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게 마음을 묻다
미몽인 육신에 아침이 왔다. 몸은 아직 이불속이다. 눈을 뜨기도 전인데 마음이 우울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혼자인 날은 허다했다. 그렇다고 혼자인 시간 전부가 외로운 것도 아니었다. 나는 외로움보다 쓸쓸한 감정에 민감하다. 조금도 길들여지지 않고 점점 더 순정적으로 쓸쓸해지는 것 같다. 쓸쓸함이 최고조에 이른 새해 아침, 베개 밑을 뒤적여 리모컨을 꺼낸다. 티브이 소음을 끌어들여 쓸쓸함을 냉각시킨다.
이혼 이후 자주 우울한 감정에 멱살 잡혔다. 홀가분한 기분에 만족스럽게 빠져들다가도 느닷없이 쓸쓸해지는 날은 어김없이 명절이었다. 명절엔 할 일이 없었다. 명절 노동이 그리워지면 집에서 낮술을 마셨고 낮술을 마시다 가끔 울었다. 눈물을 끊고 싶어 낮술을 끊었다.
허기가 느껴져 침대에서 내려왔다. 뭐라도 먹지 않으면 우울감이 영원할 것 같았다. 가스레인지 위 뚝배기에는 한 그릇이 조금 안되는 미역국이 들어 있다. 물을 한 컵 부었다. 거기에 떡국 떡 한 줌과 만두 세알을 넣고 끓였다. 미역 떡국..근본 없는 음식을 앞에 두고 내 나이를 떠올렸다. 하룻밤을 사이에 두고 누구나 한 살씩 먹기로 한 인류의 규칙, 방금 만들어진 미역 떡국을 먹는 나는 규칙에 순종적인 사람이다.
배추김치를 꺼냈다. 여러 반찬 꺼내 봤자 도로 집어넣기 일쑤다. 끼니를 대충 해결하던 친정엄마가 궁상스럽게 보일 때가 있었는데 지금 나도 그러고 있다. 이어폰으로 직송된 녹턴을 들으며 식탁이 풍요롭다고 믿는다. 떡을 몇 점 먹었으니 만두를 먹을 차례다. 재래시장에서 산 만두는 집에서 빚은 것처럼 담백하다.
두 번째 만두에 숟가락을 꽂았다. 양 옆으로 갈라진 만두 뱃속을 보니 다시 쓸쓸함이 몰려왔다. 식탁 위 그릇들이 흐려진다. 한동안 굳어 있던 내 귀에 박수 소리가 들리고 문득 정신을 차렸다. 연주를 끝낸 임윤찬을 향한 박수소리다. 언젠가는 나도 실황 음반이 아닌 콘서트 홀에서 임윤찬을 만나고 싶다. 수저를 내려놓고 소파로 자리를 옮긴다.
딸은 내일 오겠다고 했다. 연락은 어제 받았다. 딸과 사위는 명절마다 집 근처 호텔에서 자고 아침에 온다. 저희 편하자고 하는 행동이 나는 어딘지 불편하다. 시간 재촉을 하는 것도 아닌데 멀지 않은 제 집에서 자고 오면 되지 왜 굳이 호텔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격지심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올해는 모처럼 집밥을 먹일 생각이다. 외식으로만 때우는 밥이 사위에게 미안해서다. 내 집 거실에서도 아이들의 대화가 섞일 것이다. 설렘으로 상차림을 준비한다. 이제 고기만 재우면 구색은 갖춰질 것이다.
아들이 들어왔다. 차례를 지내고,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여자들이 설거지를 마칠 시간, 아들은 그 쯤에서 큰 집을 나섰을 것이다. 아들은 곧장 제 방으로 직행하는 대신 내 옆을 맴돌았다. 안 그러던 행동이라 괜히 눈치가 보였다.
