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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Apr 25. 2022

폭력과 상상력에 관하여.

<속죄> 이언 매큐언 저/ 한정아 옮김. 문학동네(2017)

30쪽

그래.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브리오니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 순간 자기파멸적 동의가 주는 가학적인 흥분이 온몸으로 퍼지고, 이윽고 그것이 몸 바깥으로 빠져나와 풍선처럼 부풀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31쪽

그러나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과 맞서는 일은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는 6월 초에 수영장 물속으로 뛰어드는 일과 같았다. 이것저것 재볼 필요 없이 행동으로 옮기면 되는 일이었다. 그녀가 의자에서 몸을 빼내 일어서서 사촌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동안 심장은 쿵 소리를 내며 내려앉는 것 같았고 숨이 가빠졌다. 


  브리오니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고갯짓으로 주인공 역할을 롤라에게 맡기겠다는 자기파멸적인 동의를 합니다. 그 동의를 표시했던 사촌에게 다시 맞서기로 다짐하는 장면입니다. 마치 온탕과 냉탕을 오가듯이 흥분으로 뜨거워진 몸을 다시 차가운 수영장 물속으로 내던지는 '맞섬'으로 태세를 전환하고 바로 주도권을 가져옵니다. 이 작은 사건과 관계 속에서도 '폭력'은 표현됩니다. 대립과 갈등 속에서 타인을 상상하지 못할 때 그 말과 행동은 쉽게 폭력을 변질됩니다.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상대방이 '폭력'으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폭력이 되는 것 아닐까요?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고 자신의 행동을 잠시 지연하는 불필요해 보이는 지난한 과정이 '비폭력 대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67쪽

단지 타인의 마음도 똑같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애써 기억하면서 자신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살아 숨 쉬는 각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을 부른다. 그리고 오직 소설 속에서만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모든 마음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것이 소설이 지녀야 할 유일한 교훈이다. 


393-394쪽

그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는 작품의 구도와 기하학적 균형감각이 뛰어나고, 현대적인 감각이 잘 반영된 불확실성과 같은 요소 때문이었다. 명확한 답이 내려지던 시대는 끝났다. 더불어 등장인물과 줄거리의 시대도 끝났다. 일기장에 인물 묘사를 하곤 했지만, 그녀는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중요성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 등장인물은 19세기 소설에나 나오는 낡은 장치였다. 등장인물이라는 개념은 현대 심리학이 밝혀낸 인간의 실수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줄거리라는 것도 더 이상 쓸모없었다. 그것은 낡아빠진 부품이 달린 녹슨 기계와 같았다. 현대의 작곡가가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쓸 수 없듯이 현대의 소설가는 등장인물의 줄거리를 토대로 하는 소설을 쓸 수 없다. 지금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생각과 인식 그리고 마음이었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물과 같은 의식의 흐름, 그 강물의 흐름과 갑자기 한데 모여 잔잔한 강에 동요를 일으키는 지류, 그리고 강물의 방향을 바꾸게 될 예기치 않은 장애들. 이런 것들을 어떻게 잘 표현하는가가 그녀의 유일한 관심사이자 바람이었다. 



519쪽

그러나 그들은 생각만 하지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편집자들은 책을 출판하고 싶으면 이름을 바꾸거나, 내용을 바꾸거나, 아니면 숨길 것은 숨기라고 했다. 상상이라는 연막을 치라는 것이다! 소설가가 무엇 때문에 소설가이겠는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만큼 써라, 좋다, 그리고 법의 손길을 벗어난 곳에 자리를 잡아라. 그러나 어느 누구도 판결이 언도되기 전에는 자신이 과연 법의 손길에서 얼마만큼 벗어난 있는지, 안전한지 알 수 없다. 안전하려면 모호하게, 당사자를 자극하지 않게 글을 써야 한다. 



