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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필적 글쓰기 Feb 12. 2017

지인-터뷰

모르는 지인 01 정은비


이미 알지만 아직 모르는 아는 사람을 인터뷰할 겁니다. 하여 지인-터뷰. 

재미는 없을 거예요. 나, 안희정이나 유승민 인터뷰 딴 거 아니잖아. 


지인은 제게 머리카락과 같아서 곁에서 자라지만 내가 길러냈다고 할 수 없고, 내게 묶였지만 언제나 뿌리째 빠져나갈 수 있는 반의지과 몰이해의 대상이에요. 


15년 동안 알고 지낸 친구는 매운 걸 좋아하는데, 매운 등갈비는 못 먹는대요. 이 무슨. 속으로 낳은 자식도 남처럼 까마득한데 하물며 밖에 있고 낳지도 않은 지인인데요. 사람을 안다고요? 이거 애초에 성립할 리 없어요. 지인-터뷰로도 나는 아는 사람을 다 알 수 없어요. 조금 덜 모르기 위해 해보려구요. 우리가 서로 지인이란 게 덜 무안할 만큼만 알아볼게요.    


규칙은 : (괄호)는 저고 탈괄호는 지인이에요.

불문율은 : 결국 술터뷰일 거예요. 첫 지인-터뷰를 술집에서 노트북 켜놓고 진행했어요. 앞으로도 그럴 의지예요. 



커튼.


(네가 1번째 인터뷰이야. 왜 1이냐면, 1은 첫이 아니라 1이야. 그러니까 서수 아니라 기수. 2랑 안 달라.)

(너를 광화문에서 만났잖아. 광화문 광장 고디바 앞에서. 넌 키가 컸고, 나는 큰 키 앞에서는 150이 되는 160. 첫 100만 촛불집회. 11월 12일. 첫? 그래 첫. 우린 만난 지 삼십 분 만에 서점에 갔어. 너는 어떤 철학책을 골랐고, 나는 갖고 있던 박완서 소설을 꺼냈어. 삼십 분 읽는 척하다가 에라, 너랑 이야기를 해버렸어.)

(너는 본죽 옥상에 갇혀있었고, 나는 인파에 갇혀있었어. 사람이랑 건물에 각각 갇혀서 갇혀있었어.)

(그날 우리 무리는 서대문까지 쓸려가 곱창전골에 술을 마셨어. 나는 웃기면 때리는데, 마침 웃겼고, 마침 네가 맞아줬어.ㅎㅎ. 너는 아프다고 자리를 옮겼어. 나는 쫓아가서 때리진 않았어.)

(이후에 만난 건, 만나 져서 만난 거 같아. 공복이니 배고프고, 추우니 겨울이고 이런 거.)

(네가 첫 번째 인터뷰이야. 왜 첫 이냐면, 네가 이제 너랑 나랑 지인-터뷰를 같이 진행해야 하니까!)



-(공식 질문이야. 누구세요.)

나도 누구라고 물어보면은 대답해야 되는 그런 것들 있잖아. 이름 , 나이, 소속이 있으면 소속. 그런 걸로 하는 게 당연하긴 한데, 내가 누군지에 그런 것에 설명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름은 정은비고요. 현재 복잡한 사정이 생겨서 백수가 되었고, 아무 생각 없이 쉬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뭔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사람이네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하루 중 언제를 가장 좋아하나요)

아침이 좋을 때는, (아 아침이 좋다고?) 왜 좋냐면, 하루 일정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편은 아닌데, 하루를 일찍 시작할 때, 약속이 있거나 할 일이 있기 이전에 커피 한 잔을 하던지 멍 때리면서 있는 시간이 좋아요. 그냥, 여유 있는 것 같잖아. 시간에 쫓기지 않고. 


대학생 때 심해졌어요. 분, 초 단위로 계산하는 게 싫은데 자꾸 그렇게 되어가더라구요. 약속이나 계획보다 먼저 일어나서 아침에 시간을 갖게 되는 게 좋아요.


