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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혁 Sep 17. 2016

엄마 아빠랑 여행 안 가고 싶어(1)

자기 주도적 삶


"3년의 시간, 10억의 돈이 생기면 뭘 하고 싶으세요?"

강의를 하며,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자주 묻는다. 여러 차례 반복되다 보니, 이젠 대답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70% 정도가 이렇게 대답한다.

"여행을 가고 싶어요"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부모와 멋진 여행을 다녀온 후에, "여행 좋았어?"라고 물어보면 의외로 대답을 머뭇거리는 경우를 보게 된다. 속 내를 털어내는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 엄마 아빠랑 여행 안 가고 싶어

아니 왜? 대체 왜? 아이들이 가족 여행을 싫어하는 걸까?


아이들은 여행에 끌려 다녔기 때문이다.

끌려 다니지 않는 여행이 되려면, 자기주도적 여행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 나이에도 그게 가능한가? 가능하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여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빠 엄마는 맞벌이한다고, 피곤에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위한 여행 계획을 세운다. 목적지는 정해졌다. 이제 싸게 항공료를 끊어야 한다. 수없는 인터넷 발품 끝에 저렴한 항공권을 확보했다. 숙소를 찾는다. 그리고 여정을 결정한다. 치밀하진 못해도 꽤나 잘 짜인 여행 경로를 보며 흡족해한다.

드디어 아이들에게 알린다. 짜잔~~~

"얘들아 우리 이번 휴가에 여행 갈 거야!"

아이들이 신나서 좋아하는 표정을 보며 그간의 피로가 날아간다.

정작 여행을 가서는 점점 상황이 바뀐다. 멋진 풍경이 펼쳐진 광경을 보라고 엄마 아빠가 아이들에게 외친다. 아이들은 3초 눈길을 돌리곤 다시 스마트폰에 빠져 든다.

"야, 이게 어떻게 온 건데 폰만 하고 있어? 밖에 좀 보라고!"

계속 폰에 빠져드는 아이들을 보며 결국은 버럭 한다.

"너희들 이러면 담부턴 여행 안 온다! 집에서 폰만 해!"

"그래 나 엄마 아빠랑 여행 안 가고 싶어!"


이런 일은 왜 생길까?

아이들은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서 빠져있기 때문이다.

한번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부장님이 날 부른다. 이번 파리 출장에 같이 가자고 한다. "야호!"를 외치며 짐을 싼다. 가고 싶은 곳을 찾아본다. 그런데, 가 보니, 대체 어디 가는지 일정도 안 알려주고, 부장님 좋아하는 음식만 먹으러 찾아다니고, 부장님 취향대로 골프 가게 투어만 하신다. 돌아와서는 다시는 부장님이랑 여행 가고 싶지 않다는 결심을 속으로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 다니는 여행은 어른조차도 피곤하다.


아이들이 여행의 주도권을 조금이라도 가져야 한다.

여행 계획부터 아이들이 짜도록 해주자. 너무 어리다면 작은 부분이라도 떼어 주고 계획을 세우게 해주자.

우리의 첫 가족 여행은 캐나다 로키였지만, 아이들이 너무 어렸다. 둘째는, 갔었다는 기억만 하는 수준이다.

아무데나 사진만 찍으면 화보가 되는 캐나다 록키 산맥, 가족 여행

두 번째 가족 여행이 제대로 된 첫 번째 가족 여행이었다. 일본 도쿄, 세미나 때문에 닷새를 가야 했다. 그때 아예 온 가족이 같이 가서 세미나 후에 여행을 좀 더 하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출발 전에 우리가 이번에 쓸 수 있는 돈은 얼마라고 알려줬다.

(앞자리 숫자 세 개만) 그때 아이들 나이에는 그걸로 충분했다. 일어를 알고 검색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출국 전 마냥 신난 두 아이들

가기 전에 아내에게 신오오쿠보 쪽에 민박을 검색해서 예약하도록 했다. 아내는 비행기 안에서 외쳤다. "앗차! 호텔 예약 정보 프린트!"

아내는 그 정보를 집에 두고 왔다. 그날 우리는 숙소 이름만 알고, 비 오는 밤에 사방팔방 헤맸다. 고생 끝에 찾아낸 아내의 예약 호텔은 전혀 엉뚱한 지역이었다.


