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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혁 Oct 23. 2016

엄마 아빠랑 여행 안 가고 싶어(2)

부모가 편한 육아

첫 번째 글 https://brunch.co.kr/@williamc/27 에 이어서 쓰는 글


사랑스러운 둘째는 그렇게 여행을 통해 자존감도 회복되고 아빠와 관계도 회복되었다.

국내여행은 빼고, 그다음 해외여행도 일본이었다. 둘째가 워낙 스키를 좋아했다.


오해 잠식을 위해서 한마디.

내가 스키를 배운 이유는 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겨울마다 스키장으로 일 주간 가서 수련회를 했기 때문이다. 닷새 동안 머물면서, 반나절은 스키를 탄다. 마지막 날 빼고는, 리프트 안 태워주고,  가혹한 스키를 가르쳤다. 덕분에 스키 좀 타고,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가르쳤다. 실내 스키장에서 한 달 배우니 아이들이 바로 중급에서 탄다. 아이들은 그렇게 스키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어와나 스키 캠프가 해마다 열려 온 가족이 거기서 매년 한 주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세화 세라는 스키를 좋아했다. 특히 세라가 많이 좋아했다.


자기주도적 여행 계획 세우기 - 점점 구체적으로


스키 좋아하는 세라를 위해 일본으로 스키 타러 갔다.

그때는 첫 일본 스키 여행이라 내가 검색하고 세라에게 의견을 물었다. 가능한 원전과 멀리 떨어진 곳을 찾다 보니 홋카이도 지역을 찾아 검색했고, 세라의 지원으로 토마무 리조트를 결정했다. 우리 가족 역사상 최초의 호화 여행이 되었다.



토마무는 윈터 패스 카드(대략 인당 50만 원)를 사면 나머지는 장비 렌털 비용만 추가되었고, 식사비가 허용한도를 초과할 때만 돈이 더 필요했다. 별로 고민할 게 없는 여행. 우리 가족으로서는 처음 해 본 호화판 여행이었다. 뷔페 식사를 거듭하자, 세화는 "우리 매일 이렇게 먹어도 돼?"라면서 놀라고, "우리 가족 여행에서는 상상도 못 하여 본거네?"라고 덧 붙였다.

밥보다 맛있는 토마무 부페식당의 경치
멋진 경치를 자랑하는 식당에, 부티나는 음식에, 심히 행복해 하는 세화

그 몇 달 후부터, 세라는 타이완에 가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세화도 동조했다. 일본 호화판(?) 여행도 갔는데 타이완은 무지 싸다는 것도 작용했다. 좋아하는 만화 영화 센과 치히로의 배경이라서 가고 싶어 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본 것도 영향을 받았다. 나는 대학원 중간고사, 과제, 학부 가르치는 것 채점, 그리고 본연의 회사일 등으로 너무 바빠 엄두를 못 냈다. 그래서 세라에게 그럼 셋이 가는 걸로 알아보라고 했다.


계획도 여행의 일부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 좀 더 구체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도록 해 준다.


그리고는 구글 시트를 만들어 주고 채우도록 했다. 타이완에서 한 끼 식사, 타이완 환율, 차비 들을 조사하도록 했고, 여행사 항공 + 호텔 패키지를 알아보도록 했다. 총비용은 2백만 원까지 사용 가능하다고 말해주었다.


세라가 주도적으로 가게 된 첫 여행(일본 토마무)에서 세라는 어디로 갈지만 결정했다. 두 번째 세라 주도 여행 타이베이에서는 구체적으로 식비, 택시, 대중교통 등을 조사했다. 세화는 여행 경로를 찾아내고 세라와 저녁마다 머리 맞대고 상의했다. 어느 맛집을 갈지 잔뜩 기대하며 논의했다. 세 번째 가족 여행 돗토리 스키 여행 때는 더 구체화되어서 많은 부분을 세라가 결정했다.


아이들의 자기 주도적 계획 세우기 - 점점 구체화하고 넓혀 나갈 수 있다.



