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딱 출판

by 떼굴

"한 달 안에 글 쓰기 & 책 출판하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실현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초초단기 출판의 핵심은 생성형 AI 활용이었다. 그게 가능하다고? 구성원이 꾸려지자 불신 가득한 마음이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꿈에서나 가능할 비현실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달콤함. 출판이라는 유혹에 감겼지만 돌다리는 두드렸다는 자기 위안도 필요했다. 주최자는 대강의 얼개만 있으면 AI가 척척 알아서 해 줄 거라 확신 페로몬을 뿌렸다. 나는 주최자를 신뢰했다.


오래 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세상에 공짜 없다는 말이다. 젊을 때는 수두룩 뻑뻑, 천지 삐까리 공짜 투성이인데 뭔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 했었다. 그러나 궁극의 깨달음에 세상 이치가 물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궁극의 깨달음은 반복 경험으로 얻어진다. 세상에 공짜 없다는 말의 저울도 그러하다. AI 실체를 모르니 출판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도 최대로 낮아야 한다.


전문가가 붙어줄 때 AI가 뭔지 어떻게 활용할지 유용할 방법까지 배운다면 그걸로 충분한 기회라 생각했다. 책이 덤으로 따라오면 좋겠지만 책 출판에 필요한 준비 또한 아주 얕았다. 그러니 출판 결과물이 안 나와도 상관없었다. 출판 과정을 알아가는 것 또한 덤이고 그거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역시 세상엔 공짜 없다는 사실을 또 확인했다. 2년 전 일이다.


2년 전 생성형 AI는 작은북 위에 모래를 뿌린 듯 두드릴 때마다 두구두구두구 자글자글 자글 끓는 소리를 냈다. 선구자가 두구두구 두드리면 대중이 자글자글 뒤를 잇는, AI 열풍의 실체는 실로 신기했다. 그러나 한편 무서웠다. 나의 상상은 실용 쪽이기보다 악마의 음모로 키워져 가없는 생명을 무고하게 해치는 쪽으로만 자랐다.


AI 키워드인 프롬프트. 명령어에 따라 결과물이 천지차이로 벌어진다는 자각 정도가 전부였던 나는, AI가 대세로 떠오른 새로운 판에서 승자란 결국 그 판에서 놀던 사람들이라는 체념이 몰려왔다. 그렇게 어리바리한 내가 더군다나 별 관심도 없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명령어 익히기에도 택 없이 부족한 현실이 거기 있었다. 그런 마당에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덥석 한. 달.이라는 희번덕한 미끼를 문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명령어를 붙잡고 헤매는 사이 주어진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필요한 시간을 한 달에서 다시 세 달로 늘려 주었지만 나는 그저 나풀거릴 뿐이었다. 어떻게 해도 맘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불가능. 결국 포기를 선언했고 다신 뒤 돌아보지 않았다.


그럴싸한 단어를 비벼 내 감상과 맥락 없는 문장을 내놓고, 어때요? 묻는 뻔뻔한 기세가 속이 터졌다. 거듭 고쳐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미사여구가 붙지 않아도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풍경화도 그려지는 문장은 얻어지지 않았다. 여운이라곤 눈곱도 남기지 않는 AI를 붙들고 끙끙댈 시간에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라고 유예시켜 터진 속을 아물렸던 2년 전의 추억.


2년간 숙성된 생성형 AI는 등장마다 커튼콜에 불려 나온 배우들처럼 기립박수를 받고 있다. 관객은 결과물에 환호한다. AI 팬층이 점점 확장되는 듯하다. 반면 자기 직업이 위협받고 있다는 탄식도 들린다. 그러하나, 나는 AI가 결코 인간의 창조성을 뛰어넘지는 못할 거라는 쪽이다. 어쩌면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일지 모르는 나는 여전히 무관 무심한 태도로 유지하는 중이다.


얼마 전 페북에 글을 올렸다. 그 글을 보고 나의 친애가가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올린 글 "두 사람"으로 재밌는 각색을 해 메일로 보냈으니 보라는 내용.


Claude AI에게 내 글 전체를 주고 "30분 분량의 유튜브 원고로 만들어 달라"라고 하니

오프닝멘트, 관찰과 상황분석, 관계역학의 변화등의 썰을 풀고 나아가 등장남녀인 20대들의 심리와 특징을 분석하고 현대 연애의 복잡성 그리고 건전한 관계의 기준까지 그야말로 다각 다방으로 물고 뜯고 맛보라며 결과를 토해냈던 것이다. 허허 그거 참. 그럴싸하구나.


어떤 직업군은 위협을 느낀다에 공감하는 날도 멀지 않았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