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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혁 Sep 14. 2016

자기 주도적 삶

모처럼 청소하려고 했는데...

이런 경험 한 번쯤 있다.

오늘은 맘먹고 청소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웬일? 아버지께서 지나면서 한마디 하신다. "청소 좀 해라!"

그 순간 빗자루를 던진다. 시켜서 하는 건 이렇게 싫은 법이다.


내 삶은 내가 주도적으로 살아야 한다.

부모나, 선생님이나, 선배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주도적으로 하는 건 재밌거나, 할만하다. 생각해보면 예전에 운전할 때가 재밌었다. 가진 거라고는 전국 도로지도 책 한 권. 시골 어느 마을로 갈 때면 지도 책을 여기저기 살피면서, 차를 세웠다 지도 보고 다시 출발하고 이런 일을 반복했다. 당연히 내비게이션이 가르쳐주는 지금보다 시간은 말도 못 하게 오래 걸렸다. 

내가 주도적이지 않은 삶은 재미없고, 하기 싫다. 뭔가 배우는 것도 없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 그대로 자신의 얼굴에 투영된다.


며칠 전 나도 모르는 동작구 대방동 어떤 동네를 가야 했다. 출발할 때 대방동만 확인하고 내비게이션을 맞추고 떠났다. 시간이 모자라 가는 길을 내가 "주도적으로" 한번 훑어 보지 못했다. 남태령까지는 아는 길이니 문제가 없었다. 그다음 갑자기 우회전 후 지하차도 진입. 새로 생긴 강남순환도로였다. 처음 가봤다. "오! 신기하다!"라는 감탄도 잠깐. 서울대 쪽으로 나가야 하는데 "어? 혹시" 하는 사이, 순식간 출구를 놓쳤다. 그다음부턴 완전, 재미없는 운전이었다. 기나긴 터널, 가지 않아도 되는 터널을 빠져나갔더니 소하리 기아자동차 앞. "헐~~~ 대체 얼마를 돌아가야 하는 거야?" 그 뒤 돌아가는 길은 길을 몰라 오직 내비게이션의 지시만 따랐다. 참 재미 없는 운전이었다. 자기주도성을 잃으면 이렇게 재미 없다.


남이 시켜서 하는 운전만 그런 게 아니라, 남이 시켜서사는 삶도 마찬가지다. 내 삶의 주인은 나다! 부모님이나, 학원 선생님이나, 대기업에 취직한 선배가 아니다. EBS 아이의 사생활, 다중 지능 편을 보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30대들이 다시 자기 적성을 따라 새로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들의 공통적인 대답.

"그럼 왜 이 직업을 처음에 택했나요?"

"부모님이 하라고 해서"

엄마가 챙겨주는 학원, 엄마가 알아봐 준 학원, 엄마가 먹여주는 밥(EBS 마더쇼크)은 내 주장으론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해가 된다. 병아리가 부화하는 걸 도와주면 그 병아리는 결국 자생력이 없어 죽고 만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모가 아이의 먹을 걸 결정해주고, 부모가 아이의 입을 걸 결정해주면 아이는 나중에 어떻게 자생력을 가지게 될까?


청년들이 "나 좀 관리해주세요"라고 호소한다.



자기주도는 시행착오를 동반한다. 

그리고 그 시행착오가 성장의 거름이 된다. 아이 스스로 옷을 골라 입고 학교/유치원/또래 집단에 갔다. 그리곤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탓을 하지 않는다. 자기가 골라 입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은 좀 다른 옷을 입고 가거나, 놀리는 친구들을 혼내주기로 결심할 수도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아이는 성장한다.

아이는 만화책을 마저 보고 시험공부를 하기로 한다. 그리곤 시험을 망쳤다. 다음번에는 야단을 덜 맞기 위해서라도 만화책을 덜 보게 된다. 이런 것을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다. 청년들의 "나 좀 관리해주세요".라는 호소는 이런 시행착오를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 커서 겪는 문제다.


시행착오는 어릴 때 해봐야 한다.

다 커서 시행착오를 하면 그때 오는 비난은 더 감당하기 힘들다. 그리고 머리가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기 때문에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어릴 때 이런 걸 해 봐야 한다. 나이 40이 되어서 가장인데, 그때야 시행착오를 경험하기 시작한다면 큰 위험이 따른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고, 자신을 바라보는 팀원이 있다. 그때 첫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부모는 지켜봐 주기만 해야 한다.

나서지 말아야 한다. 부모들은 아이의 삶에 그만 관여해야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오히려 동식물보다 미련한 경우가 종종 있다. 어미 닭은 병아리의 껍질 깨고 나옴을 그냥 보고 있다. 누에고치를 뚫고 나오는 나비를 도와주지 않는다. 부모는 그 과정을 그냥 보고 있어야 한다. 직접 나서서 문제 해결을 해주면 안 된다. 

아이들의 직업을 결정지어주는 부모들이 많다. 부모가 알고 있는 직업은 기껏해야 100개 미만이다. 아이들이 아는 직업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등록된 직업은 수만 가지다. 5년 후면 십만을 넘을 전망이다.

부모들이 아는 좋은 직업은 이미 하위 직종이 되었거나, 그렇게 되고 있다. 

신문기자. 뉴스 앵커, 의사, 모두 부모세대에서 최고의 직업에 속했다. 아이들이 자라면 그런 거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미 이 직업들은 몇 년 전부터 계속해서 최악의 직업에 속하고 있다. 신문기자는 2016 최악의 직업 1위에 올랐다. 뉴스 앵커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세대는 듣보잡(듣지도 못했던) 이상한 직업들이 best 10 직업에 올라와 있다. 예를 들어 보자. Audiologist는 미국 best 10 에 3년 이상 등장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10위권에 진입하더니. 2015년에는 2위, 2016년에는 4위에 또 올랐다. 우리 말로는 "청능사"라고 한다. 대체 이게 무슨 직업일까? 

2016년 미국 직업 평가 전체 목록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비단 미국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에도 부모세대는 듣도 보도 못했던 직종 하나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도선사? 그게 대체 뭔가? 연봉 1억 5천만 원이란다. 뭐, 한국의 탈세와 거짓 소득신고를 감안해도 도선사의 최상위 등극은 놀라운 소식이다. 적어도 부모세대는 전혀 모르던 직종이었으니까. 아이가 "나 도선서 하려고요"라고 말했다면 심하게 "이 놈 자식이 하라는 공부는 않고....."라고 나무라며, 의사와 변호사, 기자 하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자기주도적으로 살아야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불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모는 나서지 말아야 한다. 부모가 결정해 주는 것이 성장을 방해하고, 자기 주도성을 잃게 하며, 심하게는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자기 주도적으로 길을 열어주고,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부모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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