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지라도
"형아, 내가 100살 되면 형은 몇 살이야?"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던 동생이 질문을 건네 왔다. 다섯 살 배기 늦둥이 동생이 100살이 되면 나는 120살이 된다. 형은 아마 하늘나라에 가 있을 거라는 대답에 동생의 표정은 울적해졌다.
"그럼 형아 못 보는 거야?"
나도 어릴 적엔 비슷한 생각에 빠져 슬펐던 기억이 있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는 나쁜 녀석이지 않은가. 하지만 얼마 전 민우의 페이스북 담벼락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민우는 중학교 시절 싸움짱이었다. 그렇다고 학교 폭력을 하지는 않았다. 다른 아이가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걸 못 참는 성격 때문에 싸움에 휘말리는 일이 잦았을 뿐이었다. 의리가 있는 성격이여 선지 민우의 담벼락엔 아직도 중학교 친구들이 글을 쓰고 있었다.
오우람님-> 강민우님 "민우, 요즘 못 본 지 오래 됐제? 올 추석엔 꼭 내려갈게 친구야."
김성빈님-> 강민우님 "민우야 보고 싶다~ 올해는 바다 꼭 같이 갔으면 좋겠다."
안부를 묻는 글만 있는 건 아니었다.
김지혜님 -> 강민우님 "오빠, 요즘 인간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다. 그래도 오빠가 해준 말 기억하면서 참고 있어."
황석준님 -> 강민우님 "민우야, 요즘 유행하는 뮤지컬 <스틱스 강> 아나? 나 거기 캐스팅됐다. 니도 꼭 보러 온나!"
민우의 담벼락은 마치 친구들의 사랑방 같았다. 저마다 기쁜 일부터 슬픈 일 모두를 터놓고 있었다. 다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나도 잠깐 까먹고 있었다. 민우가 6년 전 자살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민우는 학교에선 카리스마 있는 학생이었지만, 사회적으론 고아에 가까웠다. 어머니는 가정폭력에 시달려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심각한 알콜 중독이라 없으니만 못했다. 생활비라도 벌기 위해 민우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동네 교촌 치킨에서 배달 일을 했다. 하지만 중졸 미성년자를 받아주기에 우리 사회의 벽은 높았다. 배달을 나가던 민우가 실수로 택시와 접촉사고를 낸 것이다. 택시 기사는 수리비와 합의금 조로 800만 원을 요구했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빚을 내던지 그냥 형량을 치르던지 해서 넘어갈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우리는 모두 어리고 외로웠다. 치킨집 사장도, 가족도 민우를 끝내 도와주지 않았다. 합의금 마련 기한이 끝나는 날, 민우는 집 화장실에서 번개탄을 피웠다.
충격적이었던 성규의 죽음은 점점 잊혀 갔다. 누군가에게 성규는 안타깝게 자살한 아이로만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성규를 기억하는 친구들은 기쁜 일을 공유하고 슬픔을 나누며 살아갈 용기를 얻고 있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기억 속에서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있다. 그래서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참고 있는 막둥이에게 말했다. “형은 우리 막둥이 마음속에 항상 같이 있을 거야. 영원히 사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