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행복한 나라들의 공통점(7) : 좋은 지도자

좋은 지도자가 국민의 행복을 결정한다!

by 이지훈

제도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사람(지도자)이다. 그 제도를 만드는 것은 바로 사람이기 때문.


부탄, 제일의 행복 비밀 : 선정을 베푸는 국왕


불교왕국 부탄. 부탄 어느 곳을 가더라도, 거리나 사원, 심지어 레스토랑과 나이트클럽에 조차 국왕과 왕실 사진이 내걸려 있다. 불교사원에 조차 고승 그림이나 사진과 함께 왕가의 사진이 동격으로 전시돼 있는 걸 보면, 거의 신격화된 존재나 다름없어 보인다. 부탄사람들의 왕가에 대한 존경과 신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들 신망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걸까? 단지 전통적으로 내려온 관습이자 불교국가여서? 천만의 말씀이다.

부탄의 한 사원에 걸려있는 5대왕 가족 사진. 옆에 고승 사진과 나란히 걸려 있다.
거리에 걸려 있는 왕가 사진. 좌측 4대왕, 우측 5대왕, 가운데 5대왕의 아들


부탄의 왕은 GNH(국민총행복지수)를 도입한 4대왕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 행복한 나라 부탄의 기틀을 만든 이는 바로 3대왕 직메 도르지 왕축(1929~1972)이다. '현대 부탄의 아버지'라 불리어 지는 국부와 같은 존재다. 수도 팀푸 시내에 그의 업적을 기리고 추념하기 위한 ‘국립기념탑(메모리얼 초르텐)’이 세워져 있을 정도.


3대왕은 재임 기간에 여러 가지 혁명적 정책을 시행했다. 병원을 지었고 영국식 현대 교육제도를 도입하였으며, 히말라야 지역에 뿌리 깊던 봉건주의를 타파함은 물론 현대적 사법제도를 도입, 억울한 사람이 없게 했으며, 민주주의를 국가 목표로 설정하기도 했다. 부탄 근대화의 초석을 마련한 것이다. 인도와 동맹을 맺어 우호관계를 구축하고(지금까지 이어짐) UN에도 가입했다. 이러한 그의 선구적 개혁 작업에 힘입어 은둔의 나라 부탄이 세상 속에 드러나게 됐고, 그 뒤를 이은 4대왕이 행복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메모리얼 초르텐


이런 부왕의 뒤를 이어 1972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한 4대왕 직메 싱게 왕축 국왕은, 한창 일할 나이인 51세 때(2006년) 당시 36세였던 아들 직메 케잘 남겔 왕축(현 5대왕)에게 왕위를 물려줘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사극에서 종종 단골메뉴로 등장하듯)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기에 핏줄조차 제거하는 냉혹한 궁중암투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입을 쩍 벌리게 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절대 왕정시대에 생전 양위는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기도. 세계 각국의 왕실이 권력에 대한 탐욕과 부패, 추문으로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 아닌가?

4대왕의 양위 장면

4대왕의 놀라운 행보는 이 것만이 아니었다. 2001년 국왕이 갖고 있던 행정권을 각료위원회에 이양하는 등 왕실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았으며, 더 나아가 입헌군주제의 필요성을 일찍부터 강조하기도 했다. 국민들의 반대로(오히려!) 그가 왕위에 있던 시기에는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5대왕에게 이양 후 2년 만에 이 제도는 시행되기에 이른다.


이 뿐인가? 알다시피 70년대 후반부터 국민총행복(GNH)을 국가 정책으로 시행한 탁월한 계몽군주다. 국민의 행복을 이토록 걱정하는 왕일진대, 어찌 부탄국민들이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 할아버지에 그 아들, 그 아들에 그 손자라고 5대왕은 2008년 총선을 처음 실시, 부탄을 입헌군주제로 바꾸었다.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왕 스스로 절대왕정체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꾸어 국민에게 권력을 이양한 것이다. 평민출신 아내를 맞이했고, 수 십리 산길을 짐을 손수 메고 직접 걸어 사원에 찾아가기도 했단다.

이렇듯 국민을 위해 선정을 베푸는 왕이 계속 이어지는데, 국민들이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더불어, 모든 왕들이 국가지도자 외모 랭킹에서 수위를 다툴 정도로 핸섬할 뿐만 아니라, 지성적이며 깊은 눈을 가지고 있으니, 어찌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


부탄문화원 페북(https://www.facebook.com/koreabhutan/)을 서치하다가 아래와 같은 글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내 생각과 유사해, 무릎을 치게 하는 내용을 발견해 그대로 옮겨 본다.


<불교 나라 부탄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 6가지>

1. 휴식 할 수 있는 집이 있다.

2.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

3. 입을 수 있는 옷이 있다.

4. 나 아닌 누구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다.

5. 우리를 위해 언제나 선정을 베푸는 왕이 있다.

6. 항상 가까이 있는 부처님께 기도 할 수 있다.

