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코 앞인데도 날씨는 여전히 여름 한가운데 머물러 있다. 비가 지나간 오후, 무심히 고개 돌린 창 밖에 남녀가 서있다. 둘은 분수대 옆에 한참을 붙박여 있었다. 반팔티에 반바지 차림의 남자 얼굴이 보인다. 내쪽을 향한 그는 다소곳한 태도다. 여자는 반팔티에 청바지를 입었다. 머리가 길고 날씬한 체형이다.
소나기가 지나간 여름은 마른날보다 후덥지근해서 자리를 뜨지 않는 그들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남자가 공손한 자세를 유지하는 걸로 미루어 둘 사이에 풀어야 할 게 있어 보였다. 여자는 가끔 숙인 머리를 들어 늘어진 머리를 쓸어 올렸다. 불만이 읽혀지는 쓸어넘김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고개를 숙이구 있을 땐 휴지인지 손수건인지 모를 것으로 얼굴을 자주 닦았다.
지나치다 싶은 남자의 공손함은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어서 둘 사이가 풀어지길 응원했다. 그랬으므로 그들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그러다 일순 괜한 개입 처럼 느껴져 하던 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다시 내다보니 상황이 좀 변했다. 우선 눈물인지 땀인지를 닦던 여자 동작이 멈췄고 서 있는 자세도 달라졌다.
여자는 짝발이었다. 양손이 허리춤에 얹어 있었는데 뒤에서 보니 따지는 모습처럼 보였다. 어쩌면 실제로 나무라는 건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 연인들 사이의 관계우의는 대부분 여자다. 카페를 오래 운영하다 보니 그들 분의기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여자는 명령체 남자는 부하체를 쓰는 경우도 자주 본다. 어쩌면 밖에 서 있는 남녀의 기세도 여자 쪽일지 모른다. 남자는 아직도 고개를 떨군 그대로다.
그들의 무더운 시간을 지켜보면서 여자가 닦는 게 눈물이 아니라 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드디어 여자가 내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뭔가를 결심한듯한 여자는 남자를 등지고 아파트 방향으로 난 오솔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자의 얼굴은 슬픔이나 고뇌가 깃들여 있지 않았다. 나는 상상했다. 여자는 설명이 먹히지 않는 남자와 대화를 끝냈다. 그 태도가 포기일까 경고일까를 점치던 그때 남자도 움직였다. 여자와 마주하던 방향과 정 반대가 되어 주섬주섬 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여자가 몇 걸음을 걷다 말고 남자 쪽을 바라봤다.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제 자리에 멈춰 섰다. 여자는 제 자리 무너지듯 앉아 휴지인지 손수건인지를 꺼내 얼굴 쪽을 닦았다. 아마 남자에게 다시 눈물을 보여주려는 모양이었다. 남자도 걸음을 세우고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나 서 있을 뿐 여자 쪽으로 걸음을 옮기지는 않았다.
죽을죄를 지은 듯한 표정을 짓던 남자, 그 남자를 내 뜻대로 밀어붙일 수 있을 거라 믿었을 여자. 나는 둘 사이의 반전을 재미있게 바라보았다.
남자는 여자가 주저앉은 모습을 보더니 뒤 돌아가던 길을 갔다. 쪼그려 기다려도 기대했던 반응이 없다고 느낀 여자는 일어났다. 그리고 남자 쪽을 바라봤다. 남자와의 거리는 이미 멀이 지고 있는 중임을 확인한 여자는 발딱 일어나 아파트를 향해 힘차게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