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딸은 20년째 사춘기

by 떼굴


어르고 달래고 다그치고 싸우고 포기한 지 어느새 20년째, 초등학교 4학년 때 발발한 딸의 사춘기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뭘 물으면 일단 왜!라고 되묻는 건 기본이다. 밥 먹었니? 오늘은 몇 시에 퇴근해? 요즘 회사 분위기는? 현수는 약사고시 붙었어? 뻔한 걸 물어도 정말 궁금한 걸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왜! 다. 왜! 는 단속봉인 모양이다. 음주 단속 검문 때 단속 경찰관은 단속봉으로 일단정지시키고 후-라는 외마디를 반복했었다. 후~를 들은 운전자는 술을 마시지 않았어도 억울한 내색 없이 지시를 따른다. 딸의 왜! 도 그렇다. 아무리 빈정이 상해도 피할 도리가 없다.


거기까지, 더 말하고 싶지 않으니 가까이 오지 마,- 하루에도 몇 번씩 널을 뛰는 기분을 파악하기 위한 단초가 필요하다. 내가 빈정을 누르고 매일 단속봉 앞에 서는 이유다. 딸이 의도한 대로 일단 멈춘다. 멈춘 자리에서 표정과 몸짓을 살펴 질문을 계속하다 보면 단초 부스러기가 떨어질 때가 있다. 부스러기를 조합해 탐정놀이를 하는 동안은 딸과 멀어진다는 상상을 떨칠 수 있다. 간혹 딸 마음을 알고 싶은 게 이렇게 치사할 일인가 자괴감도 들지만 현재로선 어쩔 수 없다.


자괴감은 때로 보호자의 지위가 뜯기는 기분으로 몰고 간다. 아들 딸 모두 학업을 마쳤고 취업도 했다. 아이들은 어느 날부터인가 내 보호자처럼 굴었다. 아들은 가뭄에 콩 나듯 딸은 시도 때도 없이. 물론 그 마음은 고맙다. 그러나 보호자는 여전히 나다. 경제적 자립감이 내가 보호자라는 사실을 잊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본인들 유년을 보호할 때 보다 물컹해지긴 했을 망정 보호자라는 내 자존감은 엄연함을 간과해선 안된다.


마치 수제비가 된 느낌이었다. 하나의 덩어리였던 반죽이 얇게 펴진 뒤 끓는 물에 떨어지는 아픔, 맛있는 음식으로 화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희생. 그러나 반죽이 수제비로 화했다고 본성이 없어진 건 아니다. 부모로 살아내는 동안 여러 수모와 살이 떨어지는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그렇게 지켜낸 보호자라는 본질의 엄연함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한 때 딸의 전부였던 나다. 이제는 나를 분리시키는 딸을 대할 때마다 보호자였던 내 흔적조차 익사시키려는 의도가 아닐까 의심스럽다. 그때에 이르기 위해 이른바 왜!라는 조련으로 차곡차곡, 내 자존감을 포 뜨는 중이구나… 싶은 어이없는 상상을 부르는 딸의 왜! 가 나는 섭섭하고 싫다.




거슬리는 건 단어가 아니라 말투다. 찐 사춘기 때는 삐뚤어짐이라는 전투복만 줄기차게 입던 아이였다. 아이는 한 마디라도 지면 패잔병 낙인이라도 찍힐 것처럼 용맹을 떨었다. 기필코 이겨 먹겠다는 전투사는 용맹스러운 한편 어설펐다. 그러나 조련의 정도를 거치지 못한 어설픔에도 내 마음 이곳저곳이 찔렸다. 나 역시 혈기 왕성한 젊은 날이라 뒷목도 여러 번 잡았다. 그런 날은 아이 앞에서 펑펑 울며 패배를 인정했다. 는 슬픈 전설이 기억을 타고 내려왔다.


성년 사춘기에 추가된 아이템 왜! 가 추가되었다. 완성체에 가까운 아이템은 그 외마디에 어떤 억양을 담느냐에 따라 선언과 명령 사이 신비로운 지점을 오갔다. 필요할 때마다 의미를 멋대로 전달하는 아수라 백작이 같은 마력이었다. 원인과 책임을 전가당해도 어쩔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아우라. 그 힘에 눌리면 어이 상실 상태가 되고 만다. 어이를 상실한 인격은 저항커녕 따져보려는 의욕마저 접고 깊은 침묵에 빠져버린다. 사춘기의 목적에 협조한 꼴로 흉하게 항복하고 마는 왜!! 때문에 나는 20년째 상처받는 중이다.