자기주도적 길 찾기와 현지 말하기


떠나기 전까지, 매일 세라랑 세화는 식탁에서 여행 계획을 세웠다.


이건 꼭 먹어봐야 해!
응 여기 가봐야지!
가면 언니가 말해, 내가 길 찾을게.


세화도 세라도 길을 잘 찾는다. 아내는 이미지로 지리를 기억하고 찾아가고, 나는 머리 속에 지도를 그리고 찾아간다. 세화 세라는 그런 능력을 고루 받았는지 길을 잘 찾는다. 세라가 길 찾는 데는 좀 더 뛰어나다.

세화는 어학에 재능이 있다. 영어도 잘 하지만, 중학 때 제2 외국어로 배운 중국어는 선생님께서 세화 실력이 아깝다면서 계속 중국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언어와 길 찾기가 가능하니, 별로 두려울 것이 없을 듯했다.


그랬다. 보통 사람들처럼 그 둘도 여행 가기 전 계획 세우는 단계에서 너무나 큰 즐거움을 맛봤다.


그렇게 나를 뺀 세 여자는 덥고 습한 나라, 맛난 음식의 천국 타이완을 다녀왔다. 

어느 여행이나 그렇듯 현실은 계획과 달랐다. 세라 친구 나영이가 마지막 순간에 동참해서 넷이 되었다. 여행 가서 하루는, 안타깝게도 세라가 배탈이 났다. 그래서 세라와 아내는 호텔에서 반나절을 보냈고, 세화랑 나영이만 둘이 놀러 갔다. 고2, 중1 여자애들 둘이 외국 땅을 돌아다닌 거다! 너무 위험하다? 그 둘은 그렇게 낯선 땅에서 하루를 보내고 얼마나 뿌듯했을까? 이국 땅을 자기들의 계획대로 누비고 다녔으니 말이다. 그 경험은 어떤 공부보다도 그들에게 더 큰 유익이 되었을 것이다.



세 번째 세라 주도 여행인, 돗토리 스키 여행에선 강풍으로 셋째 날 일정이 취소되었다, 그래 쇼핑몰 관광을 대신 가게 됐다. 아이들이 충분히 컸으니, 쇼핑 몰에서는 몇 시까지 여기서 만나자고 하고 헤다.

아이들에게 자유를 줄 때, 그 층에서만 다니기로 약속한다. 좀 더 크면, 그 건물에서만 다니기로 약속한다. 물론 더 크면 특정 지역을 한정 지어두고 자유를 줄 수도 있다.

정말 아이들이 걱정되면, 엄마나 아빠가 뒤를 쫓아다니면 된다. 손 잡는다는 미명 하에 질질 끌고 다니면 아이들은 흥미를 잃는다. 길을 찾는 것도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경험이다. 그 과정에서 모르는 남의 나라 글자도 읽으려고 애쓰게 된다. 말이 안 통해서 겪는 불편함도 경험한다. 엄마 아빠가 죄다 통역해주려고 하면 배울게 없어진다.



세화는 중2 때, 아빠가 시애틀 간다고 하자, 자기도 따라간다고 말했다. 학교 수업도 걸렸지만, 아빠 철학대로 "학교 따위는" 가볍게 빼먹었다. 너무 늦게 항공 예약을 해서 좌석이 없어 동승이 불가능했다.

진짜, 너 혼자 비행기 탈 수 있겠니?

응!

세화는 그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을 뿐 아니라 도전 정신을 보이며 신난다 라는 반응이었다. 결국 네 시간 뒤 출국, 하루 뒤 귀국 편을 예매했다. 그것도 타 항공은 만 13세 초과 보호자 없이 여행 가능인데, 감사하게도 델타 항공에서는 12세 초과 단독 여행 가능이라서 세화 혼자 여행이 가능했다.


중2 딸이, 도쿄에서 환승하는 걸 과연 잘 해 낼까? 염려도 되었다.


