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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복다복 Dec 16. 2021

아이를 키우듯 나를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 첫째 

                                                                                                                                                                                                                                                                                                                                                                                                                                                                                                                     

아홉살 첫째는 오늘도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빠져 있다. 어쩌다 도서관에서 읽은 만화책에 푹 빠졌다. 몇 권을 사줬더니 주구장창 그것만 읽는다. 만화를 읽고는 혼자서 중얼 중얼 신들의 이름을 외우며 공상 속에서 논다. 다 읽은 책을 또 읽고 읽고. 첫째는 학원도 많이 다니지 않는다. 그 많은 시간들을 그리스로마 신화 생각만 하고 있다. 



이제 첫째는 아홉살.  그림책을 읽다가  조금 글밥이 있는 책으로 넘어가야할 시기이다. 첫째에게 여러 가지 책을 권했다. 그 또래 아이들이 꼭 읽어야할 책들.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들. 첫째는 모두 다 싫다고 한다. 잠깐 읽기도 하고 읽어 주면  듣고 있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그리스로마신화>이다. 재미있는 것은 오로지 만화 <그리스 로마신화> 뿐이다. 그럼 만화책인가 싶어 괜찮다고 하는 만화책들을 구해서 권해 보았다. 하지만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뿐이다. 



답답하다. 이 친구는 왜 <그리스 로마 신화>만 읽고 있는 것인가. 왜 다른 책에는 관심이 없을까. 나는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부터 그림책을 열심히 읽어 주었다. 도서관도 자주 데리고 다녔다. 그래서 아이가 한글도 빨리 깨치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클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아이는 한글도 매우 늦게 깨쳤다. 게다가 한글을 나에게서 배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뒤 쳐진채, 겨우 받침없는 글자만 읽을 수 있는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가 글을 깨치고 난 다음에도 아이에게 책 읽어 주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책을 읽어 주면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이제 곧 좋아하는 책들을 쌓아놓고 책에 푹 빠질 날들이 있겠지.  독서가 아이들 공부에 큰 영향을 있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아이는 내 기대와 다르게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만 좋아한다. 내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었던 그 수 없이 많은 시간들은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게다가 나는 아이가 보고 있는 그 책이 재미가 없다. 만화 그림체도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내용도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아이가 읽고 또 읽고 푹 빠져 있는 그걸 이해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와 닿지 않는다. 나는 싫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이는 거기에 빠져 있다. 내가 그다지 재미있어 하지 않는 그 세계에 푹 빠져 있다. 내가 기대한데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데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 하는 것을 찾아 가버렸다. 아쉽고 쓸쓸하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아이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워 하는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없이 책만 열심히 읽었는데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는 일 또한 우리에게 생기지 않을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런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 이유는 엄마가 고등학교때 미술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여러 번 하였다. 고등학교때 음악은 너무 좋아서 우여곡절끝에 음악 선생님께 피아노를 배웠다는 이야기. 하지만 미술은 너무 싫어서 미술 선생님도 싫어 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엄마는 그림 그리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엄마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그 사실은 어린 나를 얼어붙게 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얼어 붙은 그 마음 속에는 아마 외로움과 쓸쓸함이 숨어있었겠지. 



아이의 그리스로마 신화 사랑은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환영받는 분위기를 아닌 것 같았다. 아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너무 빠져 있어 시도때도 없이 신들의 이름을 읊는 모양이였다.  친한 친구들이 '또 그리스 로마 신화냐?'며 핀잔을 주는 것 같았다. 



마음을 내어 아이가 읽은 만화책을 3권까지 읽었다. 그리고 "1권에서 제우스가 마지막에 아버지를 그냥 보내 준 것이 인상 깊었어,"라고 소감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몇 시간 뒤 나의 말을 그대로 따라해."나는 2권에서 제우스와 하데스, 포세이돈이 제비뽑기를 해서 하늘, 지하, 바다 중에서 어디를 다스릴지 정한 게 인상깊었어."라고 말한다. 아, 육아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만화책도 읽어 내야 하는 것까지 포함이구나. 그 후로 나는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너무 인상 깊다는 말을 해주고 아이의 말을 몇 마디 더 받아 주었다. 



그렇겠지. 이제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그 노래를 같이 들어야 하겠지.  내가 읽었으면 하는 책 목록을 포기하는 대신에 아이는 스스로 원하는 책을 읽을것이고, 내가 원하는 어떤 것 대신에 아이가 좋아하고 즐거하는 것을 하겠지.  그리스 로마 신화 말고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이 있겠구나.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나를 없애는 일이구나. 내 기대를 버리고 내 욕심을 버리고 내가 사랑하는 아이가 좋아하는 그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까지 그렇게 까지 해야 사람을 키우는 것이구나. 나를 버리고 아이에게 다가가야지. 그렇게 아이에게 다가가다보면 아이를 키우듯 나를 키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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