521쪽

지난 59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했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521쪽

연인들을 살려두고 마지막에 다시 만나게 한 것은 나약함이나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베푼 친절이었고, 망각과 절망에 맞서는 투쟁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그들에게 행복을 주었지만, 그들이 나를 용서하게 할 만큼 이기적이지는 않다. 아직 그만큼은 아니다. 내 생일 축하 파티에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려낸 힘이 있다면...... 아직까지 살아 있는 로비와 세실리아가 서재에 나란히 앉아 <아라벨라의 시련>을 보며 미소 짓는 것으로 결말을 바꿀 수 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우선 잠부터 좀 자야겠다. 



  이 책의 곳곳에서 브리오니의 입을 빌려 소설과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상상력의 힘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브리오니가 간호사로 일하는 모습을 담은 3부에서 브리오니가 죽음을 맞이하는 프랑스 병사를 돌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을 작가나 영화감독은 브리오니가 "상상력의 힘, 소설의 힘"을 느끼는 장면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브리오니와 같은 나이의 18세 소년병 뤽 코르네는 머리를 다쳐서 두서없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런던이 아닌 자신의 고향에 있다고 상상을 하고 브리오니에게 "날 사랑하나요?"라는 질문을 합니다. 브리오니는 청년에게 그렇다고 답하고 자신의 이름을 죽어가는 뤽에게 알려줍니다. 뤽이 죽고 나서 방으로 돌아온 브리오니는 절대로 오지 않을 뤽과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해봅니다. 


  소설 속에서, 작가의 상상력 안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소설은 그저 거짓일 뿐인 걸까요? 브리오니는 소설 속에서 자신이 파멸에 이르게 한 세실리아와 로비에게 사랑이라는 선물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오직 상상력으로 준 그들의 행복입니다. 이것이 소설가로서 브리오니가 속죄를 하는 방식이었지만, 자신의 속죄가 세실리아와 로비의 용서로 이어지게 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그만큼 이기적이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 역시 소설가의 오만이고 이기심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오만은 폭력입니다. 자신의 속죄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과 용서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덫을 곳곳에 놓아두고 사실 난 속죄를 할 뿐 용서를 강요한 적은 없다는 연막까지 쳐 놓는다면 정교한 폭력이지 않을까요? 브리오니가 이 소설을 읽게 될 처참하게 죽어간 세실리아와 로비를 상상한다면 이 소설에 그들의 이름을 쓸 수 있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리오니가 할 수 있는 속죄의 방법은 소설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정말 용서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망각을 거슬러 자신의 파괴적이고 오만했던 그날의 상상력을 글로 남기는 방법 외에는 할 수 있는 노력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242쪽

그러나 그다음 한 주가 채 지나가기도 전에 그렇게 굳건했던 확신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브리오니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문자 그대로 자기가 본 것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준 것은 눈이 아니었다.(중략) 그녀의 눈은 그녀가 알고 있고 경험한 모든 것이 사실임을 입증해주었다. 진실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상식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진실이 그녀의 눈을 이끌었다

(중략)

그렇지만 '보았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부연 설명하고 싶기는 했다. '보았다'는 자신의 말이 실제로 무엇을 본 것이라기보다는 '알았다'는 쪽에 가깝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싶었다. 

(중략)

그녀는 자기가 만든 미로 속에 자신을 가두고 맹목적으로 걸어 들어갔으며, 너무나 어렸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에 갔던 길을 되돌아 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독립심이 없었거나 독립심을 가지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248쪽

죄책감은 자신을 고문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냈고, 시간이 가면서 떠오르는 세밀한 기억의 구슬들을 하나하나 실에 꿰어 평생 동안 돌리면서 기도해야 할 묵주를 만들어놓았다. 