은비 인스타그램에서 무단으로.


해질 때, 네시에서 다섯 시, 다섯 시에서 여섯 시.(아 저녁도 좋다고?) 그 시간이 좋은데, 그때 사진 찍기 되게 좋은 시간이에요. 아파트나, 물체에 사물에 빛이 내릴 때 그 빛 색깔이 너무 좋아서. 그늘지는 거랑.

 

-(사진을 왜 찍어요)

진짜 어렸을 때부터 찍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디지털카메라 막 나오기 시작했을 때. 중학교 때는 후지필름 써서. 그걸로 친구들이랑 놀러 가거나 그럴 때. 놀러 가거나 그러지 않을 때는 주변에 있는 것 정도. 그러고 계속해서 많이 찍었던 것 같아.


대학교 들어서는, 사실 나도 내가 영상 관련된 뭔가를 배우게 될지는 몰랐는데, 사진 실습수업이 있었어요. 필름 카메라 수업이 있었는데, 그때 직접 필름을 현상해보고 인화하면서 더 깊이 있게, 내가 이걸 왜 찍지 라고 깊이 있게 생각해봤던 것 같아요. 순간이 사라지는 게 슬퍼서. 뭐라도 남기고 싶어서. 그런 것들이, 내가 찍는 것들이 사소하고, 별거 아닌 걸 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찍음으로써 순간을 남길 수 있잖아. 

 

사람은 잘 못 찍겠어. 사람이 프레임에 있는 걸 싫어했어요. 그 구도 안에 사람이 있는 게 어렸을 때는 방해가 된다고 느꼈어. 근데 점점 뭔가 사람이 있어야 더 좋은 느낌. 요즘에는 더 좋을 것 같다는 느낌... 이전에는 사람을 찍으면 내가 그 사람을 방해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그 사람이 싫어할 수도 있잖아. 나도 모르게 찍히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어. 내가 그걸 싫어하니까.. 


그래도 요즘엔 그 사람의 순간을 예쁘게 찍어주면, 좋은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 수업을 듣거나 하면서 사진에 사람이 있는 걸 노력도 해보고. 여행 가서도, 엄청 용기를 내서 사람들 찍어보고 그랬다.  


-(술 취하면 뭘 하고 싶어요)(난 술 취하면 하고 싶은 게 많아서.)(네꺼 궁금해)

치대요. 주변 사람한테 막 치대는 경향이 있어. 원래 취하는 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취하면 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한테 보이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랬었는데, 한번 취해보니까 재밌더라고. (어 취하는 거 너무 재밌어. 너무 좋아.) 그 상태에서는 나도 정신없고, 남들도 정신이 없으니까 재밌더라고. 흑역사를 만들든 뭐든.... 주변 생각 안 하고... 그런데 민폐(응?) 끼치지 말자! 아무리 취해도!(나 약간 뜨끔해.)


-(겨울인데) (가장 따뜻한 것)

이불속이 가장 따뜻하다. 왜냐면 집에 있는 게 너무 좋다. 여름보단 겨울이 좋아. 추워도. 여름이 힘들어서 겨울이 좋다. 추운 건 싫어. 겨울에 딱 집을 나섰을 때, 그 순간만 좋고. 덜덜덜 떨고 


-(그냥 가장 하고 싶은 것)

(정말 아무거나.) 피아노 치기. 사진 찍는 것도 좋고. 뭔가 만들어내는 것. 처음에 친 거는 부모님이 유치원 때 다 피아노 학원 유행처럼 다 배워야 한다, 한 번씩은 배워야 한다해서 나도 엄마 아빠가 보냈다. 친구가 한다니까. 그냥 피아노 치는 게 너무 좋았다. 클래식 음악도 좋았고, 그 음을 치면 소리가 나잖아, 그거를 열심히 연습을 하면 완곡을 하는 날이 오는 게 그게 너무 좋았다. 처음 보는 악보를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건데, 오른손 먼저 하고 몇십 번 치고, 왼손도 몇십 번 치고, 양손으로 막 엄청 연습을 하면, 그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칠 수 있는 때가 오는데, 그게 너무 좋았다. 음을 만들어가는 것. 뭔가를 악기를 연주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 그냥 아무것도 생각 안 하고. 다 떠나서 순수하게 행복한.