서운함의 깊이만큼 위축도 깊어졌다. 말문이 막힌 나와 관계 낫싱 아무 신경도 안 쓰는 아이들 사이에 대화가 사라진 지 오래다. 단톡 방에선 ㅇㅇ, ㄴㄴ, 대면에서는 응- 아니면 아니- 가 우리 대화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게 대화라고? 하는 탄식 사이로 희 노 애 락 모든 감정이 대화량만큼 쪼글 해졌다. 아마도 멀지 않은 날 알량한 그마저도 먼지로 사라질 것이다. 커밍 순 먼지.


먼지처럼 희미해진 감정을 끝내 숨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딸에게 건너가 스트레스로 전환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아무리 내 마음을 차단해도 포기가 안 되는 나는 내 말 어디가 딸의 심기를 흔드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그저 입은 다물고 오늘도 딸의 단속봉밑에 선다.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다.


속을 끓이다 지친 어느 날 이거 노화인가?라는 의심도 해 보았다. 최근 몇 년 사이 내 몸이 일으킨 사고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때가 되면 노안이 올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비문증은 상상하지 못한 변수였고 나쁜 자세가 뼈를 틀어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논리로는 납득했지만 0. 1초 만에 전신 불구의 지경을 경험한 것은 도저히 불가해한 일이었다.


시간의 유속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누군가는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말장난을 걸었다. 곧 육십이 된다. 내게 나이 들어 좋은 점을 꼽으라면 기운 빠진 몸과 마음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겨 보겠다고 덤벼드는 일은 언제나 힘이 들었다. 타고난 성정이 지고는 못 사는 편이라 더 그랬다. 나이가 드니 이기려는 맹렬함이 사라지고 생각과 자세가 순해짐을 느낀다. 이제는 이기려기보다 포기하는 일이 많아졌다. 포기는 나이듬의 가장 큰 장점이다. 포기해도 괴롭지 않은 마음. 아무렇지 않게 포기할 수 있는 경지. 겨우 얻은 평화를 무시하고 다시 한번 요이 땅 이라니. 말도 안 돼. 지금껏 살아온 삶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부정이 아니라 리부팅하고 싶을 정도의 미련은 없다는 소리다.


지천명이 끝나간다. 나는 천명이 아니라 딸의 마음을 알고 싶다. 딸의 기억 속 엄마 자리에 대한 미련이 더 큰 까닭이다. 지금부터 관리할 것은 내가 떠난 뒤 엄마에 대한 기억을 붙들고 살아갈 딸의 마음이어야 한다.


애증을 사이에 두고 서로 노려보는 모녀들. 이쪽은 애라 하는데 저쪽은 증으로 받는 불협화음. 깊은 역사와 수많은 간증들. 죽음으로 헤어진 뒤에도 끝내 엄마를 용서하지 못한 자식은 올바른 사과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지점에서 나도 자유롭다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실마리를 찾고 싶다. 애증이 더 엉키기 전에.


겉으로는 태연한 척 가식을 보이지만 속에선 매일 염려가 끓고 있다. 왜! 때문이 아니라 노화 때문이라는 근거를 찾기 위해서도, 애증이 아니라는 실증을 위해서도 딸과 나 우리의 접점을 만들어야 한다.


딸이 변했다. 말투도 태도도 모두 다.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마, 그런 말 하지 마, 왜 그렇게 말해 이렇게 말해야지. 길 조심해 차 조심해. 오래전 나처럼 갑자기 나를 아이 취급하는 딸이 낯설다. 그런 딸이 믿음직스럽다기보다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왜! 의 얼얼함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이 무슨 평행이론인지 헷갈릴 따름이었다. 이런 역할극 배경이 뭘까 생각하고 따져봐도 건질 게 없다.


이제 딸의 신분은 직장인이다.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시작부터 치열했다. 새벽에 출근하고 늦은 밤 퇴근하는 딸은 빰까지 내려온 다크 서클로 말끔한 날이 없었다. 택시로 퇴근하는 날이 많았고 기절한 듯 잠들기를 반복했다. 새벽이면 기계처럼 일어나 다시 전쟁터로 향하는 딸을 볼 때마다 가슴 안쪽이 아렸다. 그래서 딸의 스트레스를 기꺼이 나눠 받았다. 다크 서클을 지워줄 수 있다면 아니 왜! 의 단속봉을 끝없이 견뎌줄 용의 또한 있었다.


힘들다는 말이 딸의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힘들어하는 상황이면서 갑자기 보호자 코스프레는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확한 마음을 모르니 시간이 필요했다. 정확한 속내를 알 때까지 납작해지는 수모를 감당하기로 마음먹었다. 서로 바쁜 우리는 차분히 이야기할 시간도 공들여 밥을 먹을 시간도 맞춰지지 않았다. 딸은 여전히 왜! 를 제외한 모든 대화를 외면했지만 나는 뒤돌아 어이구 한마디로 흘릴 뿐 마음에 담아 두지 않으려 노력했다.