323쪽

애초에 그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니까. 그것은 그 애 자신을 위한 것이었으며, 양심상 도저히 견디기 어려워지자 자신의 범죄에 대해 면죄부를 얻으려는 것이었다. 그가 고마워해야 할까? 그래, 물론 1935년에 브리오니는 어린아이였다. 그러나 모든 어린애가 거짓말로 한 남자를 감옥에 보내지는 않는다. 모든 어린애가 그렇게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태도로, 시간이 지나도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회의를 갖지 않을 만큼 지독할 수는 없다



329쪽

그 충동, 일시적인 악의, 사춘기 소녀의 파괴적인 감성, 이런 것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은, 그 애가 품은 악의가 끝까지 거짓 주장을 고수하여 마침내 그를 완즈워스 감옥으로 보낼만큼 그렇게 큰 것이었나 하는 점이었다. (중략) 하지만 그는 그 애를 용서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 애에게 진 빚을 두고두고 되갚아줄 수 있는 길이니까.



368쪽

브리오니가 증언을 번복할 것이고 과거를 다시 쓸 것이다. 유죄인 사람이 무죄가 될 수 있도록. 그런데 요즘 같은 때에 죄란 과연 무엇인가? 별 의미가 없었다. 누구나 다 유죄이기도 하고, 무죄이기도 했다. 모든 증인들의 진술을 받아 적고 증거를 모으기에는 인력도, 종이나 펜도, 그리고 인내심과 평화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증언을 번복하는 일 따위로 명예를 회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증인들도 죄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매일 서로의 죄를 목격하면서 살고 있다.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죽게 내버려 둔 적도 없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 두었나? 이곳 지하실에서 우리는 그런 질문에 대해서 계속 침묵할 거야. 



472-473쪽

그녀의 범죄를 확인시키는 언니의 말을 듣고 있기가 괴로웠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언니의 시각이 자신과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나약하고 어리석고 혼란스럽고 비겁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증오해왔다. 그러나 한 번도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니는 브리오니가 거짓말을 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것은 언니에게는 너무나 분명하고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한순간 자신을 방어하고 싶은 본능이 일었다. 거짓말을 하려 한 게 아니다. 로비에 대한 악의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누가 그 말을 믿어주겠는가?



  이 책의 또 다른 주제는 바로 폭력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자신이 아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오만함이 가져온 폭력입니다. 자신에게는 진실이지만 타인에게는 명백하게 거짓인 인간이 지닌 상상력이라는 폭력입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한 치의 회의를 품지 않고 타인에 대해 판단하고 그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게 진실처럼 말하는 것이 얼마나 큰 폭력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타인에 대한 평가나 묘사의 대부분은 자기 생각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상상력과 어휘력이 풍부하여 아무리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로 사족을 붙여 놓아도 듣는 사람의 뇌리에 "진실"로 박히게 됩니다. 그래서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소문이라는 괴물은 다시 우리에 가둘 수 없이 일상을 헤집어 놓습니다. 나중에는 그 괴물이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게 되고, 최초의 상상을 했던 그 사람 역시 자신이 나약하고 어리석기는 했으나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고 믿습니다. 


  상상력은 그 사람의 머리를 떠나 소설이 되고 이야기가 되어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다른 사람들의 상상력을 먹고 더 크게 자라나서 주인이 없는 야생의 괴물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그 괴물의 공격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아무리 자신의 진실을 이야기해도 괴물에 가로막혀 다른 사람에게 가닿지 못하고 파괴되어 갑니다. 이 무시무시한 일을 <속죄>는 탄탄하게 그려냅니다. 



526쪽 역자 후기

이언 매큐언은 9.11 뉴욕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건이 발생한 직훈 [가디언]지에 다음과 같은 논평을 실었다. 

"비행기 납치범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승객들의 생각과 느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을 계획했더라도 끝까지 진행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중략)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떻게 느낄까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성의 본질이며, 동정과 연민의 핵심이고, 도덕성의 시작이다."

세상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상상력과 세상을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주는 상상력...... 그 경계는 어디인가. 이언 매큐언을 참으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시하는 작가이다. 





상상력과 폭력, 속죄라는 주제에 관한 문장뿐만 아니라 멋진 표현들이 곳곳에 있어서 옮겨 봅니다. 



