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금] _ 박작박작한 오프닝 & 클로징
안녕하세요, 박작박작한 아침을 여는 박작입니다.
어느 날 ‘멀찍이’라는 단어가 귀에 콕 박혔습니다. 사이가 꽤 떨어지게, 라는 뜻인데 아침마다 듣는 강연에서 이걸 재미나게 표현했더라고요. ‘멀찍이’는 여차하면 도망갈 수 있는 거리래요^^;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멀찍이 떨어져 있다는 건 쉽게 붙잡힐 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니니까요.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는 건 상대를 완전히 믿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정말 언제든 그 자리를 떠나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멀찍이’라는 말에는 어딘가 조심스러운 뉘앙스가 담겨 있는 것 같지요?
그런데 꼭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강의실에서도 앞자리에 앉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뒷자리나 눈에 띄지 않는 자리를 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잖아요. 딴짓하려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런 사람에게 ‘멀찍이’는 도망이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위한 자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점묘화를 떠올려 보세요. 가까이에서 보면 그저 어지러운 점들의 나열일 뿐이지만,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면 하나의 풍경이 또렷하게 보이잖아요. 어쩌면 우리 인생의 시련도 그렇지 않을까요. 한가운데 있을 때는 혼란스럽기만 하지만, 시간이 지나 멀찍이서 바라보면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난로와의 거리도 그렇습니다. 너무 가까우면 델 수 있고, 너무 멀면 춥지요. 그러니 ‘멀찍이’는 서로의 온기를 적당히 나눌 수 있는, 예의 바르고 따뜻한 거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연자의 말처럼 “언제든 도망갈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서 있는 ‘멀찍이’가, 역설적으로 지금 이 자리에 더 편안하게 머물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사직서를 마음속에 넣고 다니는 직장인이 오히려 일을 더 담담하게 해내는 것처럼요.
오늘 하루, 너무 바짝 붙어 있어서 숨이 막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잠시 한 걸음 물러서 보세요. 관계도, 일도, 나 자신도 멀찍이 바라볼 때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그 거리는 도망이 아니라, 더 오래 머물기 위한 지혜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박작박작한 하루 보내세요! 주말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