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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녀석 성휘 Mar 05. 2021

#20. 부럽다 부러워

열아홉 번째 날:산티바네스까지35km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레온(Leon)에서 산티바녜스 데 발데이글레시아(Santibañez de Valdeiglesias)까지 35km





 레온의 알베르게에서 기부금 형식의 심플한 아침을 먹고는 천천히 출동 준비를 했다. 아침식사로는 정말 소박하게 빵, 버터와 쨈, 그리고 커피와 차뿐이다. 너무 조촐해서 내가 가진 치즈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는데, 치즈는 어제 아침에 사서  하루 종일 가방에 넣고 다녔더니 녹아 붙어 떡처럼 뭉겨져서 아주 못생기게 변해버린 치즈였다.  원래 한 장 한 장 얇게 슬라이스 된 상태였는데 녹았다 붙었다를 반복해서 덩어리도 변한 치즈를 칼로 잘라 빵에 쓱 넣어 먹고 있으려니 옆의 아주머니가 치즈를 토스하라고 닦달하신다. 게다 눈에는 원망의 눈초리도 가득하다. 아주머니는 딴에는 그 치즈가 개인 사유물이 아닌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치즈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어차피 남은 치즈를 가져갈 생각이 아니었기에 그냥 드리긴 했는데, 염치없는 동양 여자가 공동 치즈를 다 먹는다고  오해할까 봐 마음이 좀 찜찜했다. 

내 꺼인데 왜 내 것이라고 말을 못 하는가..... 하하하

사실 그 오해를 풀어드릴까 하다가 그냥 아무 말도 안 했다. 오해 푼다고 하다가 오히려 그 아주머니가 민망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과 뒤엉켜 레온의 시내를 걸었다. 대도시는 역시 밤과 낮의 얼굴이 완전히 다르다. 레온은 원래 예전에 로마군에 의해 지배를 당했다.  당시 갈리시아에서 가져온 황금과 구리를 지키기 위해 로마 황제가 직접 보낸 총독이 주둔할 만큼 상업 중심지로 성장했으나, 지금은 예전의 명성은 그냥 과거의 영광으로만 남았을 뿐이다. 레온을 떠나면서 이제 본격적인 순례길은 이제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 지루한 메세타 고원을 지나기에 이 구간은 버스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돌이켜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악명을 얻을 만큼 지루하거나 재미없는 구간은 아니었는데  그 구간의 헐값으로 매도당하는 게 아쉽다. 

 오히려 레온을 벗어나면서 나오는 길이 참 재미없었다. 중간에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왼쪽 길은 돌아가긴 하나 숲 속 길을 걷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왼쪽 길보다는 짧지만 찻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원래 계획은 숲 속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는데 가다 보니 계속 찻길로만 다녔다. 아무래도 중간에 왼편으로 빠지는 길을 놓치고 지나갔나 보다.

한참  그렇게 지루한 걷다가 간이매점에서 아나를 만나 그녀와 같이 걸었다.




루마니아에서 온 아나까리온에서부터 계속 마주쳤다. 까리온에서부터 난 하루 평균 30킬로 이상을 걷기 시작했는데, 그녀도 나와 같은 거리로 이동했기에 계속 마주 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레온까지 체코에서 온 알렉스와 같이 다녔는데, 알렉스는 일정 상 어제 레온에서 순례길을 끝내고는 체코로 다시 돌아갔다.

그러니깐 어제 알렉스와의 이별을 끝내고 눈물범벅이 된 채 숙소로 돌아온 그녀를 달래준 것은 나였다.

  

 내가 그들을 까리온에서 처음 봤을 때, 희한하게도 그들은 묘하게 닮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에 난 둘이 아주 사이좋은 남매이거나 아님 연인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들과 이야기하고 나서야 그들이 순례길에서 처음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감지한 둘의 그 기운을 이야기하자 그들도 서로를 그렇게 느꼈다고 한다. 그러니깐 처음 그들이 만났을 때, 한눈에 서로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고 좋은 친구가 될 것이라 느꼈으며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이행되었던 것이다.

아나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이쁜 사람이지만, 알렉스도 사람이 유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런 둘이 까미노 길 내내 이야기를 하며 오다 보니 생각도 비슷하고 관심도 똑같고 모든 게 비슷한 것 투성이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말이 아주 잘 통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들은  그 짧은 몇 주간 정이 들었고 이른바 소울메이트라고 서로를 확신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이 지난 기간 같이 장거리를 많이 걸어온 것도 정해진 일정 동안 더 많이 같이 걷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순례길에서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들은 그런 부류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제삼자인 내가 보기에도 아나알렉스는 사랑에 빠진 연인보다는 우정이 아주 깊은 절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도 본인 입으로 그런 이성적인 감정은 아니라고 했다. 그보다는 마치 아주 오랫동안 알았던 친구처럼 편하고 익숙한 느낌의 감정이라고 했다.



