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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aumazein Jan 23. 2021

나를 뒤흔든 세상의 문장들 1

Le Diplomatique - 시계 밖으로 탈출하는 삶을 위하여

벌써 몇 년 전 시작하게 된 Le Diplomatique 읽기 모임.

아직 난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때론 깨닫고 때론 뒤통수 번쩍하고 때론 화도 나며 알아가는 중이다.


서로의 생각 가감 없이 표출하고 받아들이고 저항하기도 하는 지적 동반자들의 모임. 하지만 가장 지적이지 않은 이야기도 마구 나눌 수 있 .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의 수많은 바퀴들에 대해서.


그중에 최근 가장 와닿았던 김지연 평론가의 글을 공유해본다. 나는 역시 바늘같이 정확하지만 또 한편 세련된 비유와 은유가 함께 있는 글이 좋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흐름에 동참하는 것은 사회 구조나 조직의 목표에 우리의 시간을 맡기는 것이다. 타의에 내맡긴 시간은 시곗바늘과 달력의 칸이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치환되어 수치화, 계량화된다. 하지만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그렇게 측정한 기계적 시간은 진정한 시간이 아니라고 했다. 삶을 경험하고 생명이 변화하는 것, 그렇게 지속되는 것이 순수하고 진정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시계의 눈금 같은 표면적인 현상만을 탐구하면 삶의 창조성과 자발성이 본래의 빛을 찾지 못한다고 한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좋다는 간단한 명제를 이렇게 심오하고 깊이 있게 풀어내다니!

계의 눈금만 보고 있는 표면적인 시간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본래의 나의 빛을 찾아가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이렇게 무언가 기다리며 웅크리고 내부로 침잠하는 시간 속에서 감춰져 있던 것이 보인다. 혼자 있는 시간, 텅 빈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서 그 사람의 세계가 드러난다. 한 사람의 세계가 돋보이며 존재의 결이 선명해진다. 그렇게 보낸 시간은 또렷하게 삶에 새겨진다.

홀로 침잠하는 시간을 제대로 보낸 사람에게서는 화학적인 코팅이나 연마제로 생겨난 번들거림 말고,

오랜 세월 닦이고 닦아 자연스러운 광이 나듯 이 난다. 그렇게 안으로부터 절로 이 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제각각 흐르는 시계의 움직임 앞에서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시간은 전부 흩어지고, 온전히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이라곤 지금 이 수많은 시간 앞에 서 있는 나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라는 1인분의 우주에 담긴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시간뿐이다. 모든 사람의 시간은 상대적이며 일회적인 각자의 우주다. 우주마다 다른 질서를 지니고 저마다의 속도로 새로운 별을 창조한다. 베르그송이 말한 '삶의 약동'은 그런 것이다. 스스로 나의 시간을 인지하고 모든 순간을 경험하면서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때 각자가 가진 창조성이 빛난다. 약동하는 삶은 바로 그곳에 있다.

가슴을 울리는 말, 약동하는 삶!

우리 인간은 모두 온전히 물질이지만,

온전히 영혼이기도 하다.

물질과 영혼이 함께 뒤섞인 '생명'이다.


'물질'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만 변화되지만,

'생명'은 끊임없이 내적으로 외적으로 변화한다.

그것은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풀꽃이 바위를 뚫고 올라오는

그 폭발적인 에너지이고,

생명이 가진 능동적이고 근원적인 힘이다.


저자는 자신만의 결이 새겨진 시간,

생명이 꿈틀거리는 살아있는 시간은

상대적이고 한 번뿐인 각자의 우주라고 한다.



베르그송이 말한 elan vital, 진정한 삶의 약동.

저마다의 속도 자기만의 별을 탄생시키는 삶!

어떤 거친 도전에도 힘차게 응전하는 생명의 도약,

삶의 약동!


무한한 에너지와 에너지가 우연히 만나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서

우리는 시계 밖으로 탈출하여 약동하는 삶을.

용기 있게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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