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의 밥 때는 언제일까요?
냉장고를 열 때마다 하얀 종이박스가 제일 눈에 띈다. 냉장고 맨 위 칸을 덩그러니 차지한 박스는 러시아 귀족처럼 창백해 보였다. 상자 안에는 네모난 카스텔라 롤이 들어있다. 카스텔라 롤은 상자가 열리길 기다리느라 몸이 말라갈 것이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은 반드시 상자를 열어야 한다. 아니면 버리든가.
나는 빵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빵 안 좋아하는 거 맞아요? 자신이 사 온 빵에 쉴 새 없이 손을 뻗는 내게 차작 가는 물었었다. 차작 눈에는 평소 지론과 다른 행동이 다소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차작은 요즘 우리 동네 빵집을 자주 드나든다. 작은 규모였던 빵 가게는 소금 빵으로 줄을 세우고부터 건너편으로 확장 이전했다. 소금 빵 하나로 가게 규모를 세배나 키울 수 있는 능력이 부럽다. 차작이 내민 건 까눌레와 얼 그레이 식빵이다. 크기가 베이글 만했으면 좋겠어요. 까눌레를 반만 깨물며 차작이 말했다.
이거 무슨 향이더라. 최근 들어 익숙한 것 앞에서 헤매는 일이 많아졌다. 식빵에서 풍기는 냄새의 정체도 입에서만 맴을 돌았다. 기억의 번 아웃은 단지 명사로 한정되지 않는다.
나는 자영업자다. 14년째 한 장소에서 커피를 팔고 있다. 남는 게 없다는 장사꾼 말은 뻔한 거짓말로 치부된다. 장사를 하기 전엔 나도 그랬었다. 그러나 거짓도 사실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장사가 땅 짚고 헤엄치 기라는 말도 경험으로 뒤집혔다. 나는 해마다 보리고개를 넘는다.
장사라는 직업이 툭하면 밥때를 놓치는 일이라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내 밥때가 손님들의 후식 요구와 맞물린다는 뻔한 계산도 못하는 상태로 장사를 시작했다. 지금이야 요령껏 허기를 채우지만 장사 군기가 바짝 든 운영 초기엔 손님과 한 공간에서 끼니를 해결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등병 시절엔 화장실조차 제 때 못 갔다. 화장실 간 사이에 행여 손님이 기다릴까 불안해 오줌보가 터질 지경이 될 때까지 무조건 참았다.
가게를 시작하고 몇 년은 밥 없는 아침을 이어갔다. 각자 생활하는 집에는 아침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었다. 그런 형국에 밥 하는 수고까지 하고 싶지 않아 밥을 하지 않았다. 12시간 붙박이로 지내고 남은 시간에 나 먹자고 밥 하는 수고도 싫어 차라리 굶었던 거다.
그때만 해도 위장이 젊어 한두 끼 굶어도 아무 타격감을 느끼지 못했다. 아침 정도야. 하지만 인생 전환점을 돌고 나니 위장이 급격히 취약해졌다. 지금은 공복 시간이 길어지면 눈이 빠질 듯 세상이 휘청거린다.
아침을 거르고 오픈해서 손님이 빠져나간 늦은 오후에 첫 끼니를 채우던 시절, 나만 보릿고개인가 서러움에 잠기곤 했다. 게다가 만족되지 않는 매출에 회의까지 일면 서러움이 예민지수와 손을 잡았다. 예민지수가 높은 날 설움의 방향을 밖으로 돌렸다. 고픈 배를 참고 화장실도 제 때 못 가 방광염에 걸리면서 내가 얻은 게 뭔가 싶고 손님들은 이런 내 충정을 알까 하는 억울한 마음이었다.
새로운 카페가 생기면 한치 망설임도 없이 방향을 트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한다. 새로운 곳이 내 요구조건과 맞는지 충족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움직이는 게 사람들의 일반적 심리다. 내가 속한 상권도 해마다 새로운 카페가 열리지만 버티는 주기가 짧아지니 사람들 이동패턴만 분주하다.
한우물 10년이면 아무리 장사 바보라도 내공이 쌓이기 마련이다. 버틸 뿐 나아가지 못하는 장사꾼의 삶을 살며 자연스럽게 체득된 배설내공이 그것이다. 마음 안에 매일 쌓이는 쓰레기 같은 부정감정을 마음 밖에 버리는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상대를 정해 탓을 하는 배설은 진정한 의미의 배설이 될 수 없다. 내 배설장은 허공이다. 축적을 모르는 허공, 나처럼 바보인 허공이 있어 오늘도 버틴다.
