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카드로 대화하며 느낀 것들
지난 주 회사에서 워크샵이 진행되었다. 매번 교수님들의 강연을 들어야 했었는데 이번에는 산뜻하게 아로마테라피를 준비했다고 한다. 회의장 테이블은 5-6명이서 앉을 수 있는 조별세팅으로 되어있었는데, 회사 측에서 야심차게(?) 지정석을 마련해 주었다. 매일 보는 동료가 아닌 인사만 하고 스쳐가는 타부서 직원들과 함께 앉게 되었다. 처음엔 다들 투덜거리는 듯했다. 조향에 들어가기 전, 아로마테라피스트가 직원들 각자의 현재 상태와 감정을 '감정카드' 더미에서 고르고 서로 대화해 보라고 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평소 친한 동료와 같은 조가 되었다. 그 친구는 더미에서 <열정적인>과 <도전적인> 이라고 적혀있는 감정카드를 두 장 골랐다. 평소에도 그런 친구이긴 하지만 나는 그에게 "이거 완전 가짜 감정이다!!" 라고 했다. 그건 너의 현재 상태가 아니라 지향하는 모습이지 않냐며. 그는 수긍하곤 <열정적인>을 <화난>으로 바꿔들었다. 그때까지만해도 타인이 간과하고 있는 무언가를 짚어준 것 같은 기분에 뿌듯함을 조금 느꼈더랬다.
사람들은 <든든함>, <행복함>, <만족스러움>, <피곤함>, <감동적인> 등의 카드를 골랐다. 나는 길게 고민하다가 제일 늦게 골랐다. 나름대로 내 감정을 세세하게 쪼개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나보다. 한동안 글쓰기를 하지 않아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자신이 왜 이 감정의 카드를 뽑았는지 설명했다. 어색할 줄 알았는데 꽤나 진솔한 답변들이 나왔다. 타부서 K씨는 '여러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지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든든함을 느낍니다.' 라고 했다. 우리 조직에서 꽤 어린 편에 속하는 P씨는 '요즘 밤을 새고 있어서 <피곤함>을 골랐고,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힘들어 하기에 <막막함>을 골랐다.' 라고 했다. 그의 카드에는 <감동적인>도 있었는데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되느냐 묻자 '최근 연애적으로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며 얼굴을 붉혔다. 우리는 (진심으로) 환호했다.
나는 <답답함>과 <재미있음>을 골랐다. 미래에 대한 답답함, 공간에 대한 답답함(곧 이사를 가야한다), 취미로 글을 쓰는데 집중할 시간이 나지 않아 시작을 못하고 있다며 스스로 대는 핑계에 대한 답답함, 나는 매사에 재미있는 게 많은 사람인데 이래저래 여유가 없다며 어쩌구 저쩌구 횡설수설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이 자리에서 굳이 내 속내를 드러낼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웃기지도 않지. 스스로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위선이다.
같은 조였던 L선임은 <행복함>과 <만족스러움> 카드를 뽑았다. 회사 식당의 영양사를 맡고 있는 그녀는 '일이 힘든 와중에도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이대로는 못하겠는데~ 하다가도, 조리장님의 요리를 맛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라고 했다. 나는 겉잡을 수 없이 궁금해져 '일 적인 부분에서만요?' 라고 물었다. 가정에서의 일도 그렇다고 한다. 남편과 아이들 덕에 행복하고 이 모든 게 감사하다고 한다. 그러곤 쿼카처럼 웃었다. 진솔한 감정의 표현.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많은 분들이 긍정을 의미하는 감정카드를 골라서 놀랐다. 나에게는 부정적인 감정이 긍정적인 감정보다 진솔하다 치부하는 면이 있다는 걸 스스로 느꼈다. 나 또한 분명 긍정을 항상 느끼면서 살고 있고, 예스맨에 가깝고, 감사함을 남긴 강력한 순간들 덕에 매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히려 좋아'가 모토인걸…? 그럼에도 부정의 감정이 '진솔'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열정과 도전을 선택한 동료에게 그건 가짜 감정이다 라고 놀림 아닌 놀림을 했던 나를 돌이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