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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굴 Jun 27. 2024

버킷리스트를 지웠다.

청산도 섬여행


내 여행 버켓리스트에는 우리나라 섬 여행하기가 들어있다. 내면에서 끌어당기는 섬을 점찍어두고 기회 닿을 때마다 도장 깨듯 다녀오기는 꽤 오래된 소망이다. 청산도도 그중 하나의 섬이다.


수년 전, 서울 살던 지인이 진도로 귀농을 했다. 진도 역시 청산도 가는 길만큼이나 멀다. 그 집에 방문하기로 결정했을 때 청산도를 떠올렸다. 진도까지 간 김에 어쩌면 닿을지도 모른다는 흥분에 들떴다. 출발 전부터, 도착해서도, 까치발을 세우고 넘겨다 봤다. 그러나 일행의 의지와 배편 등 동선이 순조롭지 않았다. 미수에 그친 청산도는 어쩔 수 없이 욕망으로 회귀해야 했다. 그때의 아쉬움 뒤로 시간이 날 때나 마음이 뒤숭숭할 때 청산도행 교통편을 검색했다. 그러던 중 추자도가 먼저 걸렸다. 


추자도 검색에서 의외의 동선이 튀어나왔다. 제주를 통해 들어가면 시간이 절약된다. 시간 절약은 섬에 머무는 시간을 늘릴 수 있는 찬스다. 버스, 항공, 택시, 배 등 오만 교통수단을 섭렵하니 12시 30분에 추자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중 나온 민박집 차로 숙소에 도착해 차려주는 점심을 먹었다. 추자도에서 먹는 점심이라니, 그 사실 하나로 추자도의 인상이 기 막히게 좋았다. 잘 궁리하면 청산도행 역시도 그런 루트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가고 싶은 섬에는 나만의 선별 조건이 있다. 급조된 건축물로 난개발 되지 않은 곳. 나 잘났소로 지어진 기괴한 건물들은 도시적이란 표현과 동 떨어진, 그렇다고 현대적인 느낌과도 어울리지 않는 뭣도 아닌 구조물 덩어리다. 구조물 덩어리들은 그 자리를 오래 지켜온 마을의 고유성을 물귀신처럼 끌어안고 흉물로 추락시키기 일쑤였다. 촌의 미학을 훼손하는 촌빨의 꼴값이 나는 참을 수 없이 싫다.


다음으로 내키지 않는 곳은 쓰레기가 난무하는 곳이다.

접근성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넘치는 해양 쓰레기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제 아무리 명성이 높아도 그런 곳은 쉽게 내키지 않는다. 이번에 동행했던 일행 중 두 분이 청산도 일정 마지막 날 여서도에 다녀오셨다. 일명 바위구멍 메꾸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청산면에 속한 여서도는 천혜의 환경 때문에 낚시꾼들이 천국으로 여기는 곳이다. 문제는 그들에 의한 섬의 훼손. 그들은 깎아지른 절벽 밑 편편한 바위마다 파라솔 고정용 구멍을 뚫는다고 했다. 그들이 바위를 뚫는 행위는 자연 훼손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인력이 투입돼 복구해야 하는 인력소비를 유발하는 행위인 것이다. 


드라마틱한 점핑으로 입도한 추자도는 2박 3일 일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1박만 하고 돌아왔다. 상추자도에 숙소를 잡은 나는 점심을 먹고 산책에 나섰다. 가볍게 나선길이었는데 용둠벙 전망대까지 이르렀다. 용둠벙 전망대에서 보이는 나발론 정상이 궁금했다. 내친김에 숙소로 돌아와 산행 복장을 갖추고 나발론 정상까지 단숨에 선렵했다. 

추자도는 그런 곳이다. 점점 빠져들어 정상에 이르게 하는 곳. 나발론 절벽 정상에 서자 상추자도를 다 돌아본 느낌이었다. 시간 빈곤자 입장에서 2박 3일을 머물면 어쩐지 추자도에 다시 안 올 것 같았다. 다음날 하추자도에 있는 눈물의 십자가를 휘릭 다녀온 뒤 하추자도에서 제주로 나왔다. 채우지 않은 1박은 다시 오겠다는 다짐의 남김이었다.  


천천히 음미하고 싶어 1박을 남기는 곳, 그런 추자도에 해양 쓰레기는 섬의 매력을 반감시켰다. 그런데 청산도는 해양 쓰레기가 없다, 적어도 내 눈에 띄지 않았다. 섬 전체가 국립공원이라니 없는 게 아니라 관리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다만 쓰레기가 없으니 섬이 얼마나 빛나던지.


난개발도 없고 해양 쓰레기도 없는 청산도는 산으로 둘러싸인 아득한 지형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산자락에 점점이 박힌 집들은 모두 단층이다. 담장 안이 들여다 보이는 높이의 돌담도 청산도의 매력을 배가 시킨다. 마을 어디서건 조금만 나서면 몽돌해변이 있고 풀등해변이 만나는 곳, 청산도에 형성된 구들장 논은 국가가 지정한 중요 농업유산 1호다. 다랭이 논 형태의 계단식 논이지만 물 빠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들장 방식으로 바닥을 만든 게 특징이다. 섬 내 모든 길이 명품길이지만 특별히 명품길이라 이름 지은 둘레길은 구비 구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청산도 가는 길도 추자도와 비슷한 교통점핑이 있었다.

성남역에서 GTX 승차, 동탄에서 SRT로 갈아타고 목포. 목포에서 일행과 합류해 완도 여객 터미널도착, 배로 50분 만에 드디어 청산도에 입도. 

청산도 입도 시간은 3시 20분. 집 떠난 지 7시간 만이었다. 지인이 도청항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한달살이를 하고 계신 지인 덕분에 진행된 여행이었다. 오랜 묵은 지인들과의 합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어떤 말이나 행동도 서로 거스름이 없이 녹아든다는 것, 그렇게 우리는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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