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만 슬픈 길

발걸음

by 그나보

버스 종점인 양천 차고지에 내려 병원까지는 걸어서 12분가량이다. 생각에 잠긴 채 걷거나 빠른 걸음을 하거나 숨이 차오르도록 내달리거나, 꼭 하루 두 번은 오가는 길.


초반엔 그 발걸음이 참 가벼웠는데, 어느덧 입원 4주 차..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호스피스 입원 기간은 최대 60일이고 4주 차쯤 되면 슬슬 다른 호스피스에 대기를 걸어야 하기 때문인데..


췌장암은 음식 섭취를 어렵게 하고, 악액질이라고 하던가? 암세포가 그마저 있던 영양분도 모조리 앗아가 버리는데 특히나 근육 소실이 심해 환자는 뼈만 앙상하게 된다.


한 손에 잡히는 앙상한 팔다리가 엄마의 환자복 안에 숨어있다. 그런 몸으로 병동에 적응해 잘 지내고 계신데 환경이 바뀌면 심리적으로 힘들까 봐 걱정된다. 어느 곳으로 가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지만.


아침엔 엄마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엄마와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갈 땐 자꾸만 엄마 없는 세상을 생각하게 되어서 온몸이 축 처진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도 쌩하니 집을 나선다. 오늘도 행복하지만 슬픈 길, 잘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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