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이야기
액션캠 고프로를 아시나요? 아는 사람만 알던 카메라에서, 정글의 법칙에서 머리에 쓰고 나오는 바람에 누구나 '정법 카메라'라고 알려지기까지, 고프로는 최근 유행하는 '모노프로덕트'중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 한 가지의 제품만으로도 고프로는 소니와 비슷한 수준의 시가총액을 달성할 '뻔' 했습니다. 2018년 11월, 안식월 기간 방문한 뉴욕의 중심가, 뉴욕타임즈 건물 옆 가장 큰 광고판에는 새로 나온 고프로 7 광고가 엄청나게 크게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했죠. '이제 고프로도 끝나가는구나'. 신제품에 대한 엄청난 부스팅과 그에 따른 실적 개선이 필요할 테니 저런 고가의 거대한 광고를 붙였을 거란 추론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고프로는 추락 중입니다.
사실 고프로가 한창 뜰 때 저는 이 영광이 오래 가지는 못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고프로가 공식 채널과 광고 영상을 통해 그려내는 삶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고프로는 유튜브에서 채널 운영을 하는 브랜드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 브랜드입니다. 워낙 좋은 소스를 알아서 찍어주는 세계의 사람들이 있고, 또 다른 카메라와는 다르게 고프로는 고프로로 찍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약간의 트렌드이기도 했죠. 유튜브의 공식 영상 속 사람들처럼, 우리 중 어떤 이는 서핑 보드와 함께 파도를 가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마운틴 바이크로 다운힐을 강냉이 털리지 않고 내려올 수도 있을 테지요. 하지만 고프로의 공식 영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소에서 모든 방식으로 익스트림한 사람들을 줄창 보여줬습니다. 세상에, 그런 삶을 한 생에서 모두 즐기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있기야 하겠죠. 하지만 분명 많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방식의 접근은 고프로 2까지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3까지도 놀라웠습니다. 그리고는 그 놀라움은 그 이후에 빠르게 없어졌습니다.
고프로의 실패를 다룬 많은 글들은 대부분 하드웨어적, 그리고 기술적 접근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작은 액션캠이 60만원 가까이 팔아도 나오자마자 매진 행렬을 이뤘던 과거는 가고, 강력한 경쟁자인 소니가 액션캠 시장에 등장했습니다. 중국에서는 10만원 이하의 가격을 가진, 그리고 70% 정도의 성능을 가진 액션캠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확장을 하려고 만들어 낸 고프로 드론은 종종 추락을 해서 명성에 먹칠만 하기도 했죠. 하지만 저는 경험의 관점에서 고프로 붐을 관찰하고, 그 붐이 꺼져가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대단한 것들을 만들려면 대단한 경험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높은 산에 오르거나, 대단한 풍경을 보거나, 엄청나게 희소한 경험을 하는 것들이 그것들이죠. 확실히 이과수 폭포나 마터호른 봉은 장엄하기는 합니다. 보면 놀랍고도 짜릿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단한 것들을 만드는 데 사실 대단한 경험은 필수적인 조건은 아닙니다. 고프로와 우리 사이는 그렇게 멀어졌습니다. 대단한 경험을 하는 분께 적합해 보이니, 평범한 고객 중 한 명인 저는 사라져 드리겠다는 거죠.
오히려 오랫동안 봐온 정말 멋진 것들은 일상의 지독하도록 평범한 어떤 것들을 비범하게 포착해내는데서 나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장기하와 얼굴들' 그리고 '술탄 오브 더 디스코'라는 그룹입니다. 생활 밀착적인 가사로 유명한 팀들이죠. (후자는 심지어 멤버 한 분이 제가 재직중인 회사에 다니기도 하셨습니다) 그들이 몇 년간 만들어오는 음악 속 이야기들은 독특하거나 괴상한 이야기들이 아닙니다. 지나가다 본 네온 불빛같은 사랑 이야기나, 배어버린 냄새마냥 빠지지 않는 기억이나, 그리고 너무 힘든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우주 같은 도피처로 떠나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을 노래합니다. 그런 건 우리가 매주 월요일마다, 저녁 노을을 볼 때마다, 밥 먹을 때마다 느끼고 떠오르는 어떤 것들이기도 합니다. 그런 '어떤' 것들이 손에, 귀에 잡히도록 조형하는 능력과 시간과 노력이 제가 말했던 아티스트들과 우리를 가르는 무엇일 것입니다. 그 동안 느꼈던 몇 년간의 아주 평범했던 감정과 경험이 너무나도 아까워서 자주 아쉽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만들어 낼 콘텐츠는 길게는 며칠, 짧게는 5분의 소비에 그칠 뿐입니다. 보도적 가치가 있는 보도가 아니면 광고일 것이고, 사회적 의미가 없는 그런 광고가 생명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방법이 감정적 보상을 기제로 한 반복 재생, 즉 바이럴이라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속 소비되는, 그리고 그 이유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광고들은 대부분 우리가 일상에 맞닥뜨리는 그런 평범하기 그지 없어서 정말 그지같은(?) 상황들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출퇴근한 우리의 모습이 어제와 너무 같아서 관찰할 포인트가 없었나요? 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만, 또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매일 같은 나의 모습을 반영한, 그리고 기획한 내가 공감할만한 콘텐츠를 기획해보는 건 어떨가요? 내가 만든 콘텐츠가 내 웬수가 아니라, 볼 수록 재미있는, 그러면서도 정서적으로라도 쓸모가 있는 것이라면 오늘 우리가 수도 없이 받았던 스트레스가 마냥 헛 짓은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