늙는다는 이유로 기댈 생각 하지 마. 몇 년 전 아들에게 받은 카톡은 나의 근간을 흔들었다. 카톡을 확인하며 내 생이 수치스러웠고 일순간 삶의 의지도 꺾였다. 저 나름의 이유가 있었대도 나는 가슴이 뜯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오욕을 분해하느라 몇 달을 절절맸다. 언니 요즘 애들 다 비슷해. 속에 담아 두느냐 말로 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야. 후배의 위로에 겨우 살아난 뒤로 아들에게 일말의 기대도 갖지 않으려 노력했다. 행여 불가항력으로 일어나는 마음이라도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꼭꼭 눌러 단속했다. 아들 눈치를 살피는 습관은 그때 생겼다. 내 마음을 오해하도록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 결혼하려고. 아들 입에선 뜻밖의 문장이 흘러나왔다. 뜬금없고 느닷없는 말이다. 통보, 아들의 결혼 예고는 심각한 병명을 고지할 때처럼 낮고 위압적이었다. 아니 그렇게 들렸다. 나 암 이래. 오래전 위암을 알린 친정 엄마의 목소리에는 어떤 동요도 섞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차분한 목소리에 내가 얼마나 길게 아팠는지는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그때처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물경 결혼인데 이렇게 뜬금없어도 되나 싶었다. 마치 카톡으로 외박을 알릴 때처럼. 나 못 들어가. 응, 알았어. 통보와 회신 사이에는 오래 매달아 둘 만한 무게가 없었다. 그러나 비슷한 무게로 통보받은 결혼고지에서 난치병을 알린 목소리 경험을 느낀 내 마음은 이리저리 널을 뛴다.
미용실에 안 간지 오래다. 미용사와 겨우 궁합을 맞췄다 싶을 때 미용실을 바꾸는 일은 젊을 때부터 반복되었다. 분명히 말하고 재차 확인받아도 엉뚱하게 잘려 나간 머리는 미용실로 옮길 시기가 왔다는 예고다. 미용실이라는 장소는 원하는 결과물이 아니어도 원복을 요구할 수도, 화를 낼 수도 없는 애매한 곳이다. 그럴 때면 감정까지 소비하지 말고 조용히 다른 곳으로 옮기고 말 뿐이었다. 나는 이제 그런 과정조차 귀찮아졌다. 그래서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관리한다.
불과 몇 달 전, 화장실로 들어가다 말고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 머리 잘라도 돼? 한복입을 일이 있느냐는 우회적 질문이었다. 혼주의 정장은 한복, 한복에는 올림머리. 올림머리는 긴 머리로 말 꼬리를 잇게 하는. 머리 기르기는 티 내지 않는 혼주의 준비였다. 응 잘라. 아들은 짧고 명쾌한 대답을 했었다.
아들의 직장은 건설사다. 직업 특성상 출근지가 자주 바뀐다. 첫 번째 근무지였던 세종시에서 청라로 옮길 때였다. 그날은 아들의 생일이었다. 나는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어 세종으로 갔다. 이삿짐을 청라 숙소로 옮겨 달라는 아들의 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단출한 짐을 싣고 청라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이었다. 긴 운전이었지만 나의 쓸모와 아들과 데이트하는 느낌에 힘들지 않았다.
짐을 내린 아들은 송도로 가자고 했다. 송도에 아는 식당이 있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선약이 있다고 했다. 야 인마 오늘은 엄마가 널 낳느라 고생한 날이야. 아침부터 운전만 시키고 밥도 같이 안 먹고 그냥 가라고? 부아가 치민 나는 그날의 의미를 아들 생일이 아닌 그놈을 출산한 나의 날로 의미를 바꿔 전했다. 선약이 있으면 미리 말해야지, 이제서 말하면 엄마 기분이 뭐가 돼? 논조까지 들먹이자 아들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들의 결혼 상대는 그날 송도에서 나를 제킨 그 아이다..
딸이 예식장 예약을 마쳤을 때. 아들도 여자친구와 예식장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그러다 엎은 게 3년 전. 결혼 직전까지 진도를 빼다 갑자기 엎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도 결혼을 통보받은 지금처럼 난감했다. 나는 한동안 침묵했다. 다시 생각해 볼 수 여지는 없는 거야? 겨우 한마디 던졌지만 아들은 단호히 없다고 했다. 오히려 한 발 더 나가 비혼을 선언했다. 결혼을 파투 낸 마당에 혼자 살겠다는 선언이 겹쳐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부모는 자식 뜻에 맞춰 마음 길을 정비하는 거 외에 도리가 없다. 내려앉은 가슴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에 받은 결혼 통보는 그런 식으로 황당했다.
