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
진료를 하면서 여러 이유로 약을 복용하는 환자들을 많이 봅니다. 마음만 먹으면 너무 쉽게 약을 구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 때문인지. 아파도 쉬지 못하고 빨리 낫고 출근해야 하는 여유 없는 사회 탓인지는 몰라도 일단 아프면 약을 먹고 나아야 한다는 것이 고정관념인 것 같습니다.
아프면 뒹굴뒹굴 쉬면서 간호도 받고 엄살도 좀 부리면서 몸이 스스로 회복하길 기다릴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말이죠.
일반적으로 병증이 있을 때 그 증상을 없애기 위한 약을 대증약이라고 합니다. 열이 날 때 해열제, 염증이 있을 때 소염제, 통증이 있을 때 진통제, 세균감염이 있을 때 항생제와 같은 것이 대표적인 대증약이죠.
흔히 대증약 하면 양약을 떠올리지만, 한약도 병의 초기나 병세가 급할 때는 증상에 초점을 둔 처방들이 많습니다. 이런 한약도 대증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대증약은 급성 증상과 단기전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증상을 차단하고 시간을 벌어주면 우리 몸이 스스로 건강을 회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병이 만성화되거나 노화와 관련되거나 환자의 몸 상태가 스스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면 대증약은 기대한 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약은 일정 기간 내 병을 낫게 하고 복용을 멈춰야 하는데 계속 복용하거나, 다른 증상이 발생에서 약물이 추가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전쟁으로 치면 초기에 승리하지 못하고 증원군을 요청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그런데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처럼 추가 병력으로도 전황은 개선되지 않고 교착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야흐로 장기전에 접어드는 것입니다.
염증반응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염증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현상입니다. 우리 몸에 해가 되는 바이러스나 세균 등을 제거하는 위해 면역시스템은 적극적으로 염증반응을 이용합니다. 대개는 일시적 염증 반응 이후 정상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이 때 너무 과도한 반응과 이로 인한 통증과 열과 같은 반응을 조절하기 위해 소염진통제 같은 약을 씁니다. 그럼 이 과정이 좀 더 수월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세포의 노화가 진행되면 이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신호가 외부의 감염뿐만 아니라 나를 이루고 있는 세포 안에서도 발생합니다. 외부의 적만 없애면 건강해지던 시절과는 상황이 달라진 겁니다.
하지만 면역시스템은 전과 동일하게 염증반응으로 대응하고, 불편하니까 대증약물을 지원군으로 투입합니다. 이 전략은 과거 많은 전투에서 승리의 영광을 안겨주었으니까요.
그런데 노화나 만성질환으로 손상된 세포에서는 지속적으로 염증을 유발하는 신호들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 신호는 계속 염증반응을 일으켜서 우리 몸은 만성염증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만성질환자나 노인들이 여기 저기 자꾸 아픈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증약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먹으면 좀 낫는 듯 하다가 안 먹으면 다시 아픈 상황이 반복됩니다. 약의 가짓수와 양을 늘려보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또한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장기간 복용하다 보면 약물로 인한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당연히 생활의 질도 저하됩니다.
끝이 보이지 않은 장기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전투가 장기화 되면 전력을 유지하기 위한 보급과 적절한 휴식의 중요성이 높아집니다. 필요한 영양의 섭취와 질 좋은 충분한 수면의 중요성이 커집니다. 내가 살고 난 후에 적을 잡는다는 바둑용어처럼 충분한 전력을 비축한 후에 공격에 나서야 합니다. 드러난 증상을 개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부분을 복구해야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병이 장기화 혹은 만성화 되면 병의 증상을 제거하는 공격법과 기능회복을 돕는 회복하는 방어법을 겸하면서 전투의 부산물인 담음이나 어혈을 제거하는 치료법을 적절하게 섞어서 구사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영양섭취가 부족하거나 상황에 따라 더 필요한 영양이 있다면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보충제를 함께 복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전쟁에서 승리의 기미가 보이면 허물어진 성벽을 다시 튼튼하게 쌓아서 앞으로 내부에서 발생하는 적을 줄이는데 힘써야 합니다. 식사와 수면 그리고 적절한 신체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한의학의 양생법이나 건강수명의 연장을 위한 처방들이 도움이 됩니다. 안에서 발생하는 산화적 스트레스라는 적을 줄이는 겁니다.
병을 잘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 자체만이 아니라 그 병이 발생한 사람이란 환경 또한 함께 살펴야 합니다. 이 상황이 단기전으로 끝낼 상황인가 아니면 장기전의 전략이 필요한 상황인가를 잘 판단해야 합니다. 총력전을 벌여야 하는 포스트시즌의 전략을 정규시즌에 쓰면 초반에는 잘 나가는 듯 싶지만, 그 순간의 재미에 빠지면 결국에는 승률이 떨어지고 팀은 부상병동이 되는 것처럼, 단기전의 전략은 장기전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예상보다 오래 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좋은 건강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단기 전략과 방어적인 장기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해야 합니다.
병의 치료와 건강관리에도 지혜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