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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영수 Mar 15. 2024

[에세이]환전

청렴하다는 착각



정말 더운 나라다.     


 이 나라는 이방인을 환영하지 않는다. 공항에 적혀있던 Welcome 글씨도 거짓말 같다. 날씨가 그렇잖아. 끝나지 않는 더위. 아침부터 저녁 일곱시까지 무자비하게 내려찍는 태양은 나를 쫓아내려고 하는 것만 같다.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목덜미에서 따가운 태양선이 느껴진다. 햇빛을 피하려 그늘을 찾아 걸으면서도 템포를 쉬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잠깐 멈추었을 때 쏟아지는 땀 때문이다. 고작 이 나라의 일상에도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


  더위를 피할 겸 쇼핑몰 안으로 들어갔다. 할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마침 이 나라 현금이 다 떨어지기도 했으니 환전소를 찾을 심산으로. 일본 라멘집 맞은편에 있는 환전소. 보통 환전소가 식당 주위에 있었나. 유럽인 두세 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작은 신뢰감을 주는 환전소였다. 한국 돈 오만 원권 한 장을 손에 쥐고 기다렸다. 환전소는 단순한 구조였다. 안과 밖을 나누는 기준은 허리 높이까지 오는 담 하나, 그 위로는 유리로 막혀있었고 주먹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조그맣게 뚫린 틈을 통해 거래가, 뚫어논 몇 개의 구멍으로 대화가 가능한 구조였다. 환전소는 두 개의 창구가 운영 중이었는데 그 안은 직원들이 서로 대화하고 왔다 갔다 하며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를테면 A 창구에서 B 창구 직원에게 뭔가를 달라고 요청을 하면 손님과 거래하는 와중에도 창구를 넘나들며 뭔가를 주고받곤 하는 것이다. 옆 창구에선 아까 그 유럽인 손님 무리가 지폐 뭉치를 바꿔가는 것을 쳐다보며 저 많은 현금을 어디에 쓸지 생각했다. 카드도 잘 되는데.     


 한화 오만 원을 이 나랏돈으로 바꾸면 약 170링깃. 100링깃 지폐 한 장, 50링깃 지폐 한 장, 10링깃 지폐 몇 장과 동전 조금이 나올 것이다. 내 차례가 되어 작은 틈 안으로 5만 원권을 밀어 넣었다. 한국 지폐를 어디에서 많이 봤을까. 한국 관광객이 이미 많이 와서 아무런 생소함이 없을까. 몇 장 안되는 지폐를 주면 끝날 직원의 일 처리가 현저히 늦다. 계산기를 여러 차례 다시 두드린다. 지폐 세는 기계에 현지 지폐를 한 움큼 넣고 다시 확인한다. 얼핏 봐도 가치가 백만 원이 넘을 지폐의 개수다. 왜 저렇게 많지. 오만 원을 오만 달러나 오만 유로로 착각했구나. 뱃속이 꾸물거렸다. 그 순간 흐르는 땀이 더운 걸음을 갑자기 멈춰서 쏟아져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숨이 턱 막힌다. 올 것이 왔구나.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줄 알았지.        

       

 스무 살 딱히 내세울 것이라곤 무엇도 흐릿한 그 시절에 무엇 하나라도 내세워보자 하고 나를 돌이켜보고 남들보다 나은 점을 샅샅이 뒤져 나는 그래도 남들보다 이것만큼은 우수하다고 깃발 세울 가치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마도 TV나 드라마, 영화와 같은 미디어를 흡수하고 나온 결과물이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되짚어보니 정말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던 차였다. 한자어로 된 어떤 두 글자로 나를 설명하려 해도 지인 중 몇몇은 인정해 줄 테지만 일부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을. 혹은 나 스스로 외면하고 싶게 민망할 정도의. 예를 들어  ‘나는 진실한 사람이야, 나는 성실한 사람이야’라고 정했을 때 ‘너 예전에 단순 재미를 위해서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거짓말로 농담을 해댔었잖아.’ 누군가 반문을 제기한다면. 혹은 지난 주말의 기억이 바로 떠올라 할 일을 제쳐 두고 낮잠을 선택했던 내가 어떻게 성실해 하고 자문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 상태로 붉어진 얼굴로 숨지도 못하고 위선자로 낙인찍히게 되어 내가 선의로 해왔던 일까지 싸잡아 무가치하게 느끼게 되거나 그대로 우울에 빠질까 봐, 그런 여러 가지 불안에 사로잡혀 고개를 휘휘 젓고는 다른 어떤 것을 찾았던 때 내가 찾아낸 가치가 바로 청렴이었다. (그런 행동을 왜 하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당시의 나에게 있어 이 행위는 수많은 개인 중에서 나를 객관적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방법이었고 그 세대들에게 요구하던 개성이라는 명사의 나 나름의 이름표였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앞으로 이 가치만은 지켜서 살고자 하는 다짐이었던 것도 같다.)     