104쪽

타월에 꼭 감싸 안아 무릎에 앉히면, 브리오니는 온전히 엄마에게 의존하는 그 순간을 매우 좋아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 애는 온전한 자기만의 세계로 사라져 버렸는데, 그 세계는 사랑하는 엄마조차 뚫을 수 없는 글쓰기라는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는 자의식과 재능이라는 악마가 브리오니를 말수 적은 아이로 변모시켜, 여전히 엄마에게 사랑을 표현하고는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딸애와 활기차게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된 것이 슬펐다. 



107쪽

어두침침한 침실에서 보면 그녀의 집은 황량하고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대륙처럼 보였고, 그 광활한 대지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가족들은 자기에게 관심을 보여달라고 보채는 것 같았다. 그녀에겐 어떤 환상도 없었다. 예전에 자신이 세운 계확들은 시간이 지나 빛이 바랬고, 지나치게 열성적으로 세운 것이라서 모든 사건을 다 통제하려는 과도한 낙천주의적 경향이 있었다. 그녀의 육감의 덩굴손을 집 안 곳곳에 뻗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미래에까지 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또한 자신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마음의 평화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관심과 남에 대한 친절이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 있을 때가 제일 좋은 법이었다. 



176쪽

아버지가 집에 있을 때는 집안이 아버지를 구심점으로 하여 안정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어떤 일에도 간섭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며 집 안을 돌아다니지도 않았으며, 누구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재에서 보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 집안에 질서를 부여했고 자유를 허락했다



198쪽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어린아이가 발음 연습을 하듯 또박또박 로비라고 불렀다. 뒤이어 그가 그녀의 이름을 속삭였을 때, 그녀의 이름은 완전히 새롭게 느껴졌다. 철자는 달라진 게 없었지만, 그 의미가 완전히 새롭게 변해버렸다. 마침내 그는 어떤 저속한 문학작품이나 인간의 위선으로도 깎아내릴 수 없는 세 단어를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녀는 자신이 먼저 이 말을 하는 것처럼 둘째 단어에 강세를 넣어 같은 말을 그에게 속삭였다. 그는 종교가 없었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증인으로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해준 그 말은 보이지 않는 계약서에 남긴 서명 같았다



214쪽

심지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역시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치밀하게 거짓말을 했다면, 그는 그녀에게 상당히 신경을 쓰고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의 거짓말은 그들의 결혼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증거였다. 

  푸대접받던 아이는 이제 푸대접받는 아내가 되었다. 그러나 에밀리는 그렇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내성이 생긴 덕분이다. 



348쪽

의식이 분명해지면 괴로웠다. 그의 마음 때문이었다. 정기적으로 무언가 사라져 갔다. 연속성이라는 일상의 원칙, 인생에서 자신이 어느 곳, 어느 단계에 있는지 알려주는 평범한 그 요소가 점차 의식 속에서 희미해졌고, 결국에는 생각은 하지만 그 생각의 주체인 자신에 대해서는 망각하는 백일몽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415쪽

브리오니가 손을 씻고 돌아오자 다른 임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그마한 일이었지만, 하나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나니 모든 것이 다르게 다가왔다.....(중략) 감사한 마음에 그는 고개를 들 것이고, 그녀를 알아보고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꼭 잡을 것이며, 그녀를 용서해 줄 것이다. 그런 다음 그녀의 손길에 몸을 내맡기고 편안히 잠들 것이다. 



425쪽

그녀는 이전에도 알고 있었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그리고 통렬하게 실감했다. 인간은 누구나 물질적 존재라는 것, 쉽게 파괴되지만 쉽게 회복되지 않는 존재......



508쪽

그는 예의 바르게 웃음을 터뜨렸지만, 속으로 내가 아주 무식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요즘에는 말하는 방식이나, 옷을 입는 스타일, 혹은 음악 취향을 가지고 그 사람의 교육 수준을 가늠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만나는 사람을 누구나 훌륭한 지성인으로 대우해주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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