못해 교통비라도 덜 드는 곳, 이름값이라도 좋은 곳을 가는 게 낫겠다는 거다. 대학 원서를 집어넣을 때도 그랬지, 아마. 그러니 조급할 필요가 없다.

그게 세상살이라며 불합리와 모욕을 참으라는 말은 도움이 안 됐다.
이 안도감은
언젠가 좋은 직장이 나타날 거라는 희망보다는,
어차피 다 비슷할 거라는 절망에서 온 것이다.



5. 가능할까 사회인


"너무 걱정 마요. 작년보단 지금의 위잉씨는 많이 나아졌어요."


"정말 그렇습니까?"


"네. 작년 여름처럼 고통스러울까 봐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우선 지금까지 사회생활과 커리어를 쌓아왔잖아요. 이직 준비를 시도할 만큼의 기력이 있다는 거죠. 그때의 막연함과 지금의 막연함은 달라요."


"하지만 어딜 가나 나와 안 맞는 사람은 있고. 나와 맞는 사회생활을 할 만한 여건이 과연 있기는 할까요. 할 수나 있을까요, 저."


"힘들어요. 확실히. 회사란 게 그렇죠. 위잉씨가 이제 사회를 만나고 경험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전 사소한 것도 이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벅차요. 식사도, 술도, 이야기도..." 


무기력의 부작용 및 자기 학대의 대체로, 최근에 음식을 극단적으로 줄였다. 기록한 식사를 넘겨보면 거의 패션모델들이나 연예인들이나 먹을 법한 음식 양이다. (물론 그들은 운동을 더하거나 춤 연습을 하지만, 난 운동은 거의 하지 않고 누워있는 게 대부분이다.) 추가된 약은 구갈이 굉장해지기 때문에 2리터짜리 생수통을 금세 비운다.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먹고 싶은 게 없기 때문에 외식 약속도 잡지 않는다. 주말엔 잠이라도 많이 자고 싶지만, 출근 습관이 들어 일찍 깨버린다. 오전 내내 눈을 뜬 채 시체처럼 누워 있다. 작년 여름처럼. 하나 다른 점은, 지금은 내가 입 짧고 까다로운 사람이 됐다는 것. 어쩌다가 식사라도 하면 온 몸이 뒤집어질 듯 몸살이 난다.


"위잉씨가 식사를 줄이는 목적은, 평소에도 자주 말했던, 신체 외형에 관해서 갖고 있는 강박도 있는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뒤통수 부근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아, 사회란 뭘까. 사회인은 뭐고 사회생활은 뭘까.

면접장에서 내가 한 말들이 와글와글 온몸을 타고 기어 다닌다.


정신적 왼손잡이. Fin.

※에세이 <정신적 왼손잡이>는, 필자 위잉위잉이 2015년 6월부터 현재까지 모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로 통원 상담 및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기록한 치료 일지로부터 시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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