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ber Puncture의 시대
한국 시각으로 2024년 7월 19일, 대규모 전산 마비가 세계를 덮쳤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1918290002623
델타·유나이트·아메리칸 항공 등 미국의 주요 항공사들의 항공편 운항이 중단되었다.
독일,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등 각국에서도 항공 운항에 차질이 발생했으며 우리나라의 LCC까지 운행이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영국의 스카이뉴스 방송사는 생방송을 진행하지 못했고 런던 증권 거래소의 소식이 전달되지 못했다.
파리 올림픽을 5일 앞둔 시점에서 IT 시스템이 먹통이 되어 비상대책을 가동하는가 한편 일본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모든 레스토랑과 기념품점이 문을 열지 못했다. 심지어 독일에선 수술이 취소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https://www.yna.co.kr/view/AKR20240719156400108?section=international/all&site=topnews01_related
동시 다발적인 대란은 MS 클라우드인 '애저'를 이용하는 데서 발생했다. MS클라우드의 보안 프로그램인 클라우드 스트라이크, 그 중에서도 차세대 백신 '팔콘' 시리즈에서 패치 오류가 있었던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MS 클라우드를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들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사용률은 아마존웹서비스(AWS)가 60.2%를 차지하면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MS 클라우드의 사용률은 그 뒤를 이어 24.0%에 머문다. 따라서 타국에 비해 심각한 피해를 피해갈 수 있었다.
경제적 피해 규모는 계속해서 커져가는 모양새다. 대략적인 추산액 조차 집계되지 못했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71962881
클라우드 컴퓨팅은 개인이나 기업이 각종 데이터를 저장해두는 기술이다. 현재는 단순 저장을 넘어 소프트웨어를 지원해주는 서비스로까지 발전했다.
생성형 AI가 부상하면서 클라우드 컴퓨팅의 중요도가 한층 더 상승했다. 생성 AI의 학습은 하이퍼스케일의 데이터 센터가 필요한데, 초거대 IT 업체가 아니면 지원이 불가능하다.
전산을 이용해 상업활동을 하는 전세계 수요자들이 소수의 서비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MS와 AWS만 합쳐도 시장 점유율이 절반을 넘어간다.(23년 4분기 기준 AWS 31%·MS애저 24%) 이번 사태는 충분히 예견될 일이었다.
AI와 빅데이터, 클라우드, IOT 등 오늘날의 기술력은 과거 '사이버 펑크'에서 상상하던 대로 이뤄지는 모습이지만, 20세기가 우려한 만큼 종말론적이고 파괴적인 방향으로 흐르진 않았다.
방대한 네트워크는 우리 삶에 숨쉬듯 스며들어 각종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8시간 걸리던 수속이 30분 만에 끝나고, 먼 바다 너머 소식이 동시간에 전달되며 일일이 계산해야 할 잡무들이 클릭 하나로 끝내는 편의성의 시대다.
그러나 편의를 긍정한 나머지 이 전산 구조의 취약성을 돌아볼 여력조차 없었던 것은 아닐까.
사이버펑크에서 묘사되는 초국적·초거대기업은 '거악'이었다. 그래서 20세기는 기술 문명이 극도로 발전하는데에 우려하고 조심스러웠다. 부정적인 인식은 다가올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면역 반응을 제공했다.
21세기가 다가올 수록 닷컴버블이 꺼지고 사이버펑크도 사그라들었다. 면역력이 떨어진 틈을 타 컴퓨터 기술은 은밀하고 깊게 우리 삶에 녹아내렸다. 순식간에 다가온 AI의 시대는 거부할 시간도 없이 우리 삶을 바꿔놓았고 기술을 긍정하게 만들었다.
단극적으로 팽창하는 기술 긍정 시대에 사이버 펑크는 새롭게 다가왔다. 저항하는 운동(Punk)으로서가 아니라 물질적 현상인 '펑크'(Puncture)로서 튀어나왔다. 전세계에서 터진 이 결함은 분명 취약한 구조에 대한 알람 격일테다.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사건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2022년 10월 15일에 일어난 사건으로 벌써 2년 가까이 지났다. 당시 약 하루간 통신을 비롯한 결제시스템 등이 마비가 됐다. "전국이 멈췄다"며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이후 카카오는 여전히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불편함이 있었던 것도 모른채 말이다.
앞으로 시대는 더 발전할 것이다. IT 기술은 편의성을 넘어 우리 생존에 깊게 관여하게 될 것이다. 고도로 발전한 체계에서 지금과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면 아찔하겠다.
혹시 도래할 인류종의 위협을 상상해 본다면, 지금 있는 '펑크'들은 정말로 고마운 백신이지 않을까.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48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