세화는 그렇게 홀로 공항에서 출발했고, 환승했다. 홀로 미국 입국 심사를 받았다. 귀국 길에는, 그곳 시애틀 어와나 선생님이었던 팀과 메를린이 공항에 데려다주었다. 그 후, 홀로 출국 심사, 홀로 경유를 했다. 일본 공항에서 꼭 와이파이 연결해서 연락하기로 했는데, 아무 연락이 없었다. 도착 후에 물어봤다.

왜 일본에서 연락 안 했어?
와이파이가 안 되더라!


나는 시애틀에 세미나 때문에 갔기에, 직원들이 동행했으며, 세화를 데리고 다니거나 놀아줄 형편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보호자 없이 아이가 홀로 다닐 수 없다. 

우리 직원 ㅎㅈ는 미국 여행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그 기회에 같이 갈래?라고 물어보았다. 그렇게 ㅎㅈ는 휴가차 함께 가게 되었다. 그래서 ㅎㅈ와 함께 하게 됨은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세화가 영어로 말하고 ㅎㅈ가 세화의 성년 보호자 역할을 했다. 둘은 그렇게 시애틀을 누비고 다녔다.



문제도 극복해야 한다.


대만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세라는 타이베이가 아닌 타이쭝으로 가는 저렴한 에어텔 패키지를 찾아냈고, 시트를 채웠다. 여행 가는 것만큼이나 이 과정이 즐거웠지만,  실수도 저질렀다. 예약 직전 여행사에서 재확인을 했다.


"그런데 왜 타이쭝으로 가세요?"

"네? 거기가 왜요?"

"말하자면 거긴 대전인데, 매일 서울로 구경 오가실 예정이세요?"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 타이쭝에서 타이베이 에어텔로 변경되었고 가격은 좀 더 올라갔다. 잘 못도 한다. 그래도 그걸 찾아내고, 고치는 것도 여행이다. 그것도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능력이다.


대만 여행 그다음 해 겨울에도, 어와나 스키캠프는 부활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또 일본으로 겨울 스키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번에도 여행 담당자는 세라가 되었다. 저녁마다 오늘은 무슨 스키장을 검색했다고 조잘조잘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너무 늦게 결정했다. 그 때문에 모든 항공권이 너무 비쌌거나, 아예 좌석이 없었다. 결국 비행기 대신, 동해시에서 출항하는 배를 타는 방법을 선택했다. 일본 서쪽 돗토리 현, 다이센 산에 스키 타러 갔다.


비록 저가이지만, 처음 해보는 크루즈 여행! 기대도 되는데, 문제는 평소 세라가 멀미를  잘한다는 것. 그래서, 세라는 뱃멀미를 미리 걱정했다. 멀미약 사두고 출발과 동시에 먹었다. 

배는 동해를 따라, 밤새도록 갔다. 잠들 때까지도 한국 전화가 그대로 연결되었다. 야밤에 선상에서 두 딸이 서로 밤바다 보며 뭔지 모를 이야기 나누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빠의 마음은 참 흐뭇했다.

두 아이들은 밤 바다를 바라보며 둘이 선상에서 한참을 이야기 하고 놀았다.


자고 일어나 배에서 맞이하는 일출을 보고, 아침을 먹었다. 그때부터는 바로 로밍된 일본 통신이 연결된다. 참 괜찮다. 통신 두절도 몇 시간밖에 없고, 밤에는 다리 뻗고 잘 자고. 스키도, 관광도 즐거웠다. 토마무 같은 호화 여행은 아니었으나, 우리 가족은 충분히 만족했다.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배움이다. 계획은 번번이 변한다. 그런 가운데서 즐거움과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배움이다.

그러나, 셋째 날 문제가 생겼다! 폭풍으로 리프트가 중단되었다. 우리는 스키장 가서 리프트와, 렌털을 환불받았다. 그 대신, 하고 싶었던 시내 관광과 쇼핑몰에서의 쇼핑을 즐겼다.



자기주도적 쇼핑- 돈도 써봐야 한다.

인생은 돈과 뗄 수 없다. 결국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는지 배워야 한다. 돈 쓰는 걸 배울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여행이다.