-(어떤 곡이 제일 재밌어)

모차르트. (뭐?) 최근에 10년 동안 안치고 있다가, 어렸을 때 8~9년 정도 쳤었다. 그 시간 만큼 안 쳤다. 중간에 엄마 아빠가 집에 있던 피아노를 버렸다. 최근에 너무 치고 싶어 져서 연습실 알아봐서 갔는데, 작은 별 변주곡이라고 있는데 요즘에 그거 연습하고 있다. 다양하게 변주가 되지.  


-(쇼팽 쳐?)

쇼팽 좋아해. 쇼팽 음악 듣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치는 것도 너무 좋아한다. 진짜 어렸을 때 좋아했던 곡이 있는데, 그 악보를 보고 다시 치는데, 너무 버벅거렸다. 그게 너무 이상했다. 머릿속에선 능숙하게 연주했던 기억이 나는데 손이 안 따라주는데. (나 쇼팽 왈츠 중에,, 몇 번인지는 기억 안 나는데, 좋아하는 노래가 있거든.. 따라라라라라란 이거 쳐?) 어 나 그거 쳐! 내가 얼마 전에 친 게 그거였어! (미쳤네. *직접 녹음을 들려주었습니다. ~달달~) 주말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 거야. 내가 쇼팽 왈츠를 제대로 다시 능숙하게 칠 수 있는 날이 오면 들려줄게. (너무 좋아!)


-(OO아 고마워)

슬아야 고마워. 항상 힘들 때마다 도움을 줘가지고. 최근에도 내가 스스로 나 스스로 뭔가 내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하였던 거에 대해서 그게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좋은 친구. 고맙다. 간지럽군. 이런 말 안 하는데.  


-(어떤 남자 사귈래)

허허허 굉장히 어려운데. 왜냐면 막상 만나면 다르거든. 그냥 생각만으로 한다면. 막 만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싶은 사람. 불편하지 않고. 그냥 마음만 편하면 좋을 것 같아. 많은 말을 안 해도. 말도 통해야겠지만, 때로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의식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되게 잘 통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특히 가치관이 잘 맞았으면 좋겠다.  


페미니스트였으면 좋겠어. 뭔가,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 다양한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 


-(존잘은?)

존잘이면 좋아. 존잘 좋지 당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이면 좋지. 저는 센스 있는 사람이 좋아요. 옷 입는 센스도 그렇고, 대화할 때도 그런 센스가 필요하잖아. 자기만 생각해서 말하는 사람은 재미없지. (어 진짜 재미없어 그런 사람.) 서로 대화하는 게 재밌는 사람. 자기 하는 일에 있어서 엄청..... 열심히 하고, 내가 그 사람의 일을 좋아했으면 좋겠어.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없다. 없고, 그냥 지금 해탈 상태야. 이상형을 만나리라는 그런 기대 따위 버린 지 오래고, 세상에서 가장 부질없는 게 이상형이라고 생각해. 사실 사람 실제로 만나는 거는 삘 꽂히면. 느낌이 오는 사람.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눈빛일까요?) 그 사람 분위기. 아우라.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느낌한테 끌린다.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분위기가 있잖아.)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가 있지. (어려운 사람이야.) 


-(뭐가 제일 재미가 없어)

시키는 거 하는 게 제일 싫어요. 그래서 회사에 다니기 싫은가 봐. 이런 생각이 들면, 아예 흥미가 사라진다. 나 스스로 재밌게 할 수 있는 거? 뭔가 스스로 고민해서 다 같이 마음 맞는 사람, 맘 맞지 않더라도, 그거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극단적인 예를 들면, 고등학교 때 영어단어 몇백 개씩 외우라는 거 안 했어. 내가 스스로 고민을 하고, 익히다 보면 외워지는 거지. 몇백 개씩 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기억이나 날까?