1,2,3은 인간 생존의 최소 필요조건인 '의식주'를 말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기본적 의식주만 해결되면 행복하다는 소박한 생각(작은 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말한다. 4는 강력한 공동체의식을 뜻한다. 중요한 키워드는 5와 6이다. 삶의 문화로 굳어진 티벳 불교와 국민들의 절대적 존경을 받고 있는 왕의 존재가 그것. 그들에게 왕은 ‘언제나 선정을 베푸는’ 존재다


불교적 가치관 다음으로, 부탄 행복의 두 번째 비밀이(아니 어쩌면 제일의 비밀이) 바로 이 매력적인 부탄 왕들에게 있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런 왕실을 갖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부탄국민들에게는 (행)복이 아닌가?


평화국가 코스타리카를 만든 국가지도자들


코스타리카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다. 재출마는 가능하지만 연속 재임은 불가능하다. 지금의 코스타리카를 있게 한 국가지도자로 세 명의 대통령을 들 수 있다.


먼저 코스타리카의 현대를 연 국가 지도자로, 라파엘 엔젤 칼데론 구아디아 (Rafael Angel Calderon Guardia) 대통령(1940~44). 인근 중미 국가들이 독재로 신음하던 때 칼데론은 혁신적인 개혁을 실시했다. ‘토지개혁’이 그것. 토지 없는 농부가 미개척지를 경작하면 소유권을 부여했다. 이 외에도 최저임금 확정, 유급 휴가, 실업 보상, 점진적 과세 등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시행했다.


그 뒤를 이어 집권한, 호세 마리아 이폴리토 피게레스 페레르(José María Hipólito Figueres Ferrer) 대통령. 무려 세 번씩이나 대통령을 지낸 코스타리카의 정치인으로 코스타리카의 현대를 연 국부로 추앙받는다. ‘돈 페페(Don Pepe)’란 애칭으로 불리어지기도 하는데, 1948년 쿠데타 당시 나이 42세, 커피 농부이며, 경제학자이고 철학자였다.


쿠데타로 집권했으나 이후 내전으로 심각한 피해가 일어나자, 1948년 12월 1일 '군대 폐지'를 선언, 평화국가의 초석을 깔았다. “병영을 박물관으로 바꾸자”는 그의 제언은 내전으로 피폐해진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의도적으로 육군사령부 요새에서 진행한 선언식에서, 요새의 벽을 해머로 부수어 넘어뜨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한다. 다음 해인 1949년 11월 7일, 코스타리카의 새 헌법이 발효되었는데, “항구적 조직으로서 군대를 금지한다”는 비무장 조항(12조)이 포함되기에 이른다. 이후 코스타리카는 1983년 몬헤 대통령 시절, ‘적극적 영구 비무장 중립선언’으로, 즉 '중립국'으로까지 자리매김한다.(『군대를 버린 나라』 참조)


군대폐지만이 아니라, 피게레르는 여성과 흑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획기적 정책을 시행했다. 은행과 보험회사를 국유화하기도 했다.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1953년과 1970년 다시 선출되는 등 세 번씩이나 대통령직에 올랐고, 약 20여년간 코스타리카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그의 아들인 호세 마리아 피게레스 올센도 대를 이어 1994년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민족해방당(PLN, Partido de Liberacion Nacional)을 창설한다.


다음은,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Óscar Rafael de Jesús Arias Sánchez) 대통령. 미 보스턴 칼리지에서 의학공부하다, 코스타리카 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 전공, 영국 에식스대학(University of Essex) 정치학 박사학위. 사회민주주의계 중도 우파 성향의 민족해방당(PLN) 가입, 정치에 입문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1986년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후 2006년 다시 재선되었다. 첫 임기 기간인 1987년, 내전에 휩싸인 중미 국가들을 상대로 평화협상을 이끌어 내 노벨평화상을 수상, 코스타리카 국민들을 자랑스럽게 했다. 호세 피게레스 대통령이 군대를 없애며 평화국가의 초석을 놓았다면, 아리아스는 코스타리카를 평화를 수출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하게 한 것. 생태관광을 주요 산업으로 육성하기도 했다.


군대를 없앤 대신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둥에 힘써 코스타리카 국민들의 기본권과 행복을 위해 노력해 온 이들 국가 지도자들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이며 독재와 내전으로 얼룩진 중미국가 중에서는 독보적인 나라로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덴마크 중흥의 아버지 그룬투비


그룬투비(Nikolai Frederik Severin Grundtvig:1783~1872). 내 연배 쯤 세대면 학창시절 배웠던 덴마크 사람으로, 아련히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다. ‘덴마크 중흥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을 펼치면서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던 인물이다. 그래서 중등 교과과정에까지 소개되었겠지 생각한다.


그때는 덴마크 농촌부흥 운동의 선구자로 주로 소개되었는데, 요즘 국내에서는 교육철학자로 주로 소개된다. ‘자유학교’라 불리어지는 성인 대안학교인 ‘폴케호이스콜레(Folkehøjskole)’를 1844년 창설해 ‘평생교육의 아버지’라고도 불리어지는 그는, 시민의 각성이 중요하다 판단하여 시민교육에 열정을 바쳤다.


