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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Aug 03. 2023

홀로움; 외로움이 환해지는 볕뉘의 시간

휴가 마지막 날이다. 사흘 동안 물놀이와 더위와 인파에 지쳐  오늘은 호텔 체크 아웃 시간까지 푹 쉬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세수도 하지 않고 살금살금 밖으로 나왔다.


양말 찾는 부스럭거림에도 잠귀가 밝은 아이가 눈을 뜰까 봐 맨발로 가방만 챙겨 나왔다. 아침 7시. 나에겐 이른 시간이지만 이미 도시의 사람들의 아침은 팔딱거리고 있다.


아침이라 제법 선선하다고 느꼈는데 맞은편에서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는 사람이 걸어온다. 바쁘게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 속에서 난 어디로 가야 하나 헛웃음이 나온다. 딱히 갈 곳도 없으면서 이 아침에 왜 나온 거지?


휴대폰으로 문을 연 카페를 찾아본다. 그동안 멀어서 가보지 못했던 리저브 매장이 근처에 있어 그곳으로 간다. 텅 빈 카페에서 멍이나 때려보리라. 정신을 차리게 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어느새 혼자 온 사람들이 곳곳을 채운다.


내가 오기 전부터 유니폼을 입은 채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공부를 하던 그녀는 이제 출근했나 보다. 머리에 헤어롤을 한 채 소파에 기대어 책을 읽는 그녀는 참 부럽다. 나도 뭔가를 읽고 싶다. 에이드에 탄산수까지 주문한 톡톡 튀는 상큼한 그녀는 핑크색 가방에서 뭔가를 꺼낸다. 곳곳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속에 나도 혼자 있기에 뭔가 이 장면에 어울리는 오브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황동규시인이 말했던 외로움이 환해지는 시간인 홀로움이 이런 것 같다. 스스로 마련한 혼자만의 시간. 홀가분하고 온전히 혼자임을 만끽하는 시간이라서 내면의 빛으로 외로움이 환해지는 시간!


이 시간은 일찍 챙겨 나온 사람들의 홀로움의 시간인 것 같다. 바쁘고 외롭고 쓸쓸하고 소진되는 하루 중 가까스로 스스로의 빛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선물 같은 틈새의 시간이다. 볕뉘의 시간.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인 볕뉘의 시간 같은 홀로움의 시간이  필요했음을 그 잠시의 햇볕 아래 서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특별함이 없이 그저 혼자임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볕뉘의 시간을 너에게》 마르틴 스마타나 저. 웅진주니어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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