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래 적을 둔 환경단체에서는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씩 캠프를 주최했다. 그 해 여름캠프는 제주였고 나는 중학생 딸을 데리고 참석했다. 문제의 그날은 스킨 다이빙 체험이 있는 날이었다. 체험을 권하자 딸은 단칼에 거부했다. 아까운 기회여서 딸을 설득했고 다이빙 장소인 범섬까지 동행에 성공했다.
배로 출발한 지 10분 만에 범섬 전체를 독점했다는 사실에 나는 몹시 들떴다. 마지못해 따라온 딸이 계속 버텼다. 이게 얼마나 귀한 경험인지를 다시 설명하자 체념한 딸은 결국 슈트를 입었다. 바다에서 올라온 또래 아이들 표정이 밝았다. 그리고 얼마 후 바다로 들어간 딸이 나왔다. 딸은 나를 보자마자 다신 안 들어간다고 화부터 냈다. 영문을 몰랐던 나는 내 아이만 왜 저러나 싶어 눈을 흘기고는 슈트를 벗겨 내가 입었다.
물속은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처음 보는 물고기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전날 우도에서 스노클링을 했지만 얕은 바다 물고기와 이곳 물고기는 다른 차원이었다. 내가 수중세계에 있는 현실이, 코 앞에서 헤엄치는 그림 같은 물고기가, 너무 신기했다. 더 깊이 내려 갈수록 다양해지는 물고기들을 보며 이래서 수중 다이빙을 하는구나 싶었다.
수영을 못하는 나는 이전 체험을 기획한 수중 전문가와 한 팀이었다. 그분과 함께라면 안전이 보장될 거라 믿었다. 그럼에도 어느 한순간 만약 호흡을 놓친다면..이라는 상상을 했고 상상 때문에 순간적으로 멘붕에 빠졌다. 그때부터 수중세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갑자기 귀도 가슴도 먹먹하고 답답했다. 바닷물을 먹고 가라앉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곁에 계신 분에게 올라가자고 급한 신호를 보냈다.
수면 위로 올라와 호흡에 안정을 찾은 것도 잠시 다른 난제가 기다렸다. 물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려면 바위를 딛고 올라서야 하는데 도무지 바위에 발을 댈 수 없었다. 파도 때문이었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는 뭍에서 볼 때와 달랐다. 딸이 들어간 지점을 바라볼 때는 찰방대는 파도를 감상했었다. 그런데 막상 내 몸을 흔드는 파도는 철썩이는 파도였다. 손과 발을 아무리 길게 뻗어도 몸은 물결대로 둥실 댈 뿐이었다. 그저 한 장의 가랑잎 같았다. 몸이 부유할 때마다, 착지에 실패할 때마다 공포의 크기는 점점 커졌다. 같이 내려간 분이 뒤에서 몸을 밀어주지 않았다면 살려달라고 소리칠 뻔했다. 물 밖으로 나온 나는 그제야 딸이 느꼈을 공포를 이해했다.
가성비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고 싶다. 낮은 비용을 들여 나은 가치를 경험시키고 싶은, 젊은 엄마가 저지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수많은 실수들. 내가 배 아프다고 해도 엄마는 비싼 곳이니 많이 먹으라고만 했어.. 딸이 저장한 하얏트 뷔페 기억이 내게는 없다. 유치원 때라고 구체적 시기를 알려 줄 때는 얼핏 기억이 날듯 말 듯했다. 그때는 낄낄 웃으며 장난으로 넘겼었다.
엄마가 나를 물에 빠뜨렸잖아. 전에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장난으로 반응하려다 주춤했다. 뷔페 추억과 달리 어딘가 묵직했기 때문이었다.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그걸로 된 줄 알았다. 그런데 딸은 내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다. 딸의 기억에는 여전히 고의로! 딸을! 바다로! 떠민! 무정한 엄마였다.
예쁜 풍선에 담아 저장하고 있는 딸의 기억 창고엔 얼마나 많은 폭탄이 쌓여 있는 건지.. 첫 번째 폭탄 앞에서 나는 스스로 당당했던 나의 과거가, 딸의 기억이, 무서웠다. 망연해진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딸도 아무 말이 없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어색한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딸은 동해역에 나와 헤어졌다. 나는 딸을 내려 준 역 모퉁이를 돌아 갓길에 차를 세웠다. 눈물 때문에 운전을 계속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