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이야기
제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소형 바이럴 대행사에 다닙니다. 가족이 운영하는 아주 가'족'같은 대행사죠. 아쉽게도 그 친구는 가족이 아닙니다. 그래도 의외로 적성에 맞았는지 몇 년간 다니는 그 친구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주로 콘텐츠 바꿔치기를 담당했습니다. 그게 뭐냐구요?
많이들 당하셨는데, 인기 있는 방송 콘텐츠나 재미있는 짤방이 있어 자신의 피드에 공유해놓거나 친구를 태그해놓으면, 어느 새 엄한 콘텐츠가 되어 있는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엄한 콘텐츠가 엄격한 부모님에 대한 콘텐츠는 아닐 것이고, 성인용품 선전 쯤 되면 친구와의 절교는 우습습니다. 어느 새 본인 피드가 도박, 사다리, 토토, 19금 콘텐츠로 뒤덮이는 것도 예사죠. 이른바 파워페이지 등에서 자주 했던 작업들입니다. 콘텐츠를 올려 놓고 나중에 영상을 갈아 끼우는 것이죠. 이미지와 영상이 페이스북에 같이 올라갈 수 있었을 때에는 더 심했습니다. 잘 정리된 미친 콘텐츠가 내 피드에 올라와 있는 거죠.
이런 방식도 있습니다. 포스팅 된 걸 보니, 저작권 이슈는 당연히 있겠지만, 평범한 재미있는 콘텐츠입니다. 그런데 첫 댓글에 누군가가(페이지 주인이 아닌) 19금 콘텐츠나 도박, 사다리 등을 당당히 올려 놓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댓글이 처음에 걸려 있죠. 페이지 주인이 답댓글을 남겨 놓았기 때문입니다. 답댓글도 다양한 유형을 보입니다.
"와, 이런 건 어디서 구했어. 바로 봐야겠다" 같은 적극 찬동파부터, "이런 거 댓글 달지 마라, 죽는다" 같은 점잖은 훈계형까지. 내용이 어떻듯, 해당 게시물에서 유일하게 페이지 소유자가 댓글을 달았으므로, 제일 첫 댓글로 고객들에게 해당 제품을 충실히 홍보합니다.
동영상을 모아 보는 페이스북 와치 탭이 신설되고 나서, 여기는 완전 혼돈의 카오스입니다. 각종 저작권 걸려 있을 다종 다양한 영상들과, 유튜브에서 마구 다운로드받아 재업로드하는 콘텐츠들, 자극적인 BJ의 콘텐츠들이 무분별하게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이야기' 등속의 이름의 페이지들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또 그걸 모아서 보여주고요. 플랫폼의 숙명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가끔 인류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덕분에 페이스북을 활용하고 있지만 페이스북이 망하길 바랄 때가 많습니다. 그 어떤 해시태그를 넣어도 다이어트 게시물이 쏟아지는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유럽일까요? 지난 3월, EU에서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마치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왕처럼 뒤로 빠져 있던 플랫폼 제공자에게 저작권 침해의 책임을 물리려 합니다.
페이스북도 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뉴스피드에 뜨는 불쾌한 경험을 줄이기 위해, 특정한 콘텐츠가 자신의 뉴스피드에 뜨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해 준다고 합니다. 제가 봤던 불쾌한 콘텐츠는 사실 제가 했던 불쾌한 클릭이나 불쾌한 친구를 사귀었기 때문에 노출되었다는 건데, 그건 또 그것대로 기분이 썩 좋지는 않겠네요.
사실 콘텐츠 세상에 사기와 기만이 심해서 이 세계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죠. 세상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콘텐츠이듯, 콘텐츠를 운영하는 것도 오롯이 사회의 모습을 닮습니다. 저렇게 운영하고 계신 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면, 딱히 어뷰징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설사 어뷰징이라 하더라도 세상의 거악巨惡에 비하면 사소한 나쁜 짓이라 생각하는 것 같더라구요. 하지만, 내가 열심히 일하는 결과가 이 세상을 더 나쁘게 만들고 있다면, 차라리 돈이 더 잘 벌리는 마약 딜러 같은 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어떻게 하면 더 잘 팔리는 콘텐츠를 만들면서, 동시에 이 사회를 더 낫게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