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참외 이야기
대학시절, 아마 스무살 즈음부터 스스로를 개똥참외에 비유했었다.
척박한 땅에서도 꽃피우고 열매 맺는 개똥참외.
아마도 당시에 스스로가 그런 존재라고 생각 했던 모양이다.
그런 스스로를 자랑스럽고 좋았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웬만큼 알이 굵어진 이후에는 하우스참외처럼 보이고 싶었다.
개똥참외라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노랗고, 싱싱하고, 향이 나는 하우스 참외처럼 자라났으니깐.
거기다가 시장에 팔리려면
나도 다른 하우스참외처럼 따뜻하게 자란 것처럼,
개똥 말고 영양제만 먹고 자란 것처럼 보여야 했다.
그렇게 해야 하우스 참외랑 같은 자리에 놔줄것 것이라는 생각을 했나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내가 개똥참외였다는 과거를 지우고,
하우스참외인척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아니 어느새 하우스참외가 되고 만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던 개똥참외는
하우스 참외로 살면서 정신연령이 멈춰버리거나 혹은 퇴보하고 말았다.
많이 나약해지고, 연약해졌다.
하우스에 안주해 버린걸까.
사실 하우스는 안락하다. 행복하다. 따뜻하다.
그래서 자주 잊는다. 뜨거운 태양과 차가운 바람을 견뎠던 지난 날들을.
견뎌내며 성장했던 지난날만큼 치열하고 싶지도, 더 이상 크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어느순간부터 70% 즈음에 최대치를 맞추고 살아왔다.
이제는 개똥은 아예 먹기도 싫고, 달콤한 영양제만 먹고 싶고, 고급 영양제도 먹고 싶다.
그러다가 다시 비바람 부는 곳에 오게 됐다.
하우스 밖으로 간다고 스스로 자원했건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춥고 외롭다.
작은 하우스는 있지만 워낙 바깥이 춥고 가물다.
볕이 잘 들지 않는다.
그래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 마음에 볕이 들기를. 스스로 볕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그래서 이 비바람 부는 곳에서도
자주자주 볕을 쐬주어서 한뼘이나마 자랄 수 있기를.
그리고 잊고있던 옛이름을 다시금 찾아냈다. 개똥참외.
비바람 속에서 개똥 먹고 자라도, 꽃피우고, 열매 맺는 개똥참외.
이 추운 겨울 속에서도 다시 볕을 찾아낼 수 있기를,
100% 성장하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기를.
그리고..다시 스스로를 찾아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