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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Apr 26. 2022

샤일록과 포셔의 재발견

<베니스의 상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 최종철 옮김, 민음사(2016)

 


  셰익스피어의 희곡 가운데 비교적 덜 자극적인 내용이라 그런지 큰 임팩트가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전문을 제대로 된 번역으로 읽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를 위해서 동화처럼 쓰인 베니스의 상인을 그저 줄거리 파악을 위해서 읽은 것과 희곡의 형태로 읽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셰익스피어를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더불어 그동안 안다고 여겼던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도 꼭 제대로 된 번역으로 읽어 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시적이며 아름다운 언어를 극본의 운율을 살려 읽었을 때 제대로 맛볼 수 있다는 것!


  평면적으로 여겨졌던 샤일록이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베니스의 유대인]으로 번안되어 공연되었을 정도로 중요했던 '유대인' '샤일록'의 재발견입니다. 샤일록이라는 인물이 그 품성의 잔인함을 보여주기만 하는 인물이 아니라 종교, 역사, 인종과 같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포셔라는 인물도 그저 바사니오의 구혼 대상이며, 남장을 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니라 나머지 등장인물들과 대비를 이루는 가장 '조화로운 품성'의 소유자라는 해석을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뻤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갈등을 조화롭게 조정하는 신과 같은 존재처럼 느껴지는 포셔는 빛이 나는 그 순간에도 자신이 신이 아니며 다시 바사니오에게 복종하는 아내의 위치로 돌아가야 함을, 자신의 한계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부분도 기억에 남습니다. 


  최종철 교수의 작품 해석을 통해 고전은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이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에 열광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문학전집을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작품 해석 부분이라도 다시 읽어보아야겠습니다. 




17쪽

난 학창 시절에 화살 하나 잃게 되면

그것을 찾으려고 좀 더 잘 살펴보며

꼭 같은 방향으로 꼭 같이 날아가는

한 대를 더 쏘았고, 둘 다 잃을 모험으로

자주 둘 다 찾았었지. 이 어릴 적 경험 얘긴

다음 말이 순수 그 자체라서 하는 걸세.

자네에게 빚이 큰데 난 고집 센 청년처럼

그 빚을 낭비했어. 하지만 부탁인데

자네가 첫 번 것과 꼭 같은 방향으로 

한 대 더 쏴 준다면 내가 그 과녁을

지켜볼 테니까 틀림없이 두 대 다 찾거나

자네가 위험에 맡겼던 둘째 것을 되찾아와

첫 번 것에 감사하는 채무자로 남을 걸세.  -바사니오


30쪽

주목하게 바사니오, 

악마도 성경을 제 목적에 쓸 수 있네.

사악한 영혼이 성스러운 증거를 대는 건

웃는 얼굴 보이는 악한과 같은 건데

보기 좋은 사과가 그 속은 썩은 거지. 

오, 허위의 겉모습은 얼마나 훌륭한가!   -안토니오


69쪽

이유가 뭐냐고요? 내가 유대인이란 겁니다. 유대인은 눈이 없어요? 유대인은 손도 기관도 신체도 감각도 감정도 정열도 없냐고요? 기독교인과 같은 음식 먹고 같이 덥고 같이 춥지 않느냐고요? 당신들이 우리를 찌르면 피 안 나요? 간지럼을 태우면 안 웃어요? 독약을 먹이면 안 죽어요? 그런데 당신들이 우리에게 잘못하면 우리가 복수를 안 해요? 우리가 나머지 부분에서 당신들과 같다면 그 점도 닮을 거요. 유대인이 기독교인에게 잘못하면 그는 겸손하게 뭘 하지요? 복수하죠. 기독교인을 본받아 인내하며 인내하며 뭘 해야 하지요? 그야, 복수해야죠. 당신들이 가르쳐 준 비열한 짓을 난 실행할 겁니다. 그리고 어렵긴 하겠지만 교육받은 것보다 더 잘할 겁니다.   -샤일록


105쪽

자비의 본질은 강요할 수 없는 거요. 

그것은 하늘에서 땅 위로 내리는

부드러운 비와 같고 이중의 축복인데

베푸는 사람과 받는 이의 축복이며

최강자의 최강점으로 옥좌 위의 왕에게

왕관보다 더 잘 어울린답니다. 

왕의 홀은 속세의 권력을 드러내 주는데

그것의 본질은 경외와 위엄이니

왕에 대한 공포는 거기서 생기지요.

하지만 자비는 왕홀의 통치권 위에 있고

그 옥좌는 왕들의 마음속에 있으며

신의 속성 가운데 하니지요. 그래서

지상의 권력은 자비로 정의를 조절할 때

신권과 가장 비슷하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탄원은 정의지만 정의를 좇는 동안

우리들 누구도 구원을 못 받는단 사실을 

고려해 보시오. 우린 정말 자비를 기원하고

이 기원은 우리 모두 자비를 행하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당신이 탄원하는 정의를

완화해 보려고 말이 많아졌소만

그걸 따르겠다면 엄한 이 베니스 법정은

저 상인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려야만 합니다. 

