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를 주장하며 늘 정리해야지 하고 생각은 했는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기만 하던 대청소를 코로나로 인해 시작했다.
집안에 안 쓰는 물건들은 왜 이리 많은지, 버리고 버려도 왜 아직도 뭔가로 가득 차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를 하루하루 마주하며.
불필요한 것을 줄여가는 까닭은 소유할수록 소유당하기 때문에.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어느새 쌓여버린 수많은 물건들에 싸여 정작 내 삶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되기에, 물건과 함께 쌓여있던 많은 것들을 하나씩 둘씩 비우는 중이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꼭 배우고 싶었던 클래식 기타를 시작했다.
못하게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집안 대청소처럼 시간 없고 돈 없다는 갖가지 핑계로 미루다가 무작정 동네의 기타 학원을 찾아갔다. 들어가자마자 울리는 기타 소리에 반해버렸고, 큰 유리창으로 보이는 풍경에 또 한 번 반해버렸다. 그 창가에 앉아서 기타 치는 나를 상상하며 클래식기타로 유명하시기도 하고가르치는 학생이 이미 너무 많아 초보자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원장님께,
"전 원장님께 배우고 싶어요. 저를 가르쳐주세요." 무슨 용기에서인지 그냥 졸라댔다.
내심 데리고 간 아들도 같이 배우길 바랬는데 쭈뼛쭈뼛, 아들은 아직 준비가 안됐나 보다. 엄마 욕심에는 기타 잘 치는 아들 너무 멋있을 것 같다고 부추겼지만, 운동을 더 좋아하는 아들은 기타에는 그리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 기다릴게, 네 마음에 엄마처럼 하고 싶은 물결이 일렁일 때까지.'라고 생각하며 기타를 잘 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언젠가 아들의 마음도 동할 거라며 내 욕심은 미루어두었다.
"준아, 그런데 책과 악기와 운동과 친해놓으면 평생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어."
"근데 엄마는 왜 운동이랑 안 친해?"
"... 이제 친해질 거야."
아들에게 찔리는 마음으로 애매모호한 답변을 남기고 그 날부터 시작한 나의 새로운 취미생활.
누군가에겐 쉬운 일상이겠지만,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빠듯한 생활의 아줌마에겐 하나의 도전이자 새로운 시작이었다.
클래식 기타는 어쿠스틱 기타보다 조금 더 어려운 듯도 하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다. 특히 비 오는 날 울리는 중저음의 그 기타 소리는 마치 모닥불 앞 젖은 옷 같다. 타닥타닥 타는 불꽃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습기는 날라가고축축했던 옷이 다 마르는 것처럼, 기타 소리를 듣고 있자면 마음의 불순물들은 어느덧 다 증발하고 내 마음의 밀도를 채워주는 깨끗한 알맹이들만차분히 가라앉는다.
코로나로 인해 멈춰진 어느 날. 온라인의 넘쳐나는 정보와 핫이슈와 단톡 방의 울림들. 허나 정작 오프라인에선 내 주위에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나.
갖고 싶은 욕구와 어지러운 집안의 상충.
만나고 싶으나 또 상처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의 갈등.
치우치는 게 싫어 늘 중용을 택하려 했던 나는 실은 무언가에 집중하고 푹 빠지고도 싶었던 것이다.
온전한 나로서의 나는 누구인가.
아무런 포장도, 겉치레도 없이 나와 내가 만나는 시간.
늘 양립되는 마음의 팽팽한 긴장감을 놓게 해 주는 내 감정의 배출구이자 내 안의 끝없이 솟아오르는 샘이기도 한 이 시간.
기타를 끌어안고 튕기는 이 시간이 좋다.
클래식 기타는 연주할 때 기타와 몸이 완전히 밀착되어야 한다.
내 심장으로 전해지는 살아있는 듯한 진동, 울리는 한 음, 한 음은 언제나 나를 위로해주는 듯, 이 세상에 저와 나만 존재한다는 듯 나를 울려준다.
왜인지 무기력에 빠져있던 나에게 무언가 잘하고픈 마음을 불어넣어준 너.
때로 텅 빈, 구멍 뚫린 마음을 가만히 쓸어주는 너.
내게 이 시간은, 또 다른 채움을 위해 집안을 비우듯, 나에게 의미 있는 삶으로의 연결을 위해 나를 비우는 시간이자 나를 채우는 시간이다.
그렇게 기타를 치며 몰두하는 그 시간 속의 내가 참 좋다.
무엇보다 제일 좋은 건 과연 이게 될까 했던 게 무던히도 아무 생각 없이 반복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되는 그 짜릿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