청렴.     



당시 내가 생각한 청렴이란 것은 별개 아니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하지 않는 수준. 땅에 떨어진 지갑을 경찰서에 찾아다 주는 정도. 버스 교통카드를 찍으려던 아줌마가 흘린 만원 한 장을 그대로 주워 다시 아줌마에게 돌려주는 것. 아마도 검사들이 온갖 청탁을 받아 그것이 후에 탈이 되어 파국으로 치닫는 어떤 드라마를 보고 경각심을 느낀지 얼마 되지 않았을 그 시점. 하지만 누구에게 청탁을 받을 상황도 아닌 그저 일개 대학생으로서 앞에 말한 몇 가지 행위원칙만 지켜낸다면 내가 본 드라마의 주인공 검사와 같은 청렴을 얻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남는 장사였다.     


 그 후로 나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청렴한 사람이야’로 살아왔다. 누군가 흘린 돈을 줍지 않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로비를 받아주는 검사가 되지 않으리라. 일개 지방 영상기관의 영상장비 담당자로 일하며 마음가짐만큼은 로맨틱했던 것이다.  2천만 원이 조금 되지 않는 거래를 앞두고 거래처 사장이 제안한 술자리와 재고로 남는다며 따로 몰래 불러 손에 쥐여주려던 2백만 원 정도 값어치의 드론. 친분이 없는 사람과 퇴근 후 시간을 보내기 싫었던, 드론에 취미도 없어서 거절했던 거라고는 절대 말하지 않은 채 이 에피소드를 당당하게 이야기하며 뒤에 나를 청렴한 사람으로 보이게 할 탄탄한 증거를 확보해왔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 지폐 뭉치를 이 틈 사이로 내밀면 난 어떻게 할까. 제가 받을 돈은 170링깃이에요 하고 영어로 말해야 할까. 영어가 서투니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그걸 그대로 자연스레 받아 여길 나가도 내가 속인 것이 아닌 저 직원의 실수이니 괜찮은 건 아닐까. 환전소에서 이런 실수는 비일비재한 일이 아닐까. 나는 이방인이잖아. 이 나라에 대해 잘 모르잖아. 이 나라는 나를 환영하지도 않았잖아. 날씨도 너무 더웠잖아. 지폐 개수기 돌아가는 소리가 찢어지듯 느껴지며 오줌이 마려웠다.    

   

 그 순간 옆 창구의 직원이 나에게 170링깃 정도의 합당한 지폐를 내밀었다. 내가 응당 손에 쥐었어야 할 그 가치의 금액. 환전소 창구 직원이 돈다발을 들고 섰던 것은 앞선 손님과의 거래를 다시 한번 체크해 본 것이었구나. 괜히 모니터의 대한민국 원화 값어치를 한 번 더 체크하고 지폐를 세어본다. 그 돈뭉치가 저 구멍을 통해 나에게 주어졌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나는 내가 알아 왔던 나와 같을 수 있었을까. 청렴하다는 착각.  내가 그 날 환전한 것이 단순한 원화와 현지화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어떤 것이 함께 교환되어버린 이 지폐들을 정리도 못 한 채 지갑에 넣고는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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