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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한 달에 약값으로 천 만원을 쓸 수 있는가?

by 위키트리 WIKITREE

유자혜(가명성)씨는 폐암 5년차 환자다. 1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돈 뭉치를 들고 병원을 찾는다.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생겨 신약을 먹어야만 살 수 있기 때문. 4주 분량의 약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꼭 눈물로 터져 나온다. 정부가 약속한 항암제 보험급여를 기다리다1년만에1억을 넘긴 약값, 평생 일해 모은 노후자금도 곧 바닥이다.


“약 먹으면 밥 먹을 돈이 없어 굶어 죽고, 밥 먹으면 약 먹을 돈이 없어 병으로 죽고… 굶어 죽나 아파서 죽나 뭐가 다르겠어요?” 신약 치료비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최근 투약을 중지하고 정부의 보험 급여에 자기 목숨을 걸었다는 폐암 환자의 절규다. (#폐암 말기 환자 임지원씨의 이야기)


img_20170511175509_55e6d6f1.jpg 이하 Fotolia by Adobe



두 환자 모두 우리나라 사망률 1위 폐암 환자들이다. 우리나라 폐암 치료 특성상 암 유전자 변이에 의한 내성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기 때문에, 세계 최초라는 폐암 내성 표적항암제 신약 타그리소가 식약처 허가를 받자 금방 보험급여가 될 것으로 믿고 몇 달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자기 돈으로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해가 지나도록 여전히 정부는 보험적용을 해주지 않고 있고 이들은 캔서 푸어가 되었다.



‘메디컬 푸어’, ‘캔서 푸어’ – 암 걸리면 빈민층


당신은 한 달에 약값으로 천 만원 쓸 수 있는가? 암 환자들 중에는 집도 팔고 그것도 모자라 대출 받는 경우도 생긴다. 왜? 재난적 의료비 때문이다. ‘메디컬 푸어(medical poor)’, ‘캔서 푸어(cancer poor)’는 과도한 의료비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한 신(新) 빈민층, 의료극빈자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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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적 의료비라니! 내가 낸 건강보험은 어디로?


이렇게 메디컬 푸어로 전락하는 이유는 바로 재난적 의료비 때문이다. 재난적 의료비는 전체 가계지출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10~40% 이상을 넘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재난적 의료비가 발생한 가구들을 분석한 연구결과, 의료비 대부분이 ‘약값’ 부담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꼬박꼬박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는데, 암에 걸리면 왜 메디컬 푸어가 될까? 정부가 혁신적인 항암 신약에 건강보험 적용을 모두 못해주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인해 지출은 늘어나는데 인구감소로 수입은 줄어들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을 아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우선순위를 따져 보험적용 여부를 결정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는 암 치료 보장이 국민의 생명에 시급하고 위중하다고 판단하여 암 질환을 우선 보장하겠다고 천명했으나 환자들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난 정부는 암과 희귀질환을 포함해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정책’을 시행하며 고가 항암제 보장을 약속했지만, 오히려 항암 신약의 연간 보험급여 적용률은 40%에서 20%로 하락했다. 앞서 언급한 폐암의 경우만 봐도, 지난 2년간 5개의 폐암 신약이 판매 허가를 받았지만, 급여에 등재된 품목은 한 건도 없다.



img_20170511175635_0b259cac.png KCCA ‘한국 암치료 보장성의 현주소’




보험이 되면 약값의 5%만 내도 되지만, 보험이 안되는 약은 환자가 100% 약값을 부담해야 한다. 여기서 재난적 캔서 푸어의 비극이 시작된다.



국민 3명 중 1명이 암 환자, 항암제 건강보험 우선해야!


올해 초 발표된 국가 암 통계자료에 따르면, 국민 3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경험할 정도로(10만명 당 298.1명) 암은 보편적인 병이 되었다. 또한 생존을 위협하고 환자와 가족들 모두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 차원의 사회경제적으로 인명과 비용의 손실이 크다는 점에서 건강보험의 우선적인 보장이 절실하다.


지난 해 진행된 암환자 인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암 환자가 치료 과정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1위가 경제적 요인(37%), 2위가 정신적 요인(31.9%)이었고, 정작 몸이 아픈 육체적 어려움은 3위에 불과했다. 또한 연간 암 치료 비용은 평균 2,900만원에 달했고, 항암제 구입비용이 5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국암치료보장성확대협력단(KCCA). 암환자 현황 및 인식 조사. 2016.11.)


그러나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약을 쓰면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국내 암 환자의 10명 중 6명 이상이 비보험 약물 치료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img_20170511180016_caaeb1c2.png 이하 KCCA 암환자 현황 및 인식 조사 N=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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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죽나 굶어죽나 - ‘캔서 푸어’ 절망과 희망의 목소리


보험급여가 안되는 고가 항암제는 캔서 푸어의 근원이 되거나, 그림의 떡, 희망 고문이 되어 버린다. 암 환자들 대부분은 “앞으로 길어야 몇 년”을 선고 받는다. 그리고 앞으로 일년만, 몇 개월만, 한 달만이라도 더 살아서 가족들을 돌보고 싶은 애절한 마음으로 신약을 기다리고, 신약이 나오면 보험급여만을 기다린다.


“아들 결혼시키고 손자 보고 이제 겨우 살만해졌다 싶었는데 마침 집사람이 폐암 진단을 받아 정말 속상했죠. 평생 고생만한 사람.. 돈 때문에 그냥 내버려둘 수 있나요, 돈만 있으면 이 약 먹고 다시 말도 하고 혼자 걸어다닐 수 있는데요. 평생 번 돈을 쏟아붓는 것만 빼면,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약이지요.” 폐암 환자 유자혜씨 남편의 말이다.


시간이 촉박한 말기 암 환자들은 그림의 떡 항암신약에 보험 적용을 해달라고 정부의 문을 두드리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img_20170511180110_7705b69d.png 건강보험 심사평가위원회 홈페이지 / 건강보험 급여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평가위원회 홈페이지에는 폐암 신약 급여화를 요청하는 민원이 작년부터 계속해서 올라온다.


img_20170511180148_6822dd04.png 다음 아고라 /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를 올라온 항암제 급여청원 호소문. 1천 명 이상의 공감을 얻었다.



유자혜씨 부부의 이야기와 같이, 항암 신약이 절망의 끝에서 만난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돈이 희망을 절망으로 바꾸지 않도록, 암 환자의 내일을 보장해줄 수 있는 새 정부의 새 정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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