둘은 그간 벌어둔 용돈을 여행 때 사용한다. 특히 아이들이 세뱃돈 모아 둔 것은 엄청나다. 쌓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아이들은 돈 가치를 모른다. 돈 벌어야 한다는 생각도 못한다. 처음엔 부모가 환전하고, 거기서 달라는 대로 주고 나중에 정산한다. 점점 발전하면 처음에 환전 얼마나 할지 스스로 계획도 세운다. 그래서 요청한 대로 환전해준다. 나중엔 환전도 스스로 하게 하면 더 좋다.


토마무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공항에서 쇼핑을 즐겼다. 공항에 풀어놓고, 여기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한 뒤에 각자 쇼핑을 즐겼다.

돗토리 셋째 날 갑자기 생긴 쇼핑몰 쇼핑 때, 처음 본 무인 양품에서 신나게 쇼핑을 즐겼다. 세화는 특별히 쇼핑의 귀재다. 한국에서 팔지 않는 거, 그 나라에서 더 싼 걸 기가 막히게 찾아서 사 온다. 초등 5학년 때 어와나 캠프로 참석한 올랜도에서는,  정해진 한도에서 (아마 50달러~200달러?) 가장 알차게 물건 사 와서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


엄마 아빠가 사주고, 골라주는 물건, 엄마 아빠에게 졸라서 사야 하는 물건이 아니라. 처음부터 쓸 수 있는 돈의 한계를 정해주고, 자기들 마음대로 사는 그 재미는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을 것이 분명했다.





맺음말 - 아이들도 할 수 있다!


가족 여행은 귀중한 시간이요 경험이다. 이 귀중한 가족 여행을 어떻게 값지게 할 것인가? 아이들이 그 여행을 통해 어떻게 자라게 할 것인가?

여행의 모든 것을 부모가 주도하면 피곤하다. 부모도 피곤하고, 아이들도 피곤하다. 아이들에게 계획의 많은 부분을 나누어주면 부모도 편하고,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가끔은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 문제를 극복하는 게 인생살이다. 아이들은 왜 여기서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여행은 삶을 배우는 귀중한 기회다.

귀한 여행을 가치 있게 하는 방법을 다시 정리해본다.


첫째, 여행 계획은 아이들이 세우도록 한다.

처음엔 여행지만 정하고, 그다음엔 현지 물가를 알아보게 한다. 그 후엔 여행 경로, 찾아갈 곳도 정하게 한다. 더 잘 하면 직접 여행사와 항공사에 연락해서 예약을 하도록 한다. 더 잘하면, 아예 혼자 다녀오고, 혼자 수속 밟고, 그야말로 혼자 모든 걸 다할 수 있게 된다.


둘째, 길 찾고 말하는 것도 아이들이 하도록 한다.

가능하면 아이들에게 눈치로라도 찾아가도록 하고 부모는 뒤에서 따라다닌다. 점점 발전하면 그 나라 말로 어떻게든 물어보게 한다. 구글 번역기를 써도 된다. 구글 지도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만 동작하지 않는 구글 지도는 해외에서는 너무나 훌륭한 가이드다)


셋째, 돈 쓰는 것을 아이들이 해 봐야 한다.

내 돈 내고 여행할 때는 즐겁다. 돈 벌며 여행하는 것은 괴롭다. 즐거운 단계에서 아이들이 돈 쓰는 법을 익혀야 한다. 처음엔 매번 허락하에 쓸 수 있다. 점점 발전하면 여기서는 총얼마를 쓸 수 있다고 알려준다. 한국이나. 이탈리아처럼 뒤에 단위가 많이 붙으면 000 즘은 지우고 말해도 된다. 더 발전하면 이번 여행에서는 총얼마를 쓸 수 있다고 알려준다. 후에는 여행 경비 전체를 맡길 수도 있다.


넷째, 문제 해결 능력은 꼭 배워야 한다.

어떤 여행이고, 어떤 삶이고 문제없는 삶은 없다. 문제가 생기고 일정이 틀어져도 거기서 즐겁게 살 수 있음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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