현역으로 오래 살아남기 위한 강구책이 필요했다. 나는 더 이상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대기하지 않기로 했다. 지나가면서 힐끗 던지는 눈길에 희망을 품고 방광 고문도 하지 않는다. 또, 영업시간을 변경해 아침을 챙겨 먹고 있다. 하루에 두 끼, 배고픔에 눈알을 빼먹을 것처럼 위협했던 위장이 늙어 두 끼만 먹는다. 아침을 챙겨 먹고 느긋하게 출근하니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손님을 향한 원망도 줄고 빵을 먹는 일도 줄었다. 차작가가 정신없이 빵을 먹던 나를 본 그때는 내 허기를 본 거다.
며칠째 몸이 천근만근이다. 침대에 누운 시간은 몸의 쾌적도와 상관관계를 엮어내지 못했다. 꿈을 기억한 채 눈을 뜬 아침, 무거운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한다. 물 묻힌 칫솔에 치약 허리를 눌러 칫솔모에 올리고 입에 문다. 어떤 치과 의사 유투버는 물기 없는 칫솔에 치약을 올려 닦아야 치아관리에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물을 묻힌 뒤 치약을 짜는 쪽이다. 그의 조언대로 칫솔질을 바꿔보려 했지만 번번이 칫솔 위에 물을 튼다. 오랜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양치를 마치고 샤워 커튼 속으로 들어간다. 수도꼭지를 틀어 온도를 확인하고 물줄기를 바꾼다. 작은 공간은 금세 수증기로 채워진다. 수증기를 몸에 두르고 머리를 감는다. 몸에 돋았던 돌기가 제 자리를 찾을 때쯤 젖은 머리를 샴푸로 비빈다. 눈을 감고 머리를 감는다. 눈앞에 마크 로스코의 화면이 펼쳐지고 두피를 비빌 때마다 생각 각질들이 떨어져 나간다.
과거 기억이 불쑥 튀어 어제보다 선명해질 때가 있다. 최근, 오래전 기억이 튀어 올라 의식을 교란시키는 일이 잦아졌다. 심한 날은 짧은 호흡곤란을 겪기도 했다. 생각에 압도당한 호흡이 찝찝하고 답답했다. 벗어날 방법을 찾던 어느 날, 머리를 감다 방법을 찾았다고 판단했다.
생각을 말자. 세상엔 쉽게 말한 쉽지 않은 말들이 넘친다. 말이 쉬울수록 현실과 동떨어졌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샤워커튼 속에만 있으면 그게 가능했다. 생각을 말자는 불가능이 현실이 되는 공간. 그 후부터 나는 머리를 감는 행위와 샤워 커튼 속 공간이 좋아졌다. 모름지기 화장실은 배설 공간이지 않은가.
고백하자면 나는 죄의식에 사로 잡혔다. 한 달이 넘어간다. 밥을 먹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변기에 앉아 있다가 이를 닦다가 샤워를 하다가 길을 걷다가 잠자리에 들다가, 걸핏하면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한 상태가 되었다. 일상은 그저 관성에 의한 움직임일 뿐 좀비나 다름없는 패턴이었다.
샤워를 마친 거울이 뿌옇다. 스퀴즈로 거울의 기능을 찾아 준다. 오리 무중을 벗어난 거울 속에 심술 난 듯 무뚝뚝한 내가 있었다. 오래 보고 싶지 않은 표정이다. 머리를 싸고 있던 수건을 풀고 손 갈퀴로 대충 머리를 정리한 뒤 욕실을 나왔다. 거울 속에 있던 내가 따라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따라 거실이 비 오는 날 무덤처럼 적막하다. 정적이 주는 압력을 못 견딘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에어 팟을 찾아 귀에 꽂는다. 클래식이 공허한 귓속을 가득 채운다. 거실은 여전히 공허하다.
카스텔라로 아침을 때울 생각이다. 허기를 가라앉히던 빵은 섭생에 새로운 분류를 만들었다. 천연 발효종을 넣어 만들면 빵도 내 입맛에 잘 맞는다는 것, 그러나 거기 까지다. 너무 달거나 동물성 첨가물이 과하게 들어가면 여전히 뱃속이 먼저 알아차린다.
