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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ef Aug 23. 2019

홍어

 바다를 닮아 넓고 고요한 홍어는 맛이 평평했다. 삭히거나 갖은양념을 듬뿍 올려 찜을 하지 않는 한 홍어의 맛은 묵묵했다.

 아버지는 그런 홍어를 그 무엇보다도 좋아하셨다. 그 시절에는 흑산도 홍어가 성수기였고, 읍내의 어물전마다 홍어를 진열해 놓고 있었다. 벽촌의 농부였던 아버지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진눈깨비가 설설 날릴 무렵부터 읍내에 나가 홍어를 사 오셨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머리며 어깨에 잔뜩 눈을 뒤집어쓴 채 대문 안으로 들어선 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으로 장보따리를 내밀었다. 기름 번진 호떡 봉투와 사과와 신문지에 싼 고깃덩이 아래 홍어는 얌전히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넓적한 종이포대를 풀어내면 눈이 작은 홍어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머니는 우물가에 홍어를 내려놓았다. 칼로 홍어의 등을 긁어냈다. 물고기의 수많은 언어와 같은 비늘이 홍어에게는 없었다. 따라서 긁어지는 것도 없었다. 숨겨놓은 기억과 같은 점액질만 가늘게 흘러내렸다. 나는 작둣물을 끌어올렸다. 어머니는 콸콸 쏟아져 나오는 물에 홍어를 헹구었다. 그런 뒤 홍어를 잘랐다. 

 길쭉길쭉하게 잘린 홍어는 빨랫줄에 걸렸다. 눈바람이 불어오자 홍어는 흔들렸다. 거센 바람을 따라 홍어는 몸을 뒤집기를 바로 놓기를 반복했다. 점점이 박혀 있는 추억들까지 털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홍어는 북풍한설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꾸둑꾸둑하게 말라갔다. 

 얇은 지느러미가 날렵한 처마처럼 고개를 쳐들게 되자 어머니는 홍어를 걷어내 채반에 올려 가마솥에 쪘다. 불땀이 맹렬히 가마솥을 핥아 대자 맑고 가지런한 바다 내음이 풍겨 났다. 홍어가 알맞게 익었다는 신호였다. 잠시 뜸을 들인 후 솥뚜껑을 열었다. 부우연 수증기를 뚫고 홍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두질 잘 된 가죽과 같은 표피와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흰 살이 놀랍도록 새로웠다. 

 첫 번째 찜은 홍어의 자태를 감탄하는 것으로 족했다. 두 번째 불길이 닿아야 홍어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났다. 어머니는 밥상을 차리기 전에, 금방 태운 화릇화릇한 불을 화로에 꾹꾹 눌러 담고 석쇠를 올리고 깍둑 썰기한 홍어를 가지런히 놓았다. 뒷마루에서 차게 식은 홍어는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열기를 받아들였다. 뜨거움에 못 이겨 홍어의 가느다란 연골 뼈가 바르르르 불거질 때, 아버지는 군침을 삼키며 한 점을 집어 올렸다. 양념장에 살짝 찍어 입안에 넣었다.  

 아버지는 연신 맛있다며 석쇠의 가장자리에 있던 녀석들을 비어있는 가운데로 끌어 왔다. 앞뒤로 뒤집어가며 골고루 데웠다. 말갛던 검은 표피가 바스름하게 말라갔다. 아버지는 그것이 또 별미라고 하셨다.      

 비릿한 십 대였던 나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짭조름한 소금 내음도 없고, 달큼하지도 않고, 고소하지도 않았다. 양념장에 묻은 부위만 화사하게 입안을 한 바퀴 돌다 이내 사라져 버렸다. 

 마치 시간의 전언처럼. 삶의 의구심에 대해 알려줄 듯 말 듯하다 휙 지나가버리는 시간처럼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십 대가 다 지나가도록 나는 홍어의 맛을 음미하지 못했다. 우리 집의 중요한 겨울 반찬이었으므로 습관처럼 먹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권유를 이기지 못해서 먹었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겨울이 되자 문득 홍어가 생각났다. 빨랫줄에 걸려 차가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던 홍어가. 뜨거운 수증기에 비틀렸던 몸을 털고 반들반들한 검은 표피로, 손을 대기 아까울 정도로 포실하던 모습으로 변한 홍어가 시간이 갈수록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쌀 두말을 들고 분가한 아버지는 질곡의 시간을 견뎌오셨지만 한 번도 회한의 한숨을 내쉬지 않았다. 어린 자식들 앞에서 땅이 꺼져라 한탄을 하지도 않았고, 그럴 시간에 발뒤꿈치가 닳도록 들판을 돌며 일을 하셨다. 뼈가 녹도록 밤낮으로 일을 해 일가를 이룬 아버지의 즐거움은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가의 유명한 음식이 아니었다. 고량진미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장독에 넣어둔 홍시, 겨울 무 구덩이에서 꺼낸 시원한 무 한 조각, 봄나물 국, 쑥 반 쌀 반인 쑥떡, 무시루떡, 맹칼국수, 여러 나물에 김치를 넣어 끓인 섞음새국, 화롯불에 구운 꽁치, 갈치, 홍어 등 담백한 것을 즐기셨다.

 그중 가장 큰 호사는 홍어였다. 소고기는 포기해도 홍어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삭힌 홍어는 전혀 드시지 않았다. 삼합은 손사래를 치셨고, 홍어탕도 그다지 즐기지 않으셨다. 양념 홍어찜보다도 맨찜홍어를 가장 좋아하셨다.  

 그 어떤 생선보다도 홍어의 맛은 잠잠했다. 정련의 시간 뒤에야 찾아오는 평온과 닮은 홍어는 아버지의 위로였다. 힘들고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에너지원이었고, 인생의 혹한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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