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몰라도 괜찮아요. 결국엔 사람 이야기”

연극 '튜링머신' 배우 이상윤

by 위키더뮤지컬

매년 꾸준히 연극 무대를 이어가는 매체 출신 배우가 있습니다.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으로 잘 알려진 배우 이상윤인데요. 엘리트 이미지가 강한 그가 이번에는 새로운 작품을 통해 또 한 번의 연기 변신을 시도합니다. 천재 과학자 앨런 튜링의 삶을 다룬 연극 ‘튜링머신’을 통해서죠.


현대 컴퓨터 과학의 선구자이자 인공지능(AI)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인물이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던 비운의 천재, 앨런 튜링. 소재와 주제 모두 결코 쉽지 않은 이 작품을 이상윤은 왜 선택했을까요? 지난 1월 29일,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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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을 이끈 ‘튜링머신’의 극의 형식


이번 작품을 통해 앨런 튜링이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됐다는 이상윤. 대본을 읽으며 인물 자체에도 흥미를 느꼈지만, 그가 이 연극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극의 형식’이었습니다.

“극 안에서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식이 궁금해졌어요.”

이상윤은 “그동안 무대 안에서만 연기해왔다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는 강연 형식을 빌려 관객들에게 생각할거리를 던지는 장면들이 이어지는데요. 이러한 형식이 이상윤에게는 호기심으로 다가온 거죠.


4면형 무대는 새로운 도전


일반적인 공연과 다른 4면이 객석으로 둘러싸인 무대 역시 이상윤에겐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사방이 객석이다 보니 연기 외적으로도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았던 건데요. “관객들이 어디에서든 볼 수 있게 동선 등을 섬세하게 고려했다”는 그는 “극장에 들어오니 생각했던 것과 달라 사실 혼란스럽기도 했다”고 솔직한 심경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상윤이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기준은 바로 "두 인물 간의 감정과 극의 정서"라며 "사면의 관객을 고려하면서도 인물의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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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이 본 ‘앨런 튜링’

앨런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암호 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하며 연합군의 승리에 기여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 사회에서 불법으로 취급되던 동성애를 했단 이유로 화학적 거세형을 받았고, 이후 자택에서 생을 마감하며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했죠.

작품에선 도둑이 들었다며 경찰서를 찾은 튜링의 현재를 출발점으로 과거를

오가며 주변 인물들과 함께 그의 삶을 차분하게 그려내는데요. 이상윤은 자신이 바라본 앨런 튜링을 “보통의 사람들과 달라서 더 외로웠던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보수적인 시대 속에서 지능적인 면을 포함해 여러 가지 면에서 너무 앞서 나갔던 사람이죠. 하지만 누구보다도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싶어 했던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 고독하고 외로웠던 거고요. 만약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우리가 아직 상상하지 못한 미래를 내다보는 선구자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결국엔 사람 이야기


이공계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수학이나 과학 분야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이상윤은 “극을 따라가는 데 수학이나 과학적 키워드를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본을 계속 보다 보니까 그런 이야기들은 겉을 둘러싼 장치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중심에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그는 “‘다름’으로 인해 한 사람이 느끼는 고립감과 외로움에 집중하면

극에 조금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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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매력 “깨지면서 채워지는 자신감”


2019년 연극 '올모스트 메인’을 시작으로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는 이상윤. 매체에서는 주로 젠틀한 캐릭터를 연기해왔지만, 무대 위에서는 바람둥이('클로저’ 래리), 허당 배우('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밸) 등 기존 이미지와다른 캐릭터에 과감하게 도전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는데요.

이상윤은 “연극은 긴 시간 연습하며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점에서 더 과감한 도전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는데요. 그는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고 말하며, 그 경험이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도 함께 전했습니다.


“부족한 점을 계속 마주하고 깨지다 보면, 그만큼 조금씩 채워지는 게 느껴져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감도 생기고요.”


이상윤의 또다른 매력을 만날 수 있는 연극 ‘튜링 머신’은 오는 3월 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글 : 이우진

사진 :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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