오래전 브런치를 팔아볼까 하고 빵을 배운 적이 있다. 뭐든 직접 만들어 쓰려고 했던, 일만 많고 효율은 떨어지는 무모한 시절이었다. 그때 첨가물의 기능을 알게 되었다. 빵이라는 결과물은 첨가물 쓰임에 따라 부드럽고 딱딱한 정도 밀도와 유통기간까지 조절된다. 빵을 먹고 한 시간 이내에 화장실 신호가 올 때가 있다. 십중팔구 질이 낮거나 유통기한이 임박한 버터 때문이다. 브런치는 성공하지 못했고 빵을 대하는 내 기준만 엄격해졌다.
기름기도 많고 당도도 높은 카스텔라. 호와 불호를 따지자면 불호에 가까운 빵이다. 그럼에도 그걸 먹으려는 시도에는 이유가 있다. 카스텔라에 나를 향한 마음이 들어 있다는 믿음. 나는 믿음을 먹고 싶다.
살다 보면 때때로 구강기로 회귀할 때가 있다. 그림을 그리던 시절, 유화물감에 테레핀유를 섞을 때마다 무슨 맛일까 먹어보고 싶었었다. 맨 살을 휘감는 찬바람을 즐기던 삼십 대엔 11월 첫 주를 기다렸다. 11월 첫 주가 되면 어김없이 삽상해지는 공기를 온몸으로 먹었다. 더불어 쨍해진 파란 하늘도 눈이 부르게 먹곤 했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입에 넣고 싶은 마음. 카스텔라를 먹고 나면 어쩐지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평화를 위해 나는 천천히 빵을 음미할 작정이다.
커피가 필요했다. 기름기가 입안에서 디글거리는 건 상상만으로도 느끼하다. 조금 전 냉동고에서 꺼내 둔 원두는 드립 도구를 준비하는 동안 실온에 맞춰질 것이다. 호퍼 안에 원두를 넣었다. 그라인더 스위치를 올리자 드륵 갈렸다. 그 순간 내 시간에 걸린 마법도 드륵 풀렸다.
매일 샤워 커튼 속에서 각질 떼듯 생각을 떼어냈다. 행동이 체화될 때 무념 경지가 왔다. 마음을 쥐고 있던 힘을 툭 뺄 수 있는 경지였다. 그러자 이제껏 보이지 않던 진실이 보였다. 좀비 같은 생활에서는 보이지 않던 진실은 거머리처럼 붙어 있던 생각과 닿아 있었다. 내 딸. 아니 딸이 던진 말이었다
나는 딸이 뱉은 말에 큰 상처를 받았다. 말 몽둥이의 힘은 엄청나서 멍한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뇌가 말을 폭력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생각 거부라는 방어기제가 작동됐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생각 각질을 떼 버렸고 마침내 다 비웠다고 생각한 머릿속은 뿌연 안개 속이었다. 오리무중에서도 여기서 헤어져라는 말만 살아 가슴에 슥슥 상처를 만들었다.
내가 모든 감정을 놔 버린 건 서운함 때문이었다. 나는 딸아이가 감당할 수 없이 서운했다. 그러나 서운함속에 불순물이 섞였음을 이제야 인정한다. 그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제자리를 맴맴 돈 건 불순물을 외면해서다. 불순물의 실체는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더 생각해 보면 이해 못 할 상황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축적한 행위는 무시하고 딸이 뱉은 말만 가지고 자해했다. 그렇게 서운함도 고약해지면 아픔의 계보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건 진실을 간과한 가통에 지나지 않았다.
딸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여기서 헤어져 가 내 귀에 꽂힐 때 당황한 나머지 바로 대꾸할 수 없었다. 당황한 상태 그대로 반응할까 잠깐 망설였지만 변명이나 공격으로 들려 딸에게 서운함을 전염시킬까 봐 일단 후퇴했던 것이다. 딸과 헤어진 직후부터 내 감정에 집중했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했고 철철 피가 흐른다고 느꼈다. 흐르는 피를 지혈하느라 웅크리며 살았다.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는 모든 말이 서운할 때였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오만가지가 전부 서운했다. 갱년기인지 노년기인지 어느 쪽으로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모를, 두더지처럼 간격 없이 불쑥 서운함의 포로가 되던 불안한 심리로 살던 때.
그때는 모든 것이 미안할 때였다. 결혼으로 내 품을 떠난 딸에게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매일 한 트럭이었다. 서운함과 죄책감은 언제나 쌍으로 올라와 마음 안에서 충돌했다. 그럼에도 앞선 것은 언제나 서운함이었다. 여기서 헤어져라고 말하게 한 내 미안함은 그때까지 서운함 뒤에 줄을 섰던 거다. 이제 서운함을 뒤로 보내고 미안한 마음으로 딸을 살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