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휴무에 뭐 할 거야?
글쎄.. 어디 짧게 여행이나 다녀올까 생각 중이야.
같이 갈까?
그럼 엄만 좋지.
딸의 제안은 분명 반가웠다. 그런데 반가운 감정 꼬리에 가벼운 불안이 도둑고양이처럼 딸려왔다.
엄마랑 여행 간다는 생각으로 일주일 버텨야겠다.
하소연을 브리핑하던 딸은 다소 기분이 풀린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첫 직장에서 5년을 꽉 채운 딸은 결국 이직을 했다. 같은 공간에 사수가 없다는 사실 만으로도 살 것 같다는 딸. 딸의 품평을 듣고 나니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자발적인 때를 제외한 왜! 는 변함없었고 나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상했다.
새로 이직한 얘가 오자마자 청첩장 돌리는 건 민폐야. 극심한 스트레스를 참으며 이직을 늦춘 이유를 묻자 딸은 그렇게 대꾸했다. 숨이 꼴딱 넘어갈 지경까지 참는 아이. 나는 딸의 참을성이 때때로 아프다.
어느 날, 딸이 결혼을 통보했다. 마침내 연애의 종지부를 찍기로 결정했다는 거다. 딸이 한 남자과 연예를 하는 5년 동안 내가 딸의 남자 친구를 본 것은 손에 꼽는다. 예쁘고 착한 인상. 그게 내가 본 딸 남자친구의 첫 소감이다. 그 청년이 내 사위가 된다하니 좀 더 알아봐야 했지만 어차피 통과의례다. 나는 착한 인상을 기반으로 예쁜 마음만 계속 보태야 한다고 뇌에 신호를 보냈다.
결혼이 구체화되어 예식장을 알아보던 중 코로나19가 터졌다. 사태 추이를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둘은 넉넉히 1년 뒤로 날자를 정해 예식장을 예약했다. 하지만 코로나는 전혀 잦아들지 않았고 오히려 기세가 더 무서워졌다. 전 세계는 초긴장 상태로 돌입했고 우리 정부도 여러 제한을 결정했다. 그중 결혼식 하객 인원 50명이라는 초유의 조치가 내 딸 결혼식 날자와 겹쳤다. 딸의 결혼식은 그렇게 코로나 발 스몰웨딩으로 강제되었다.
부동산 경기도 엉망이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세가는 그럼에도 매물이 귀했다. 아침에 나온 매물이 오후가 되면 사라지는 판국에 예비사위는 묻지 마 계약을 성사시켰다. 결혼식이 다섯 달이나 남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신접 아파트는 둘의 직장 중간 지점이었다. 결혼식이 두 달 정도 남았을 때 둘은 각자의 집에서 나와 그곳에서 살림을 합쳤다. 나는 딸과 이른 헤어짐이 아쉬웠지만 출퇴근 거리만큼 줄어들 딸의 피로에 집중하기로 했다.
딸과 여행이라니. 말만 들어도 부럽네. 여자 형제들만 있는 단톡 방 반응이 서로 입을 맞춘 듯 비슷했다. 딸의 사춘기가 하염없이 늘어짐을 보며 나는 모녀라는 문맥에 속한 사람들을 살피게 되었다. 대부분이 나처럼 비슷한 실태로 사는 것 같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안도가 있었지만 씁쓸한 위로였다. 물론 질투로 박음질한 옷을 두껍게 껴입은 모녀들도 있다. 하지만 우린 아니다.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서로 저글링 하는 줄 모르는 관객들은 어쩌다 한 번인 영롱함에 그저 부럽다 예쁘다 박수를 친다.
어느 쪽이든 받기를 외면하거나 던지기를 포기하면 바로 빵! 터져버리는 물 풍선, 혹은 비눗방울. 딸과 나도 가끔은 실체 없는 비눗방울 놀이를 한다. 우리의 놀이에서 비눗방울은 내 손에서 더 오래 머문다. 나는 내가 넘긴 비눗방울이 딸 손에서 터지지 않길 바란다. 터져야 할 뭔가가 있다면 내 손에서 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형제라는 관객이 우리 사일 영롱하게 봤다면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내 손에서 비눗방울로 포장된 그것. 모녀.
영롱한 모녀의 여행지는 삼척이었다. 그곳에 미인폭포가 있다. 미인폭포의 큰 특징은 신비감이 감도는 물색에 있다. 기온이 떨어질수록 밀도가 높아지는 하늘과 그 바탕에 성글게 얹힌 구름. 살짝만 당겨도 전체가 들썩일 것 같은 하얀 구름을 움푹 떠서 연못에 휘휘 풀었을 것 같은 상상을 부르는 폭포의 물색. SNS에서 본 미인폭포 물색은 하나같이 몽환의 색으로 묘사되었고 나도 거기에 홀렸다.
통리 협곡이라는 지명도 그렇다. 제 아무리 어깨 뽕을 넣어 봐야 그저 완장에 불과한 걸 모르는 동네 이장의 뻐신 걸음걸이처럼 어딘가 순진한 낭만이 풍기는 이름이지 않은가. 미인 폭포와 통리라는 지명이 이룬 궁합에 꽂혀 날짜를 고르던 참이었다. 마침 딸이 전화했고 이런저런 수다 끝에 동행 의사를 밝히니 순간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맘이 솟구친 게 사실이다.