직장인 3년 차는 스트레스 절정기였다. 퇴사를 입에 달았고 공무원 시험을 본다고 했다가 이직 알아보는 중이라 했다가 변덕으로 죽을 끓이는 딸의 기세에 눌려 눈치를 봐야 했다.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다 어쩌기로 했냐고 물으니 그냥 다녀야지 어쩌긴 뭘 어째!-라는 통박을 받았다.


뒷심 부족한 딸의 패턴도 알고 그 심정도 이해된다. 반응마다 같이 널을 뛰던 중에 퇴사 철회 결정을 알게 되었다. 딸이 안 보이는 곳에 숨어 안도의 숨을 쉬었다.


딸이 듣고 싶은 위로를 전하지 못했다. 덜컥 퇴사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딸은 연애 중이고 내게는 결혼자금으로 준비된 게 없었다. 당장 결혼을 결정한다면 퇴사는 답이 아니었다. 딸에게는 힘든 상황 그대로를 털어놓을 수 있는 등받이가 필요했을 것이다. 딸은 나를 등받이로 믿지 못했을 것이고 주눅 든 내 마음도 딸의 투정을 협박으로 인식한 게 사실이다.


사수 그 미친년이 또 지랄거렸어?.

개인의 성향이 타인에게 빌런으로 발현될 때 문제가 작동된다. 어느 집단이나 문제적 미친년과 상습적 미친놈은 존재해 왔다. 살면서 미친 것들의 계보가 완전히 사멸되는 꼴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진화해 전설을 갱신하는 꼴들이었다. 딸의 사수는 이름이 미친년이다. 문제적 미친년인지 상습적 미친년인지까지는 알 바는 없다. 다만 백 만년 주기로 회사 분위기를 전하는 딸이 그 미친년이 있잖아-로 말문을 열었기 때문에 내게도 미친년이 되었다.


오늘 당장 때려치워. 아니다. 사수 그 거 제대로 물 먹이고 관둬. 그리고 그만둘 때 다 모인 자리에서 콕 집어 말해 줘. 사수 재 때문에 그만두는 거라고. 회사도 알아야지. 너 같은 인재를 누구 때문에 놓치는 건지. 이것들이 진쫘 내 딸을 몰로 보고-라는 상상은 내 목구멍을 넘어서지 못했다.




부모와 학교라는 보호망을 막 벗어났을 때는 다양한 빌런들의 존재를 알리 없다. 친구에게 미쳐 지낸 어린 시간에는 엉성한 서운함과 견고하지 않은 분노가 전부다. 서운함과 분노 감정이 견고해지도록 하는 것이 사회생활이고 원하지 않아도 미친 것들의 존재를 만나기 마련이다. 인간관계가 세상 지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다시는 겪지 않으려 깨달음을 뼈에 새기기도 한다. 뒷심 부족한 내 딸은 뼈에 새기기 전 부산물 일부를 내게 전가했다. 이건 엄마 몫, 자 받으세요.


딸이 받고 싶은 위로를 내가 주고 싶다. 그러나 뻔한 위로를 건넸다가는 날벼락을 맞을 게 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위로가 하나마나 한 말 뿐이라 나조차도 답답했다.


불쑥 노화라는 이상한 느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건 내게 닥친 위기였다. 생이 마감될 때까지 내 의지를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느낀 위기. 노화를 먼저 경험한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언제가 시작점인지 확정할 수 없으나 흐물거리는 마음은 분명히 느껴졌다. 드라마를 보며 질질 짜거나 피가 낭자한 장면을 못 보거나 가슴이 미어지는 다큐는 피하는 등 마음이 전반적으로 비겁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이유가 되어 보호자의 위치가 뒤 바뀐다면 서글플 것 같았다. 나는 영원히 딸의 내적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포기라는 내성 없이 참으며 왜! 를 감당하고 있지만 기어이 안 통하는 엄마로 결론 날 것아 불안하다.


딸의 어른 사춘기를 후유라 이해하기로 했다. 찐 사춘기 때 다 발산되지 못한 여분의 지랄 발광. 사춘기 때 다 쏟아냈어야 하는데 철들어야 하는 상황과 만나 멈췄던 유예 기간을 지금 풀고 있는 거라고. 그래서 지금도 지랄발광 버튼을 눌러 나머지를 없애는 중이라고. 엄마가 편하기도 불편하기도 싫기도 좋기도 해서 부리는 투정이니 예쁘게 안쓰럽게 고맙게 받아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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