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의 삶은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변화된 결혼문화를 알 수 없다가 딸 결혼을 통해 시절 변화와 젊은이들의 문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변화된 현실에서 주최자가 아닌 조력자로 밀려난 사실이 섭섭했다, 당사자들의 명분은 이해하지만 부모의 의견은 무조건 댕강! 잘라 허수아비로 만들 땐 무시로 느껴져 괴로웠다.
젊어선 새끼들 교육에 몰빵 하느라 노후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부모들 세대처럼 절로 굴러갈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막상 중년을 되고 보니 재앙 같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대책은 없고 수명만 늘어난 현실에서 위축되고 비굴해진다. 낌새를 눈치챈 자식들이 먼저 움직였다. 경제적 조력을 기대할 수 없을 바에야 본인들 의지대로 사는 것. 결혼이란 형식에서 부모 간섭을 배제시키는 시도는 어느새 트렌드가 된 모양이다.
내가 알아서 할게
딸의 결혼준비를 보며 어쩌다 한 마디 하면 딸은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휴일마다 백화점이나 가구거리를 기웃거렸다. 친정엄마로서 혼수 준비는 딸과 이별을 받아들이는 정화의 시간이고 딸의 터전에 슬쩍 흔적을 얹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걸 하지 말라 한다.
맘에 드는 식탁세트를 발견해 일단 예약을 주문했다. 그런데 예약을 받아주지 않는다. 당사자가 부재한 예약은 판매불발로 이어질 확률이 90% 이상이라는 것이다. 어렵게 시간을 맞춰 다시 찾은 매장에서 딸은 내가 고른 식탁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 가구점 사장님 예언 적중. 그때를 시작으로 수 없는 컷 오프와 컷 아웃을 당했다.
부모도 아웃시키는 솔직함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성향이다. 이걸 서운함으로 받으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요즘 실세는 장모래요. 그러니 다른 걱정 말고 우아함을 유지하는데만 마음을 쏟아요. 혼주로서 이런저런 고민에 빠진 나에게 누군가 그런 조언을 했었다. 남자에서 여자로의 권력이동. 남편에서 아내로 시어머니에서 장모로 실세가 이동했다는 말, 준비 과정에서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결정을 딸이 하는 것 같았다.
결정 분할에 합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위 성향을 모르는 내 입장에서 볼 때 사위에게 결정장애가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에누리 없는 솔직함도 서운하지만 역할 변화 역시도 나로선 어딘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딸아이 초등학교 때 학부모로 만나 친구가 된 모임이 있다. 자녀가 공통분모다 보니 아이들 성장에 따라 수다 주제를 바꾼다. 슬기로운 시어머니 생활, 도를 넘지 않는 장모 간섭권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수시로 자기 검열에 하는 모임이다.
누군가 변화를 받아들이는 건 우리들 노력이지만 며느리와 사위는 복불복이라고 했다.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도 높은 긴장감을 갖게 되는 게 새 식구 맞이다. 장모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지 막연한 가운데 상견례 날을 맞았다. 사돈댁을 보니 휴,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긴장이 풀어지며 마음이 안정되었다.
전리품처럼 장모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사돈이 생긴 지 1년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사돈과 장모의 역할 몇 번을 수행했다.
지난주에 시부모님들하고 강화도 다녀왔어. 내가 가자고 했어.
시댁과 잘 지내는 딸은 시부모와 보낸 시간을 전할 때마다 연막을 쳤다. 나는 연막을 치는 이유를 의심했다. 시부모와 잘 지내는 딸 태도에 배신감이 없진 않지만 그 마음을 이해한다. 결혼 과정에서 심한 마음고생을 한 딸이었다. 딸은 시부모와의 시작을 잘 통과하고 싶을 거다.
새로 맺은 가족원들과 드라이브 다닌 소식을 전해 듣는다. 며느리 대동한 사돈댁 행차가 얼마나 뿌듯했을지를 짐작하자 마음 한쪽에 실없는 질투가 일었다. 잘하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할 수 있을 만큼만 해. 참기 선수인 딸이 새로운 관계 초반에 과한 힘을 쏟고 일찍 지칠까 걱정되었다.
딸 이 포르투갈 갈 때 빌려준 트렁크를 찾으러 왔다. 어디 가? 응 일본, 어머. 재밌겠다. 딸이 사위와 함께 가는 첫 해외여행. 둘은 제주로 신행을 다녀왔다. 둘만 가? 쓰다 남은 엔화를 건네며 내가 물었다. 말 안 했나? 어머님 아버님이랑 같이 가. 가서 형님네와 합류할 거야. 설마 했고 혹시나 해서, 감지되는 촉을 물리치지 못하고 물어본 말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딸이 생각하는 일본은 혐오에 가까운 나라다. 지금도 방사능 오염수 방류로 온 시국이 시끄럽지만, 도쿄전력 사고가 난 수년 전에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NO japan 운동이 확산되었다. 딸은 일본 여행은커녕 made in japan이 찍힌 모든 제품에 단호했다. 그런데 여행이라니. 시부모들과 함께라니. 가서 형님네랑 합류할 거야..라는 말이 귀에서 웅웅거렸다. 나는 딸이 이어 붙이는 말들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삼척에서 내게 그렇게 행동해 놓고 시부모들과는 일본엘 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