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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린 Nov 08. 2021

게으르고 싶어서 열심히 살아요!

나중에 0잡 할려고 투잡 해요.

회사 다니면서, 강연도 다니고, 블로그도 운영하고, 공부도 하고 있다. 나중에는 자료들을 엮어서 책도 출판할거고, 유튜브도 할 거다. 아직 내가 생각하는 '부지런하다', '열정적이다'의 기준은 더 높은 곳에 있는데, 주변 사람들은 나보고 활력 넘쳐서 부럽다고 한다. 하루 중 아무것도 안하고 멍때리거나 의미 없이 웹서핑 하는 시간의 비율이 높고, 자기 합리화의 달인이라 매번 할 일을 미루기만 하면서, 주말에는 16시간을 자고 8시간을 깨어 있는 삶을 보내는 나로서는 대체 뭐가 부지런하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나와 같은 업계에서 탑으로 유명하신 분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것 같다고 한탄했다. 그리고 나의 열정에 자극 받았다며 본인의 일기장에 쓰셨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 분이 세상에서 제일 능률적으로 살고 계시는 것 같은데 어째서 우리는 자신을 게으르다고 생각하고, 서로를 부지런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각자가 생각하는 '완전 무결하게 부지런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자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것이 아닐까.




나의 부지런함의 원동력은 남들보다 뒤쳐진 것에 대한 열등감이다. 대학 졸업 후 정서적으로 암흑기가 와서 시간 대비 비효율적인 알바만 전전하며 입에 풀칠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잠만 자는 삶을 5년 이상 보내다가 30살을 거의 앞두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을 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나이대의 동료들은 대리나 선임급 이상으로 이미 잘 나가고 있었는데. 나는 30살 되어서도 2천만원대의 연봉에, 모아둔 돈은 커녕 아무것도 안 하던 시절에 생활비 명목으로 카드 리볼빙 돌리다가 생긴 빚만 가득했다.


내 기준으로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두 배 빠른 연봉 상승률이 뒷받침 되어야만 했고, 악착같이 일해서 결국 5년도 안 되어 목표했던 연봉을 초과 달성했다. 부가적인 수입을 다 합쳐서 세전 기준으로 초봉의 5배 가량 받고 있으니 놀랄 만한 성장률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하루 20시간 넘게 일하고 쪽잠을 자던 날들이 누적되어 몸 건강이 파탄이 나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과거보다 훨씬 낫다. 적어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만큼은 완전히 사라졌지 않은가.


이제는 경제적 어려움도 없고, 좋은 회사로 이직도 성공했고,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예전만큼 필사적일 필요도 없어서 더 이상 나 자신을 갈아 넣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매일같이 새벽 기상을 하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나중에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대신 취미 생활도 하고, 돈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생활 수준은 되어야 한다. 아직 노후 자금은 커녕 내집마련도 못했지만, 이 정도의 성장률이면 딱 10년 뒤에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고 행복 회로를 돌려 본다.




그러니까 나는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엄격한 것도 아닌 것이 확실하다. 남들이 나보고 부지런하다고 할 때 마다 부끄러운 감정이 드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나중에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서 지금을 열심히 사는 것 뿐이고 태생은 무척이나 게으르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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