-(돈은 좋아요?) 

돈 좋다.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돈이 다는 아니지. 진짜 어려운 거지.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건 진짜 어렵다. 뭔가를 하게 된다면 절충이 필요해요. 

 

-(너, 변태, 성향)

약간 작업할 때, 각 맞추는 거랑 사진을 찍을 때나, 사물을 포착할 때 각 맞추는 걸 좋아해. 레이어드 디자인을 할 때나, 영상에도 디자인이 필요하잖아. 어떤 요소의 사이즈라거나.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한 건데, 수가지를 고민을 한다. 글씨 조금 줄였을 때, 오른쪽으로 조금 올렸을 때. 글씨체 중요하다. 일할 때 집착하는 게 있다. 글씨체, 자간(자간ㅋㅋㅋㅋㅋ자간 중요해 자간 중요해), 크기, 수평 여부, 중앙... 이것 봐 핸드폰 케이스가 중앙이 안 맞아서 건슬린다고.(앜ㅋㅋㅋ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녀의 휴대폰에는 글씨가 적혀있는데, 그게 약간 한쪽으로 치우쳐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약간.) 그런 게 좀 있습니다. 디테일 잡는 것. 그런 거에 집착해요.

  

-(원래 완벽주의 성향인가요)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렸을 때 더 심했어요. 펜 까지는 게 싫어서 펜 겉을 테이프로 붙였어. 항상 새 거처럼.(아 하이테크 이런 거?) 흠집이 나면 거슬려서. 그런 거 되게 싫어해서.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부질없다고 느낀 후로 그냥 자연스럽게 닳는대로 쓰게 됐어요. 요즘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어렸을 때 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영화를 대체 왜 좋아해요)

화양연화.(나 정말 놀랐어. 화양연화 정말 좋잖아. 정말 너무 좋잖아. 정말 좋잖아.) 다크 나이트도 좋아.  

(화양연화가? 왜 좋은데? *아주 신남)

일단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이 좋아요. 구도 잡을 때 잘린 것 같은 구도 불완전해 보이는데 정말 완벽한 그런 구도들과, 홍콩 영화를 볼 생각이 아예 없었는데 왕가위 영화를 봤는데, 홍콩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분위기야. 대사들. 사실 화양연화는 이야기로서 많이 다뤄진 소재인데, 완전 감독의 스타일을 살려서, 독특하게, 스타일리시하게. 이별 연습하는 부분이랑(크으...), 계단 올라갈 때 슬로로 가면서 음악 나올 때(캬아). 양조위가 너무 좋다 치파오가 너무 예쁘고.  


다크 나이트. 크리스토퍼 놀란은. 내가 영화를 보면, 감독에 꽂히면 그 영화 다 찾아보는 것. 스무 살 여름방학 때. 크리스토퍼 놀란의 모든 필모를 싹 훑었어요. 그리고, 1학년 2학기 교양 소논문 과제도, 인셉션으로 썼었다. 결국 어쩌다 보니 최종 철학과 논문도 영화 관련해서.... 놀란은 아니었지만 디스트릭트 9. 하나 꽂히면 파고드는 성향이 있어서.


영화 많이 좋아해 가지고. 뭐가 제일 좋은지 정하는 게 어렵다 이건 이거대로 좋고 저건 저대로 좋고. (맞아. 질문이 이상했어)  


-(마지막 질문은 네가 너에게 던지고 대답도 네가 하세요.)

너는 지금 행복하니?

만약에 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면 선뜻 행복하다고 말하지 못하겠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최악이겠지만, 그래도 좋아. 내가 하고 싶은걸 시도할 수 있고, 그런 걸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거 자체가 좋아.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생계가 유지가 되고, 이런 일을, 이렇게 좋아하면서 살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이렇게 깔끔하게 마무리해보도록.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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