아주 부럽다. 썸을 탄다거나 사랑에 빠졌다는 것보다 베스트 프렌즈 혹은 소울메이트 한 명을 얻은 그녀가 너무 부럽다. 

아나와 같이 걸었지만 서로의 배꼽시계가 다르기에 쉬는 포인트는 달리해서 움직였다. 때문에 만났다가 헤어졌다를 반복하면서 걸었다. 그러다 30km를 넘게 걸었을 지점에서 우리는 피로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나 나나 오늘의 목적지는 산티바녜스로 정했다. 사실 마음은 그다음 마을까지 가고 싶었는데, 갈등을 하다가 산티바녜스에서 멈추기로 한 것이다. 피로감과 함께 발이 불편해져서 나의 속도는 현저하게 느려졌기에 마을 진입 2km 전쯤 해서 그녀는 나와 헤어져 먼저 마을로 갔다.




한참 걸어 도착한 산티바녜스, 그 마을에 알베르게는 단 두 개. 공립 알베르게에 가봤더니 아나는 없었다. 다만 다른 순례자라고는 몬티밖에 없었다.

알베르게에는 직원도 없었고 교회의 신부님이 대신해서 나의 숙소 절차를 밟아주었다.

 신부님이 말씀하시길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분이 모친상을 당해서 장례식에 가고 없으니 우리끼리 알아서 지내라면서, 다음 순례자 오면 어떻게 처리할지 대충 지시를 내리셨고,  문단속 주의사항을 알려주시고는 신부님은 홀연히 사라졌다.

 상황이 참 웃기다. 별로 인기 없는 작은 마을이라 순례자가 없다고 예상은 했지만 나와 몬티 달랑 둘 뿐이라니... 게다 직원도 없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하는 일과를 마치고는 몬티와 같이 이웃 알베르게에 있는 카페에 갔다. 거기에 가보니 먼저 온 아나를 만날 수가 있었다.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하는 순례자를 피해서 몬티, 아나, 그리고 나. 셋이서 조촐하게 술과 음식을 나누며 대화를 했다. 그들의 관심사가 나와는 많이 다르기에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난 거의 경청만 했다.




몬티온두라스에서 온 청년이다. 원래는 카를로스 그룹에 있었는데, 그들과 반복되는 습관에 변화를 줘야 될 것 같다면서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룹에서 벗어나 까리온에서부터 평균(보통 하루 평균 25킬로를 걷는다) 보다 더 멀리 걷기 시작했고, 그 시기가 나와 딱 맞물려서 지난 며칠 내내 그와 같은 숙소에서 지내게 된 것이다.  몬티는 동안인 데다가 만화 티에 포켓몬 야구모자를 쓰고 있어서 마냥 어리게 봤는데 이래 봐도 속이 꽉 찬 청년이다. (난 처음에  20대 초반일 줄  알고  마냥  아기처럼  대했다.  실제론  20대 후반) 그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 중 하나가 온두라스 어린이에게 독서를 생활화할 수 있게끔 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 했다. 몬티를  순례길  초반부터  알고 지냈지만  이리  진중하게 이야기해보는 것은 처음이다.

 몬티아나. 이날 밤을 마지막으로 난 그들을 순례길에서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다음날 난 복병을 만나 짧게 걸었고 그 덕분에 그들과 거리에 차이가 나면서 자연스레 이별을 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꼼뽀스텔라에 도착해서는 내가 그곳에서 오래 지냈기에 피니스테라에서 돌아온 몬티와 다시 상봉할 수 있었다.

몬티말로는 피니스테라에서 아나를 만나 같이 걸었다고 했다. 그것도 하루에 60km를....

 말이 60킬로미터이지  정말 하루 종일 걸은 셈이다. 무서운 녀석들이다.



여하튼, 그날 밤 텅 빈 알베르게서 몬티와 나랑 단둘이서 정말 독방 쓰듯이 편하게 잠을 잤다. 내가 순례길을 걸으면서 꿀잠을 잔 적이 불과 다섯 손가락에도 꼽지 못하지만, 그중의 한 번은 이날이었다.

그리고 난 이날의 그 꿀잠이 다음날 더한 피로감을 가져다주지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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