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주석에 놓인 영정사진

by 떼굴



일본인 며느리 가족은 이모 부부와 여동생 내외가 전부였다. 신부 어머니는 사진으로 대신 참석이고 신부 아버지는 불참이었다. 얼마 전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는 사진으로 왔으나 아버지는 병세가 위중해 그 마저도 참석할 수 없는 상태라 했다. 딸의 설명으로 알게 된 며느리 집안 사정이 딱했다.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일본 여행이라 생각한 것은 상견례를 위한 방문. 일본 사돈들 형편에 맞춰 내 사돈댁이 움직인 상황인데 나는 그걸 단체 가족여행이라고 오해하고 질투했던 거다. 헐~!


결혼식이 시작되자 아기는 단상 가까운 테이블에 앉혀졌다. 유튜브 동영상에 빠져 있던 아기가 신랑 신부 동시 입장을 축하하는 하객들 박수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았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짓궂게 웃으며 하객들을 따라 고사리 박수를 쳤다.



신랑 신부가 단상에 도착해 하객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어 바깥사돈이 자신의 부모님과 가족 친지들에게 참석의 고마움을 전했다. 그 모습을 보고 딸이 운다. 왜 울어? 내가 물었다. 그냥.


이 타이밍에 눈물로 밀어 올린 딸의 감정은 무엇일까 짐작해 본다. 딸은 종종 참을성을, 슬픔을, 화를, 그냥 이란 말에 감췄다. 하지만 내 눈엔 딸이 감춘 그냥 넘어가 보인다. 그럴 때면 그 감정이 무엇이든 어서 터지기를 속으로 빌었다. 안에 담아두고 쓰레기로 만들지 말기를, 쓰레기가 썩는 지경까지 계속해서 참지 말기를, 썩어 문드러진 곳에 자기감정을 담아 두고 외면하지 말기를. 그냥이란 말에 밀어 올리지 말고 생기는 대로 즉시 배설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내 딸이기를, 빌고 또 빌었다.


눈이 벌게진 딸이 일본어로 축사를 낭독했다. 사위가 한국어로 번역했다. 딸은 울먹이느라 축사를 매끄럽게 읽지 못했다. 바빠서 엄마를 케어할 수 없을 거라던 말이 이거 때문이구나 짐작했다. 이어 신부 동생이 축가를 부를 때도 부모 대신 참석한 일본 이모가 인사말을 할 때도 딸은 찔끔거렸다. 몇몇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눈물을 훔쳤다. 드라마에서나 봄 직한 결혼식. 그러나 따뜻하게 느껴진 눈물 결혼식이었다.


엄마가 와서 좋았어. 농원 마당에 나갔을 때 딸이 말했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말 한마디에 내 자리가 회복되고 그간의 서운함도 눈 녹듯 사라졌다. 당연히 와야 하는 자리야. 나도 부드럽게 댓구했다. 백기의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돈댁에 합류한 일본여행은 헐~이었다. 듣던 당시에도 헐~ 상황이 이해된 지금도 헐~이다. 처음부터 말해줬으면 좋았을 헐~. 딸과 나는 정작 필요한 말을 아끼면서 서로를 투영했고 상대의 안위를 먼저 살펴 오해의 헐?을 만든 거다. 우리들의 웃픈 해프닝. 헐ㅋㅋ


세상 말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헐~ 다음 타자인 ㅋㅋ는 개수에 따라 해석이 바뀌는 귀여운 외계어다. 우리 회사에 결혼이 마려운 언니가 있거든. 그 언니가 오빠 친구 중에서 소개팅 좀 주선하래. 아휴 미친 것들, 말 꼬락서니 하고는.


나는 내 딸이 마렵다. 아직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삼척여행의 여운, 그게 맥없는 헐~ 로 후기를 바꿀 수 있는 때가 오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