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폭포에서 돌아온 우리는 대화 없이 저녁을 먹었다. 편의점에 들러 맥주 4캔을 산 건 그날 밤 열리는 축구경기를 보며 마시자는 딸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침대에 잠깐 누웠던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티브이는 꺼져 있었다. 화장실엘 다녀오니 이번엔 딸이 잘 준비를 했다. 축구경기를 본 건지 안 본 건지 알 수 없었고 맥주 두 캔을 마신 건 확실해 보였다.
불편한 밤이 보낸 다음 날 아침, 둘레길을 걷다 멈춘 딸이 자기를 어디에 내려 줄 거냐고 물었다. 나는 가장 빨리 서울로 진입할 수 있는 버스 정류장에 내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판교에 도착할 시간이 퇴근 시간대와 겹치니 거기서 내려 버스를 타고 가면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냐는 뜻이었다. 내 대답을 들은 딸은 그럼 자기는 삼척에서 기차를 타겠단다. 시간상으로 치면 그게 더 효율적이기는 했다. 서울역에 서 내려 마포로 이동하면 되니까. 나는 아뿔싸한 심정이 되어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말을 고쳤다. 하지만 어젯밤에 기차표 예매를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린 안 맞아.
요즘엔 MBTI로 성향을 따지는 모양이다. 딸에게 MBTI가 뭐냐고 물으니 링크를 주며 풀어보라 한 적이 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결과를 본 딸은 물증을 찾은 아이처럼 시니컬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 여행은 30년 뒤에 다시 생각해 보는 걸로. 동해역 앞에 정차한 차에서 내리며 저주 같은 농담을 남긴 딸은 역사 안으로 사라졌다.
모퉁이를 돌아 갓길에 차를 세웠다. 눈물이 빰을 타고 흘렀다. 떨어진 눈물이 허벅지를 적셨다. 딸의 행동이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 내가 자식을 어떻게 키운 건지 자책이 밀려왔고 나를 볼 때마다 떠올릴 지옥을 상상했다. 가슴이 마른 수건 비틀듯 아파왔다.
분명 요즘 실세는 장모라 했다. 시어머니 권세가 장모에게 넘겨졌고 며느리 눈치를 시어머니가 보는 시대라고. 그 기류에 편승할 마음은 없지만 혼자 역행할 마음도 없다. 그런데 내 시계는 반대로 돌고 있다. 마치 고장 난 시계를 차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언젠가 사위 대동하고 카페로 맛집으로 즐길 날이 올 거라 믿었고 꿈꿔 왔다. 내 카페만 봐도 사위가 동반한 가족이 며느리 동반한 가족보다 현저히 많다. 그런 변화를 눈치껏 흐름을 감지해 왔다.
사위의 농담을 들어보지 못했다. 다정함도 반듯해서 늘 네~라는 대답을 먼저 하는 사위다. 홀릴 화려한 말차림은 아니지만 싹싹한 태도가 몸에 밴 청년. 왜!라고 되묻는 딸을 보다 사위의 싹싹한 태도를 보니 반갑고 예뻤다. 내가 원한 건 시어머니의 권위를 대신 꿰차겠다는 것도, 어른 입네 하며 군림하려는 것도 아니다. 무뚝뚝한 딸과 살가운 사위가 균형을 맞춘 것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모두 공평하다 느끼는 현실을 원한다. 그런데 왜 내 딸만 혼자 역주행하냐 그 말이다.
일본에서 여행 중인 딸이 뭐 사다 줄까 하고 물었지만 안 사 와도 된다는 톡을 보냈다. 딸은 양산이 어떠냐 다시 물었고 거부를 이어가면 서운한 내 맘이 묻어날까 봐 두세 번 사양하다 그러라고 했다.
카스텔라는 여행에서 돌아온 딸이 양산과 함께 내민 선물이었다. 삼척 사건이 없었어도 딸의 일본행이 이렇게 서운했을까?
딸은 삼척을 다녀온 이후 자주 전화를 걸었다. 빈번한 전화에 본인 실수를 뒤늦게 인정하는 건가? 착각했지만 정작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딸의 태도를 보면서 역시 문제는 나인가 하는 생각에 사로 잡히기도 했다.
나는 어떤 엄마인가? 집착하는 엄마인가 예민한 엄마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갱년기 호르몬의 변화인가? 내 마음의 실체는 대체 뭐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