그룬트비는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 시인이면서, 교육자, 역사가, 철학자, 민족운동가(애국주의자), 직접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던 정치가였기도 했다. 명함 한 장으로는 모자란 이력을 가진 사람. 키르케고르와 안데르센과 함께 동시대를 산 인물. 덴마크를 행복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일생을 노력한 그다. 그래서 덴마크 국민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존경한다. "그룬트비 같은 사람을 덴마크가 갖고 있다는 게 행운"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그룬투비(https://www.hojskolerne.dk/om-hoejskole/hvad-er-en-hoejskole/hoejskolens-historie/)


스웨덴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정치인 팔메


올로프 팔메(Olof Palme:1927~1986). 스웨덴 사회민주당 소속이었던 전 총리. 스웨덴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며 사랑했던 정치인을 꼽으라면 십중팔구 팔메를 꼽는다. 팔메를 얘기하지 않고는 오늘의 스웨덴을 논할 수 없다고 까지 할 정도다.


복지국가 스웨덴을 완성한 그다. 남녀평등을 보장하고 보편적 복지를 확대했고,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를 잇달아 도입했다.


팔메가 시행한 양성평등 정책은, 부부별도 과세, 탁아시설 확충, 모성 휴가에서 부모휴가로 확대, 낙태 합법화, 이혼 후 공동양육권제 도입 등이다. 노동자 차별금지법, 노동조합 보호법, 노동자 안전강화법, 고용보호법, 노동자 경영 참여보장과 노동환경 개선 등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법률도 제정했다. 총리 재임 기간 중 공중 보건시스템 확충, 의료개혁, 노인 보호, 실업 보조금과 연금 개혁 등 스웨덴 사회복지 시스템 전반 틀을 완성하였다.


사회복지와 안전망에 대한 팔메의 신념은 아래와 같은 연설에 함축돼 있다.


“자라고, 교육받고, 친구를 사귀고, 직장을 구하고, 생활비를 벌고, 살 곳을 정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서....누구나 일정수준 이상의 삶을 누리며, 나이를 먹어 쇠약해 졌을 때에도 삶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사회의 목적과 연대의 목적은 모두 사회의 자원을 활용하며 구성원이 그들의 삶을 성취하는 것이다.”(1984 하버드대 연설 중/『올로프 팔메』재인용)


이를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팔메의 생각이다. ‘국민의 집’으로서.

또한 팔메는, 미국과 소련을 비판하며 제3세계 국가를 지원하기도 했다. 미국의 베트남전도 소련의 프라하 침공도 반대했다. 혁명 이후 쿠바를 방문한 최초의 서구 정부 수반이기도 했고, 이란과 이라크 전쟁 당시는 UN의 특별 중재역할을 하기도 했다. 핵무기확산을 반대했으며, 중립노선을 확고히 천명했다.


1986년 팔메가 암살당한 뒤 그에 대한 존경과 슬픔은 스웨덴 국내 뿐 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크게 울려 퍼진다. 올리버 탐보 남아공 아프리카 민족회의 의장은 추도사에서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베트남에서 니카라과까지, 엘살바도르에서 팔레스타인까지, 사하라에서 남아프리카까지 지구를 돌며 세계의 시민이 된, 짓밟힌 자들의 형제이자 동지가 된 이 정의로운 거인”(『올로프 팔메』재인용)


생전에 견원지간이나 다름없었던 헨리 키신저는 장례식에서 이렇게 말했단다.


“평화가 위협당하고 정의가 거부되고 자유가 위기에 처하는 곳마다, 그곳이 중동이든, 중앙아메리카든, 남아프리카든, 핵무기 사용이 논의되는 곳이든, 팔메는 그곳을 찾아 중재를 이끌었다”(『올로프 팔메』재인용)


스웨덴 뿐 만 아니라 팔메는 전 세계가 사랑했던 정치인이었다는 말이다.


소프트파워(Soft power)의 힘


놀랍게도, 행복정책을 권고한 2011년 유엔총회의 결의를 주도한 국가 중 하나가, 인구 70만에 불과한 히말라야 왕국 ‘부탄’이었다. 부탄은 아직도 원조를 받는 가난한 나라다. 중앙아메리카에 끼어 있는 코스타리카는 ‘비무장’을 매개로 국제사회(특히 중남미)에서 평화의 큰 중재자라는 자리매김을 했다. 스웨덴의 올로프 팔메는 또 어떤가. 베트남전 반대시위가 있던 1968년 노동절 기념 연설에서 팔메가 한 말이다.


“스웨덴의 중립노선은 자결권을 말합니다... 중립은 고립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작은 나라인 우리의 영향력은 미약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의 평화와 중재, 민주주의, 사회정의를 위한 노력까지 작은 것은 아닙니다. 중립은 침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1968.5.1)(『올로프 팔메』재인용)


나라(의 지도자들)를 보며 'Soft Power'를 실감한다. 그들의 힘은 ‘경제력’도 ‘군사력’도 아니었다!


국가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느끼며, “좋은 지도자가 국민의 행복을 결정한다”는 진리를 새삼 배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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