우리는 왜 택시 안타?


정말 고생고생, 천신만고 끝에 첫째 날 밤 11:15에야 예약한 숙소에 투숙했다. 마지막 구간에는 택시를 탔다. "우리는 왜 택시 안타?"라는 첫째의 말 때문에, 그리고, 비도 오고, 정말 많이 걸었기 때문에. 그리곤 돈 얼마 는지, 남았는지 알려줬다. 첫째가 깜놀! "아니 그 그렇게 짧게 탔는데 그렇게 많이?"

그러더니, 결론 내린다. "우리 이제 택시 타지 말자"


다음 날 우리는 다시 새로운 숙소를 찾기 위해 가방을 들고 퇴실했다. 각자 트렁크 하나씩 끌고 전철 타고 걷고. 전철 계단을 트렁크 들고 오르내렸다. 정말 천신만고 끝에 숙소를 잡았다. 첫째는 그날 이렇게 일기를 적었다.


"태어나고 9년 11개월 만에 가장 많이 걸은 날"
"태어나고 9년 11개월만에  가장 많이 걸은 날" 이후에, 걷는데 이력이 난 두 아이들 신나게 동경을 누볐다.  


둘째 날, 그 숙소는 너무나 외진 곳이라, 예약금 날리고, 새로 숙소를 잡았다.

신나게 놀았다. 사방팔방 구경 다니면서. 이젠 걷는데도 이력이 났다. 계속 덥밥(돈부리)류만 먹자, 큰 따님 한마디 하신다.

"우린 왜 맛있는 건 안 먹어?"

"그래? 어디 갈까? 골라봐"

그리곤 맛나게 먹었다. 순식간에 6만 원 정도 돈이 나갔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우에노 도쿄 국립 과학박물관을 구경했고, 대 만족을 했다.

저녁에 남은 돈 알려주자, 다시 큰따님 결론 내려주신다.

"우리 이제 맛난 거 먹지 말고, 멋진 거만 보자"


싼 음식만 먹넌 어느날 "우린 왜 이런 거만 먹어?"라고 묻는다.


이 정도쯤이야 뭐! 걷자!


그렇게 우리의 두 주간의 도쿄 여행은 끝났다. 귀국 날은 설날 연휴였다. 날씨는 갑작스레 추워졌고 우리 옷은 너무 얇았다. 공항버스를 내려서 집까지 한 번 더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택시를 타려고 해도, 택시에 트렁크 네 개를 싫을 수가 없다.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가 안 되겠다 싶어서 아내가 먼저 택시 타고 집으로 가고, 우리는 아내가 차를 가지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여행 후 기다리는 것은: 추운 날씨, 얇은 옷, 트렁크 가방, 오지 않는 버스

버스 정류장에서 트렁크 세 개를 세우고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길었다. 너무 추웠다. "어쩌지?"라는 나의 걱정스러운 말에 큰 딸 멋진 결말을 내주신다.

"이 정도쯤이야 뭐! 걷자! 일본에서도 그렇게 걸었는데"

집까지는 버스 여섯 정류장쯤. 게다가 언덕을 하나 넘어야 하고 집 앞에는 심한 언덕이었다. 그걸 걸어가겠다는 거다. 초등 4학년이! 훌륭하다!


자기 주도성이 들어간 여행은 가치 있다!

큰돈 쓰고 바다 건너 다녀온 보람이 있다. 당장 추운 날씨, 끊어진 교통편, 무거운 트렁크, 얇은 옷이라는 역경이 있었지만, 극복하고 나아가려는 저 정신. 그걸로 돈 값은 충분했다!


돌아온 지 며칠 후, 아이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전지에 가족 신문을 만들었다.

여행 후 아이들이 만든 가족신문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 아빠랑 많이 논 것


그런데 자존감 바닥에서 회복된 우리 둘째, 가족 신문에 적은 글이 참 의미 있으면서 맘 아프다.

일본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 아빠랑 많이 논 것


그 후 둘째는 자주 "일본 여행 또 가자"라고 말했다. "내게는 아빠가 종일 나랑 놀아주는 시간이 좋았어. 그게 필요해"라고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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