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과 일탈사이, 헐 ,ㅋㅋ

by 떼굴


헐~.


딸아이 중학교 때 시작된 신조어, 아이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요상한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말에 담긴 의미를 쌍~ 정도의 수준으로 자의 해석했다.


딸은 초등학교 때부터 한 번도 반장을 놓친 적이 없다. 내 위상도 덩달아 높았다. 나는 딸 이미지에 나쁜 인상이 씌워질까 봐 헐~ 을 기를 쓰고 단속했다. 딸은 내 앞에서 자제했지만 밖에선 그러지 않았다. 우연히 마주한 딸의 하굣길은 헐~ 로 넘쳐났다. 좋아도 헐, 싫어도 헐, 놀랐을 때도 어이없어도 헐, 은근 무시할 때나 대 놓고 무시할 때조차도 헐 하나로 해결했다.

헐~ 은 점점 만사형통의 기호로 자리 잡았다. 나는 막을 수 없는 둑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백기를 들었다. 막상 백기를 들고 보니 헐은 쓸수록 신박한 말이었다. 단속에서 자유로워진 딸의 이미지도 전혀 타격이 없었다.


저항의 끝이든 사랑의 발로든 부모는 종종 백기를 들어야 할 때와 만난다. 그리고 백기는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보상이라는 순기능이 되어 돌아오곤 한다.


사돈총각이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단다.


엄마도 오게?

그럼 사돈댁 결혼식인데 당연히 가야지.

아무도 초대 안 했어. 가족끼리만 할 거야. 그리고 그날 나 바빠. 엄마가 와도 내가 케어 못할 수 있어.

헐~! 이 계집애가 진짜.


벌써 세 번째다. 결혼 이후 마치 사돈댁과 원가족처럼 구는 딸아이의 생각 없는 말이 서운하다. 가족끼리만? 너만 그쪽 가족이고 엄마는 니 가족이 아니라는 거야 뭐야? 인내력이 다시 시험대 위에 올랐다. 이번엔 울화가 치민다. 하지만, 괜찮아. 잠깐만 있다 금방 오지 뭐. 최대한 불쾌 감정을 숨겼다. 으으으.


사돈총각은 일본에 산다. 유학을 갔다가 일본여자를 만났고 같이 살게 되면서 아예 거기에 눌러앉았다고 했다. 결혼식을 치르지 않은 둘 사이에 아기가 생겼고 태어났다. 아기가 생기기 전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사돈댁은 손주가 돌이 가까워지자 결혼식을 올려 주기로 했다. 모든 제반 비용은 사돈댁이 감수했다.


장소는 안성에 자리한 포도 농원이었다. 초라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가족단위 행사에 알맞게 적당히 한적하고 적당히 단정한 곳이었다. 예식은 오후 5시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30분 일찍 도착한 나를 안사돈이 반갑게 맞았다. 딸과 사위와도 아는 체를 했다. 어머니가 내 한복 다려 주셨어. 딸은 나를 보자마자 또 시어머니 쉴드를 쳤다. 내 귀에는 한복을 다렸다는 행위보다 사돈댁에서 잤다는 의미가 더 크게 들렸다. 종종 그러는 모양이었다.


내가 테이블을 돌며 사돈들에게 인사를 드리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인사를 받았다. 이렇게 고운 아가를 보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곱고 정정하신 시할머니는 허리까지 굽혀 내게 인사를 하셨다. 멀미가 심해 둘째 손주, 그러니까 내 딸 결혼식에 불참하시는 바람에 나와는 초면이었다. 결혼식장을 안성으로 잡은 이유는 그런 시할머니를 배려라고 했다. 나는 사돈들 태도에서 딸에게 상한 빈정 일부를 보상 받은 느낌이었다.


결혼식이 진행 될 빨간 카펫 길에 주인공들의 아들이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며 놀고 있었다. 첫 돌을 막 지났고 요즘은 생떼가 늘었다고 했다. 감기에 걸려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식장 중앙을 점령한 개구쟁이를 아무도 제어하지 못했다. 안사돈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엄마를 보고 덥석 달려들면 어쩌나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일이 벌어진다면 이벤트처럼 생각해야지 어쩌겠냐며 마음을 비운듯한 말을 했다. 안사돈의 백기를 보노라니 딸의 결혼식 장면이 떠올랐다.


결혼식 날짜를 잡고 마음이 몹시 심란했다. 딸이 유보해 둔 전 남편의 불참을 최종 결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수의 친구들에게 내 이혼을 알린 적이 없다. 이혼 상태가 친구 사이에도 결핍으로 작용된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이혼 폄훼 발언을 하던 친구와 변함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서 멈칫하는 순간을 기억한다, 친구는 들은 바가 없고 나는 말한 적이 없다. 서로 숨긴 사실은 돌고 돌아 친구 귀까지 흘러들었을 것이다. 하객 50명이라는 초유의 제한에 친구들 명단 대부분이 빼야만 했다. 그즈음 자주 들여다보는 거울은 내 얼굴에 드리운 불행 그림자 좀 제발 치우라고 경고했다. 그 기운을 친구들에게 감추고 싶던 참이었다. 팬데믹 발 인원제한이 한편으로 다행이었다.


딸 결혼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할을 고민했다. 안온하고 자애로운 표정으로 혼주석에 그림처럼 앉아 있는 것, 그걸로 하객의 눈을 속여 딸에게 안정을 주고 싶었다. 결혼식을 앞둔 두 달 전부터 나는 매일 밤 탄천을 걸었다. 걷는 동안은 운동 에너지가 얼굴로 집중되어 화장으로 가릴 수 없는 슬픔이 가려지길 바라는 간절함뿐이었다. 식이 시작되자 나는 탄천을 걸으며 수도 없이 연습한 표정을 연출했다. 안 사돈의 손을 잡고 하객들의 집중된 시선을 받으며 걷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나는 첫 발을 떼기 전 사돈을 향해 가벼운 농담을 했다. 나의 숨김이 잘 작동되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떨림이 없는 걸 보니 괜찮은 시작이었다. 이어 기대한 자태로 보이길 바라며 객장을 둘러보는 여유를 부렸다. 잘 수행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으며 무사히 단상에 올라 화촉에 점화했다. 점화를 마친 단상에 서서 하객들을 둘러봤다. 마지막으로 내 딸과 눈을 맞춘 뒤 단상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