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전통시장이 쓸쓸하다고 적어줘. 사람이 아무도 오지 않잖아."
설 명절을 앞둔 17일 오전 경기 수원의 대표적 전통시장인 지동시장에서 만난 축산물 판매상 최모(58·여)씨는 장사가 잘 되느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경기가 잔뜩 얼어붙었다고 하소연했다.
그가 취급하는 국내산 육우 가격은 설을 코앞에 둔 이번 주 들어 ㎏당 1천∼1천200원이나 올랐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설 차례상에 필수인 구운 고기, 즉 적(炙)을 만들 때 쓰는 우둔, 설도 부위 판매량도 많이 떨어졌다는 게 최씨의 설명이다.
최씨는 "아버님 때부터 40년 가까이 장사를 했지만, 올해 설처럼 장사가 안된 적이 없다"며 "경기가 나빠 안 그래도 손님이 없는데, 고깃값까지 오르다 보니 명절이면 열 근씩 사가던 단골손님들마저 고기를 덜 사 간다"고 털어놨다.
과일이나 생선을 파는 상인들은 주요 상품의 값이 지난해 설과 비슷하거나 되레 떨어졌는데도, 찾는 사람이 없다며 발만 동동 굴렀다.
한 과일 가게에서 파는 선물용 사과의 경우 5㎏ 기준 A급이 3만 5천원∼4만원, B급이 2만 5천원∼3만원으로 지난해 설보다 각각 1만원, 7천원씩 값이 내려간 셈인데도, 문의 전화조차 거의 걸려오지 않는다고 한다.
과일 판매상 박모(51)씨는 "예전처럼 명절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점차 사라져서 손님들의 문의조차 없다"며 "사과나 배 등 꼭 필요한 과일도 딱 차례상에 올릴 만큼만 사가는 손님이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산물 판매상 이모(64·여)씨는 "조기, 동태포, 꽃게 등은 5년 전과 똑같은 값을 받는데도 잘 팔리지 않는다"며 "수산물의 경우 못 팔면 버려야 해서 올해 설에는 물량을 대량으로 들여놓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푸념했다.
강추위가 물러가 비교적 포근한 날씨가 찾아온 이 날, 농수축산물을 파는 지동시장을 비롯해 인근의 미나리광시장, 못골종합시장 등에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간간이 오가는 50∼70대 손님들도 소량의 음식과 재료가 든 검은 비닐봉지 한두 개를 든 게 전부여서 설 명절 '대목'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했다.
시민 양모(74·여)씨는 "경기 불황이라 생활비도 빠듯한 마당에 차례상을 어떻게 푸짐하게 차리겠느냐"며 "차례상 비용을 쪼개고 또 쪼개 20만원까지, 작년의 반 수준으로 줄였다. 설 당일날 가족들끼리 먹을 음식만 할 생각이다"라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자 각 지자체는 전통시장 지원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수원시는 오는 20일부터 사흘간 지동시장 주변에서 달고나 만들기, 솜사탕 먹기, 활쏘기 체험 등으로 구성된 마케팅 행사를 열어 시민들을 끌어들일 계획이다.
24일과 26일에는 염태영 수원시장 등 지자체 관계자들이 주요 전통시장을 방문해 온누리상품권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이벤트도 할 계획이다.
경기도는 각 지자체 등과 협의해 지난 16일부터 도내 61개 시장 주변 도로주차를 허용, 방문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허용 기간은 이달 30일까지다.
최극렬 수원시 상인연합회장은 "많은 시민이 값싸고 질 좋은 농축수산물을 보유한 전통시장을 애용해줬으면 한다"며 "각종 통계에서 나왔듯이 차례상 비용은 대형마트보다 전통시장이 저렴하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전통시장 살리기에 큰 도움이 되는 온누리상품권을 애용하도록 각 시군과 산하기관에 홍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이 19만3천504원으로, 대형마트(21만3천323원), 기업형 슈퍼마켓(SSM·23만5천782원), 백화점(29만2천680원) 등보다 저렴한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