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글쓰기란
막막함
이 주제를 받았을 때, 맨처음 떠오른 생각은 '막막함'이었다.
글쓰기 수업도 듣고 있고, 덕분에 1주일에 한 번씩 글을 쓰고는 있다지만
작가도 아닌 내게 '글쓰기'가 '나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할 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가?
기회의 디딤돌
하지만 차분히 돌이켜보니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글쓰기'가 있었다.
태어나 처음 받은 '상'도 초등학교 때, '글쓰기 상장'이었고, 대학도 논술 전형으로 합격을 했다.
가끔씩 대학 논술시험을 마치고, 친구들과 노란 은행나무가 드리워진 기나긴 내리막길을 함께 내려오던
14년전 그 날이 생각난다.
아, 나 진짜 여기 오고 싶었는데..망했다.
마지막 단락 마무리도 못했어
라며 엄청 징징댔었는데..결국 함께 시험보러간 4명 중 나 혼자 합격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청 얄미웠을 것 같다. 친구들아 잘사니..)
생각해보면 입사, 승진도 논술과 함께 통과를 했다.
글쓰기는 내게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기회의 디딤돌'이 되었던 것이다.
마음의 볕
그리고 요즘 글쓰기는 내게 '볕'이 되어준다.
'매일 비가 오는 이 나라' 대만에서 '볕'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귀하다.
오랫동안 햇볕이 들지않아, 눅눅하고 곰팡이가 쓴 내 마음에,
글이라는 볕을 비춰주면 나도 모르게 뽀송뽀송해짐을 느낀다.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과 함께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따뜻한 온기를 쐬어줄 때
마음 속 눅눅함과 어두움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느낀다.
나를 마주하는 창
또 글쓰기는 '나를 마주하는 창'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바쁘게 살았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비로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때 행복한지'조차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맞다. 내가 이런 걸 좋아했었지.
난 이런 사람이었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처음에 느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듯한 불편함'이 점점 사라지고,
어느새 오히려 스스로가 '아예 그 옷 자체가 돼 버린 느낌'이다.
내 취향과 내 생각은 그다지 중요시 하지 않고, '조직의 정답'만을 고려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 나마저도 '내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주지 않았나보다. 꽤 오랫동안.
그런데 내가 오랜만에 묻는다. 그 물음이 오랜만인지조차도 몰랐다가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어떤 때 행복하지?
지금 느끼는 감정은 뭐지?
하고
그 시작이 감사하다. 그 '들여다봄'이 고맙다.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하는 외국생활, 제한된 인간관계와 상황이 답답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제한된 상황이 오랜만에 '나'를 들여다보게 한다.
간만에 만난 '내'가 반갑다.
그 매개가 되어준 글쓰기가 고맙고, 그 가운데 만난 따뜻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낀다.
앞으로 남은 기나긴 인생길에도 글쓰기는
아마도 때로는 '디딤돌'이 되고, '볕'이 되고, '창'도 되어주겠지.
남은 여정 중에도 간만에 만난 '나'를 잊지않아야겠다.
그러려면 고마운 '글쓰기'와도 계속 사이좋게 지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