연애와 결혼을 한꺼번에 쫑내고 비혼을 밝혔을 때, 솔직한 심정은 반 반이었다. 제 여자에게 엄마 대하듯 무례하게 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서면 차라리 잘 됐다 싶었고, 다른 상대와 새로 숙성시킬 시간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남자친구를 독점하고 싶어 했다. 구속받는 걸 싫어하는 남자과 독점하려는 여자. 한쪽 이야기만 들은 나로선 둘 사이가 골치 아팠다. 아들의 전달력이 문제일 수도 있다. 연륜이란 이름으로 내가 아들이 전한 정보를 부풀려 상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딸의 결혼식이 있던 날, 혼자 돌아온 집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실체 없이 떠도는 막연한 감정이었다. 마침내 혼자가 된 내가 매일 상대하게 될 외로움, 자식들이 곁에 없다는 서운함이 혼재된 두려움과 대적한 첫날이었다. 맥주 한 캔을 꺼내 식탁에 앉았다. 맥주를 홀짝이며 풍성하게 고정시킨 머리를 풀었다. 머리에서 수많은 실핀이 나왔다.
까마득한 옛날 내 결혼식 날이 생각났다. 친척들은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는 대신 친정으로 몰려가 준비된 음식과 술을 나누며 밤까지 놀았다. 신행지에서 밤늦게 전화하니 전화기 너머에서 왁자지껄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렸었다. 잔칫집 분위기를 연장시켜 부모의 허전함을 달래주던 그때의 결혼식 뒤풀이. 혼자 돌아온 나와 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수북한 실핀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친구들에게 밥을 사고 들어오겠다던 아들이 예상보다 일찍 들어와 와인 한잔 하겠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맥주 한 캔에 이미 취한 뒤였다. 본격적인 독거인의 삶이 시작된 다음 날, 아들은 회사 숙소에서 짐을 챙겨 집으로 들어왔다. 서늘했던 독거인의 삶은 하루 만에 무산되었다.
그 아이와? 응. 너도 원해? 응. 결혼은 떠밀려서 하는 게 아니야. 알아 내가 원해서 하는 거야. 확실해? 응. 그럼 됐어 축하해.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아들에게 남은 미련만 털어내면 된다.
이별의 원인이 별거 아니라 느낀 걸까? 불만은 배제하고 좋은 점만 보기로 합의한 걸까? 둘의 마음을 알 길이 없다. 다만, 쪼그라들거나 확장되거나 둘이 내린 결론에 의해 내 처신도 달라질 것이다. 시어머니 마음은 쪼그리고 헤아릴 마음은 확장시켜야겠지. 그 결정은 며느리 손에 달렸다. 지금 내가 할 일은 상상을 봉합하고 아들과의 대화에 집중하는 것이다. 집은? 아이는? 그러나 대화를 좁힐수록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대화를 마친 아들이 다시 집을 나섰다. 예비처가에 간다고 했다. 엄마도 상견례 전에 얼굴은 봐야지. 저녁에 우리 집에도 오라면 무리일까? 응 무리야. 그래 알았어.
이 말을 들으려고 아침부터 그렇게 쓸쓸했나 보았다. 아들이 나가자 다시 마음이 요동쳤다. 축하할 일이고 안심할 일에 마음이 왜 이리 산란하지 모르겠다. 살가운 아들도 아니고, 기대도 분명 없는데 가슴 한쪽이 뭉텅 잘려나간 기분이었다.
찬바람 쌩쌩 일으키며 남처럼 구는 아들놈 눈치를 볼 때는 치사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아들이란 존재만으로 마음을 채워왔던 모양이었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달래려 맥주 한 캔을 땄다. 실로 오랜만의 낮술이다. 머리가 복잡할 때 마시는 술은 복잡한 생각을 단순하게 압축시켰다. 왜 불안한지, 진짜 진심은 무엇인지. 가벼운 취기에 이르면 가식은 잘려나가고 간결한 본질만 남는다. 그러나 오늘은 한 캔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두 번째 캔에도 마찬가지다. 더 마시고 싶지만 후회할 결과를 만들지 몰랐다. 둥둥 북을 치고 있는 마음과 정리를 도출시키지 못한 취기가 취기만을 위한 한 캔을 더 원했지만 유혹을 물리쳐야 했다.
네이버를 검색해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영화를 예매했다. 이십여분 뒤, 나는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