-포셔


124쪽

큰 영광은 그처럼 작은 거의 빛을 죽여.

대리인이 왕처럼 밝게 빛을 내다가

진짜 왕이 나타나면 그자의 화려함은

내륙의 시냇물이 대양에서 없어지듯

바닥이 난단다.

맥락 없이 좋은 건 아무것도 없나 봐.

낮보다는 소리가 훨씬 곱게 들리는군. 

-포셔



<최종철의 작품 해설 요약>

유대인은 오랫동안 영국에서, 베니스에서, 그리고 유럽 사회 전역에서 오해와 편견과 그로 인한 핍박의 대상이었다. 이는 주로 유대인들이 기독교권 국가에 살면서 유대교를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하나의 민족으로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게 했다는 기독교인들의 믿음, 정성적인 생업에 종사할 수 없게 된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으로 살아가면서 경제적, 도덕적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는 시실, 하나의 국가를 이루어 살지 못하고 소수민족으로 떠돌아다니며 인종적으로 나머지 유럽인들과 구별되었다는 점 등에서 기인한다.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구체적으로 쓰지는 않았지만 유대인을 강제로 집단 거주시킨 게토(ghetto)의 출발점이 되는 베니스도 이런 반유대주의에서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샤일록은 이렇게 처음부터 논란거리를 안고 등장한 인물이지만 그를 절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사건은 20세기에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에 의해 저질러진 600만 유대인 대학살이었다. 그 결과 데이비드 네이선과 같은 극비평가는 한때 "이 홀로코스트의 그림자가 셰익스피어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우리가 체념하고 받아들이기 불가능할 정도로 크기 때문에 [베니스의 상인]은 더 이상 공연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했다. 그러므로 샤일록을 반유대주의라는 프리즘의 왜곡 없이 해석한다는 것은 적어도 서구인의 관점으로는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유대주의의 역사가 없는 한국의 관객들은 좀 다른 관점에서 샤일록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은 종교와 인종과 직업에 의해 극도로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은 사람이지만 그로 인한 미움과 복수심을 살인으로 만족시키려는 사람이다. 그래서 전자는 우리의 동정심을 후자는 우리의 혐오감을 낳는다. 그런데 샤일록이라는 인물의 묘한 점은 그리고 두고두고 논란을 일으키는 점은 이 두 상충하는 감정이 거의 균등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를 안전하게 미워할 수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이중의 감정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사랑과 시험을 주제로 하는 이 작품은 세 가지 다른 그러나 연관된 계약을 통하여 그것을 구현하고 있다. 그 첫째는 포셔의 아버지가 유언으로 딸에게 남긴 사위 선택 계약이다. 둘째는 이 포셔에게 구애할 바사니오의 구혼 자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안토니오가 샤일록과 맺게 되는 인육계약이다. 셋째는 포셔가 바사니오를 남편으로 받이들이면서 맺게 되는 반지 계약이다. 


이 세 가지 계약은 모두 커다란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성사에는 대단한 모험이 필요하다. 포셔에게 아버지의 사위 선택 방식은 맞는 궤를 골라낸 사람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남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생일대의 모험이고, 안토니오에게 삼천 다카트는 목숨 값이며, 이를 기반으로 바사니오가 얻은 포셔의 사랑과 그것을 상징하는 반지 또한 부부 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물건이다. 


이 세 계약은 모두 물질을 매개로 하지만 궁극적으로 감정적인 만족을 목적으로 한다. 포셔의 아버지는 금, 은, 납이라는 상징적인 금속을 통하여 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위를 고르려 했고, 안토니오는 자신의 살을 담보로 포셔에게 가려는 바사니오의 우정을 자신에게 붙잡아 두려 하고, 샤일록은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안토니오에 대한 해묵은 원한을 갚아 보려고 한다. 이렇게 세 계약의 당사자들은 모두 금전적인 아니라 감정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세 가지 계약의 이행 과정에서 안토니오와 샤일록은 목적으로 이루지 못하고, 바사니오는 안토니오와의 우정을 포셔와의 관계 바깥에 두게 되었으며, 원했던 모든 것을 온전히 다 얻은 사람은 포셔 한 사람뿐이다. 


포셔의 판결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의 법리적인 논쟁이 아니라 샤일록의 극단적인 미움이 초래하는 경직성과 그로 인한 허점이며 그것을 간파할 수 있는 포셔의 혜안과, 사랑과 미움의 양극을 인정하면서 거기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그녀의 절제력이다. 

베니스의 법정에서 포셔가 해결한 문제는 극도의 미움뿐만이 아니다. 그녀가 죽을 수도 있었던 안토니오의 목숨을 구했기 때문에 그가 바사니오에게 품고 있는 지나친 우정의 생명 또한 포션의 손안에 들어왔다. 보이면서 보이지 않게 사건의 추이와 본질을 파악하고 조종하는 포셔에게 샤일록, 안토니오, 바사니오는 맞수가 되지 못하고 그녀가 설정한 각자의 위치를 지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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