딸은 늦은 오후에 왔다. 이번 여행을 위해 월차를 냈다고 했다. 몇 달 만에 함께 먹는 저녁인지 모른다. 내친김에 딸이 좋아하는 맥주도 마셨다. 이제 자식들과 밥을 먹는 행위가 귀한 일상이 되었다. 밥 먹는 사이, 식구. 관계에도 삶에도 밥은 중요하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어렴풋한 상상과 현실 사이에는 작지만 크게 작동하는 괴리가 있다. 나는 생일도 명절도 아닌 때 밥 먹자는 청을 받으면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횡재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일상이 횡재처럼 느껴지는 마음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 중이다. 맥주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삼척 이야기를 했다. 딸은 #쉼 이 방점이니 일정을 무리하게 잡지 말라고 경고했다.
나는 주로 혼자 여행하는 편이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 시간, 관심사, 맛집 취향까지 잘 맞는 사람이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즉흥적으로 떠날 수 있는 혼자가 여러모로 편하고 익숙하다. 무엇보다 여행은 혼자일 때 더 많이 더 깊게 보였다. 딸의 경고에 일단 알았다고 대답했다. 요점만 간단히 딸은 긴 설명을 못 참았다. 나는 우리가 가게 될 미인폭포와 촛대바위가 목적지인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일단 미인폭포는 예약한 숙소에서 한 시간 내외면 갈 수 있다. 아침 산책코스가 될 촛대바위 둘레길도 숙소 바로 옆이다. 이 정도면 딸의 요구에 맞을 것이다. 추암 촛대바위 둘레 길을 손잡고 걸으며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파도소리에 섞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 취기가 느껴졌다.
도착한 삼척엔 비가 내렸다. 다행히 동선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린 숙소에 짐을 내리고 바로 통리 협곡으로 갔다. 딸이 잠깐 쉬었다가 가자 했으나 내가 서둘렀다. 중간에 진부 맛집에 들러 긴 점심을 먹느라 도착 시간이 이미 지체되었다. 관람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동절기라 일몰이 빨라진 데다가 비까지 내리니 숲은 더 빨리 어두워질 것이었다.
잔뜩 기대하고 도착한 통리 협곡에 관람객이라고는 달랑 우리 둘 뿐이었다. 순간 SNS에 올라온 포스팅을 의심했다. 맛집으로 소문난 집이 모두의 맛집인 건 아니라는 게 정설이 된 지 오래다. 마케팅의 개입으로 포스팅 횟수와 사실관계는 별개로 작용했다. 누군가 올린 최초 포스팅에 어머 나도 가봤는데, 나도 먹어봤는데. 나도 해봤는데 가 달리면 진정성 없는 나도 나도! 가 뒤 따라붙는 SNS의 특성, 나는 딸을 슬쩍 훔쳐보았다. 표정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딸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앞장서 걸었다.
폭포로 가는 길은 내리막으로 이어졌고 젖은 산길은 조금 미끄러웠다. 인적 없는 산골짜기에 우리 둘 뿐이라는 사실은 으스스한 기분에 젖게 했다. 드디어 딸의 불평이 시작됐다. 예상했던 바였다.
호기심 많은 나와 달리 딸은 겁이 많다. 어릴 땐 집안에서도 엄마가 눈에 안 보인다고 울었고 어른이 돼서는 벌레가 나왔다며 비명을 질렀다. 비명소리에 놀라 쫓아가보면 작은 벌레인 경우가 허다했다. 딸은 특히 날개 달린 것 다리가 많은 것들을 무서워했다. 비 때문에 미끄러운 산길이, 얼굴로 달려드는 날벌레가, 엄마의 호들갑과는 달리 감흥을 주지 못하는 숲 속 풍경마저도, 전부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첫날 첫 행선지에서 흥미를 잃으면 나머지 일정도 심드렁할 확률이 높다. 불안했다.
긴 투덜거림 끝에 미인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폭포가 예상과 다른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별로였다. 내 머릿속 이미지 그대로인 폭포를 보면 딸의 투덜거림이 쏙 들어갈 거라 기대했다. 그래서 호들갑을 절반만 내려놓고 기대감을 유지시켰었다. 우와~ 이것 봐. 멋지지? 엄마가 뭐랬어. 그렇게 딸의 불평을 상쇄시키고 그곳에서 딸과 인생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런데 웅장함으로 위세를 떨어야 할 폭포가 너무 소박했다. 인증숏이 왜 거기서 거기였는지 짐작되는 크기였다. 다행인 것은 물색은 상상한 그대로인 빛깔을 가졌다는 점이다. 어머나~ 물 색깔 봐. 나는 가식적인 탄성을 지르며 딸에게 사진을 찍자고 했다. 꿀리는 말투로 말이다.
딸과 영롱하게, 언니들에게 보내 줄 인증샷도 필요했지만 호들갑으로 뻘쭘해진 기분을 빨리 떨치고 싶었다. 딸은 그런 내 맘에 맞장구는 고사하고 본격적으로 삐딱선을 탔다. 폭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근처에 오지 않았고 물색이 잘 나오는 위치에서 같이 찍자는 말도 엄마만 찍어 달라는 말도 대충대충 눙치며 거슬리게 굴었다. 이럴 거면 왜 같이 온다고 했니!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마디하고 말았다. 난 물이 싫다고! 나 15살 때! 제주도에서도 엄마는! 나를 물에 빠뜨렸잖아!. 딸은 문장을 끊어가며 또박또박 말했다. 딸은 쥐고 있던 물풍선 폭탄을 터트렸다. 순간 정신이 혼미했다. 아.. 이 아인 그 기억을 아직 수정하지 않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