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불안한 채로 잠드는 용기

203화 [목] _ 박작박작한 오프닝 & 클로징

by 박선향

안녕하세요, 박작박작한 아침을 여는 박작입니다.


아침 방송 꼭지 작가 시절, 저를 가장 날카롭게 만드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아이템 회의 시간이었죠. 전날 밤 아이템을 찾고 또 찾다가 지쳐서 ‘이만하면 되겠지?’ 하고 쓰러지듯 잠이 듭니다. 그리고 다음 날 눈을 뜨는 순간, 어제의 나를 당장이라도 잡아먹고 싶은 후회가 밀려옵니다.


회의실로 향하는 길, 불안함은 극도에 이릅니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퀭한 눈과 굳은 입술을 마주할 때면 ‘왜 하나만 더 찾아보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이 파도처럼 밀려오죠. 그런 날은 신기하게도 보고하는 목소리부터 힘이 빠집니다. 나조차 설득하지 못한 아이템으로 누구를 설득하겠냐는 무력감이 이미 저를 집어삼켰기 때문이었겠죠.


불안은 흔히 준비가 덜 되어 생기는 결핍의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결핍을 메우려 기어코 밤을 지새우곤 합니다. 눈을 붙이는 순간 패배하는 것 같아, 억지로 잠을 몰아내며 ‘나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라는 가짜 뿌듯함을 챙기는 겁니다.


하지만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은 말합니다. 잠을 아껴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보다, 잠을 자야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요. 잠이 부족하면 이성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이 제 기능을 못 하고 감정 조절도 어려워집니다. 결국 불안을 없애려고 선택한 밤샘이, 역설적으로 나를 가장 불안하고 무력한 상태로 몰아넣는 셈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뜬눈으로 버틴 날, 정작 회의실에서 제가 휘두른 건 날카로운 기획이 아니라 흐릿한 정신과 꼬이는 말실수뿐이었습니다. 밤을 새워 ‘양’은 채웠을지 몰라도, 정작 그 양을 승리로 바꿀 ‘나’라는 엔진이 꺼져버린 것이죠.


어쩌면 기를 쓰고 잠들지 않으려는 오기보다, 불안한 채로 눈을 감는 것이 더 큰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완벽하지 않은 오늘의 나를 인정하고, 내일의 나를 믿으며 휴식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단하고 영리한 준비일 테니까요.


오늘 밤, 혹시 불안이 당신의 잠을 방해하려 하나요?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말해주세요. 내일을 위해 눈을 감는 지금의 선택이 가장 용감한 전략이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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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박작박작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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